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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이 키운 삼청동, 프랜차이즈에 망가졌다

삼청동 한복판에 있는 한 상가에 ‘임대’ 현수막이 나붙었다. 이 점포는 수개월째 비어 있다.

삼청동 한복판에 있는 한 상가에 ‘임대’ 현수막이 나붙었다. 이 점포는 수개월째 비어 있다.

9일 오후 5시쯤 서울 삼청동. 가을비에 떨어진 노란 은행나무잎 사이로 나들이 나온 몇몇 중년 여성이 지나갔다. 은행나뭇길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던 중국 관광객들은 이내 골목길로 사라졌다. 길을 따라 북쪽으로 갈수록 행인은 손에 꼽을 정도로 줄었고, 금융연수원 위로 더 올라가니 그나마 보이던 인적도 끊겨 한적했다.
 
인파 대신 늘어난 건 건물 곳곳에 붙은 ‘임대’ 현수막이었다. 카페 ‘오가네’부터 테니스장 아래까지 2㎞ 남짓한 대로변 1층 상가만 헤아려도 얼추 20여 곳이 간판을 내린 채 임대 현수막을 내걸고 있다. 대로를 벗어나 골목 안으로 들어서니 간판도 정리하지 않은 채 ‘폐업’ 표지를 내붙인 가게가 꽤 많아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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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동의 금융연수원 대각선 맞은편 1층 상가도 수개월째 임대 현수막이 붙어 있다.      장정훈 기자

삼청동의 금융연수원 대각선 맞은편 1층 상가도 수개월째 임대 현수막이 붙어 있다. 장정훈 기자

삼청동 길거리 상권이 쇠락하고 있다. 삼청동은 한때 골목골목마다 들어찬 갤러리와 예술가 작업실, 카페, 조그만 가게들로 독특한 개성을 자랑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천편일률적인 대형 카페나 음식점이 난립해 개성이 바래더니 최근 빈 상가가 급격히 늘면서 쓸쓸한 가을을 맞고 있다. 문제는 연남동·경리단길 등 새로 개발된 상당수 서울의 골목상권도 삼청동과 비슷한 전철을 밟고 있다는 점이다.
 
삼청동은 1980~90년대만 해도 개발 규제가 심했던 동네다.
 
삼청동 목욕탕 골목에서 30년 넘게 부동산 업소를 운영 중인 단골부동산 이재복씨는 “전두환 전 대통령 때는 아궁이만 고친다고 해도 군인들이 나와 지켜볼 정도로 규제가 심했고, 대로변 땅값도 평당 500만~600만원 정도였다”고 기억했다.
 
삼청동이 주목받기 시작한 건 2000년 초반부터다. 한옥개조사업으로 북촌과 함께 낡은 가옥이 깨끗하게 재단장하고 골목길에는 화랑이나 박물관이 들어섰다. 또 인사동 인근에서 활동하던 예술가들이 땅값과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싼 이곳으로 주거지나 작업실을 옮겼다. 때마침 인사동이 중국산 저가제품으로 넘치고, 대기업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대거 들어서며 매력을 잃자 소비자와 관광객들은 삼청동으로 발길을 돌렸다.
 
의류·액세서리 점포도 ‘임대’를 내걸었다. [장정훈 기자]

의류·액세서리 점포도 ‘임대’를 내걸었다. [장정훈 기자]

상가정보연구소의 자료와 구글트렌드로 분석해보니 삼청동은 2000년 초반 이후 10년 남짓 동안 본격적인 성장기를 거친다. 동십자각부터 삼청공원 입구까지 폭 12~35m, 길이 3㎞ 남짓, 면적 약 9만㎡에 문화적 개성을 앞세운 삼청동 상권이 형성됐다. 삼청동은 이때부터 젊은이가 몰린 홍대나 이국적인 문화가 섞인 이태원 등과 함께 서울을 대표하는 1세대 골목상권으로 부상했다.
 
2010년 이후 약 5년간은 삼청동 최고의 전성기였다. 핫플레이스를 찾는 블로거들의 순례지가 됐고 삽시간에 서울뿐 아니라 지방, 일본·중국 등 해외 관광객의 여행 필수 코스가 됐다. 경복궁길을 따라 늘어선 미술관, 예스러운 맛집, 조그만 카페가 한옥과 어우러져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삼청동만의 매력을 뽐냈기 때문이다.
 
여느 상권과 마찬가지로 전성기는 위기를 불렀다. 방문자가 늘자 유명 화장품 브랜드숍과 신진 화장품 매장, 대형 커피숍이 잇따라 들어와 똬리를 틀었다. 삼청동엔 대형 화장품 매장만 한때 10여 개에 달했다.  
 
연남동·경리단길에 반면교사 “상권 형편 따라 임대료도 오르내려야 생존”

 
총리공관 가는 길의 건물이 통째로 비어 있다. [장정훈 기자]

총리공관 가는 길의 건물이 통째로 비어 있다. [장정훈 기자]

현재도 삼청동길 중간중간엔 아리따움이나 잇츠스킨, 빈스빈스커피, 스타벅스, 커피빈, 고디바 같은 대형 매장이 자리하고 있다. 대기업 브랜드의 진출은 땅값과 임대료 폭등을 불렀다. 단골부동산의 이재복씨는 “요즘 대로변 땅값은 평당 7000만~8000만원까지 껑충 뛰었고, 임대료도 조금만 자리가 괜찮으면 1000만원 넘게 달라는 곳이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이 바람에 삼청동 문화를 만든 예술인이나 초기 상인들은 떠나기 시작했다. 2015년 중반부터 삼청동에서도 원주민이 지역을 떠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 본격화한 것이다.
 
삼청동에서 서촌으로 공방을 옮긴 이화자씨는 “외지인들의 건물 매입이 시작되면서 임대료가 두세 배 뛰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런 정체성 혼란은 방문객의 감소로 이어졌다. 삼청동 고유의 매력이 사라진 까닭이다.
 
삼청동주민센터 이원식 동장은 “주말은 말할 것도 없고 주중에도 한때는 관광객들로 붐볐다”며 “한데 요즘은 주말에도 거리가 한산해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했다.
 
자연히 상권도 예전만 못하다.
 
옷가게를 하는 이원희씨는 “4~5년 전 월 매출이 5000만~6000만원은 됐는데 요즘은 3000만원이 채 안 된다”며 “가게를 내놨는데 들어온다는 사람을 못 찾고 있다”고 했다. 종로구청에 따르면 현재 삼청동의 커피·카페업 월평균 매출은 1300만~2200만원, 음식점은 2800만~4000만원 정도다. 각각 종로구 평균인 2000만~2800만원, 3600만~4300만원에 못 미친다.
 
하지만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던 2015년께 치솟은 임대료는 요지부동이다. 삼청동의 현재 33㎡ 기준 월 임대료는 146만원으로 종로구 평균 120만원보다 높다. 한 상인은 “삼청동엔 건물주가 외지인이 많고, 상권을 대표할 만한 대형 건물이 없다”며 “그렇다 보니 임대료로 돈만 벌려 하지 상권이 죽든 살든 애착이 없다”고 말했다.
 
삼청동이 높은 임대료로 쇠락기에 처했다는 위기감에 급기야 구청도 나섰다. 종로구청은 지난달 초 건물주와 세 들어 있는 가게 주인들을 모아 주민간담회를 열었다. 당시 모임의 사회를 봤던 강계주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서울중부센터) 센터장은 “상인들은 임대료 좀 낮춰달라고 하소연했지만 이를 들어줄 건물주들이 아예 모습을 안 나타내 간담회가 싱겁게 끝났다”고 전했다.
 
삼청동이 처한 상황은 경리단길이나 연남동 등엔 반면교사다. 이들 지역도 전형적인 주택가였다. 하지만 2010년 이후 각각 이태원과 홍대 앞의 비싼 임대료를 피해 젊은 예술가나 상인들이 옮겨가 최신 트렌드를 선도하는 상권으로 키웠다. 하지만 임대료만 폭등하고, 고유의 정체성을 잃는다면 미래가 없다.
 
이상혁 상가정보연구소 연구위원은 “상권의 부침에 따라 임대료도 탄력적으로 오르내려야 한다”며 “그래야 새로운 가게가 문을 열고 새로 방문객을 끌어들여 상권이 살아날 수 있다”고 말했다.
 
모종린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정체성은 상권의 특성인데 상권 간 경쟁이 격화돼 다른 곳이 모방 불가능한 체험과 상품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 교수는 또 “삼청동은 이미 미술관이나 화랑, 한옥 같은 많은 자원을 갖고 있다”며 “지역 자원을 활용하고 연결하는 혁신적인 가게들을 끌어들여야 다시 상권이 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장정훈 기자 cc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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