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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세로 관광지 가짜 학회 …출연연 박사 249명 무더기 징계

한국기계연구원(기계연)에 근무하는 A 연구자(52)는 2012년 이후 대표적 부실학회로 꼽힌 ‘WASET’에 총 7회나 참가했다. 학회는 푸켓·이스탄불·로마 등 대표적인 관광지에서 열렸다. 부실학회는 학문의 발전보다는 참가비 수입 등 영리적 목적으로 논문 발표ㆍ심사가 부실하게 운영되는 학술대회다. 학회 형식만 차용해 출판하는 등 영리를 추구해, 사실상 ‘사이비 학회’나 다름없다. A 씨는 기계연에서 2480만원을 받아 5회, 정부 연구개발비에서 1189만원을 받아 WASET에 2회 참석했다. A 씨는 “논문의 일정 분량만 충족하면 논문 게재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며 부실학회 참가의 고의성을 시인했다. A 씨는 향후 6년간 포상추천제외ㆍ해외출장금지ㆍ보직제한 등 처벌을 받게 될 예정이다.
 
지난 9월 12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출연연과 4대 과기원, 전국 238개 대학 대상 가짜 학회 참가 실태 조사.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연합뉴스]

지난 9월 12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출연연과 4대 과기원, 전국 238개 대학 대상 가짜 학회 참가 실태 조사.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연합뉴스]

한국천문연구원(천문연) 소속의 B 연구자(48) 역시 기관 출연금ㆍ공공기관 수탁연구비를 사용해 2년간 총 3회나 WASET에 참가했다. 심지어 B 씨는 방콕에서 열린 학회에 참가하면서 논문조차 제출하지 않았다. 그는 “연구수행에 필요한 정보수집 목적으로 참가했다”고 해명했으나 천문연은 학회 참가와 B 씨의 연구수행내용과 연관성이 적다고 판단했다. 사실상 '관광지에서 놀고 왔다'고 본 것이다. B 씨는 6개월간 보직 승진을 제한하는 ‘견책’ 조치와 더불어 향후 2년간 해외출장 금지ㆍ포상추천 제한 등 처벌을 받게 됐다. 천문연은 기관출연금 중 233만원을 환수했다.
 
우수연구원으로 정년 연장해줬더니 부실학회로…언론 보도 후에도 버젓이 참가
 
정부가 이른바 부실학회에 참가한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연구원들에 대한 대대적인 징계를 예고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는 11일 과거 12년간 부실학회 참가자가 있는 것으로 밝혀진 21개 출연연, 연구자 251명 중 249명을 대상으로 인사조치 및 기타 행정 조치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징계 사유는 ‘직무윤리 위반’으로, 부실학회임을 알고도 상습적으로 참가한 연구원이 대상이다.
 
원광연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이 지난달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정부세종청사 간의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영상국정감사에서 피감기관들의 '유령학회' 출장비 사용내역과 관련한 박성중 자유한국당 의원의 질의를 듣고 있다. [사진 뉴스1]

원광연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이 지난달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정부세종청사 간의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영상국정감사에서 피감기관들의 '유령학회' 출장비 사용내역과 관련한 박성중 자유한국당 의원의 질의를 듣고 있다. [사진 뉴스1]

정병선 과기정통부 연구개발정책실장은 “한국연구재단ㆍ국가과학기술연구회 및 외부 연구윤리 관련 전문가들로 ‘연구윤리 점검단(점검단)’을 구성하고 부실학회 관련 조치사항을 점검하고 있다”며 “현재까지는 일차적으로 직무윤리 위반에 관한 부분만 처벌을 완료했고 12월 말까지 논문표절 등 연구 부정ㆍ연구비 부정 사용까지 면밀히 조사해나갈 계획이다”고 밝혔다.
 
처벌 대상자 중에는 정부가 ‘우수연구자’로 지정해 정년을 연장해 준 인사도 포함됐다. 지질자원연구원(지자연) 연구원 C 씨는 우수연구자로 선발돼, 기존 61세에서 65세까지 정년이 연장됐으나 2012년부터 최근까지 국비로 WASET에 총 5회 참가한 것이 적발돼 곧바로 보직 해임될 상황에 놓였다.
 
국제학술대회를 주관한다는 WASET 홈페이지. 세계유명도시마다 컨퍼런스를 연다고 돼 있다. 개별 도시의 컨퍼런스에는 특정 주제가 아닌 백화점식 주제의 학술대회가 망라돼 있다. [사진 WASET 홈페이지 캡처]

국제학술대회를 주관한다는 WASET 홈페이지. 세계유명도시마다 컨퍼런스를 연다고 돼 있다. 개별 도시의 컨퍼런스에는 특정 주제가 아닌 백화점식 주제의 학술대회가 망라돼 있다. [사진 WASET 홈페이지 캡처]

한국한의학연구원(한의학연) D 씨와 E 씨는 해당 논란이 불거진 이후인 9월에도 버젓이 부실학회인 ‘OMICS’에 참가했다. 단 1회 참가했지만, 고의성이 인정돼 견책과 더불어 해외출장 제한 2년ㆍ보직제한 6개월을 받았다. 한의학연은 OMICS에 31번 참가해 전체 출연연 중 부실학회 참가 횟수 1위의 불명예를 기록했다.
 
유령 학회 WASETㆍ유령 출판사 OMICS...총 1578건 참가했지만 처벌 근거 미비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이번 조치 대상자의 부실학회 참가 건수는 총 300건에 달한다. 전국 238개 대학과 4대 과학기술원ㆍ26개 출연연까지 합하면 지난 9월 기준으로 총 1578건이다. 그러나 출연연이 자체적으로 내린 징계 대부분은 경고 조치에 그치는 등 경미한 실정이다. 정병선 실장은 “부실학회 참가가 곧 불법행위라고 걸면 후속 조치가 명료하지만, 현재까지는 (참가만으로는) 행정 근거가 없어 어렵다”며 “향후 연구윤리 위반에 대한 규정을 개선해 나가는 작업도 병행될 예정”이라고 해명했다.
 
지난 10월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정부세종청사 간의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영상국정감사에서 피감기관 대표들이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임철호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 이상훈 한국전자통신연구원장, 원광연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 이병권 한국과학기술연구원장, 하재주 한국원자력연구원장. [사진 뉴스1]

지난 10월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정부세종청사 간의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영상국정감사에서 피감기관 대표들이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임철호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 이상훈 한국전자통신연구원장, 원광연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 이병권 한국과학기술연구원장, 하재주 한국원자력연구원장. [사진 뉴스1]

한편 이번 조치 대상에서 제외된 박동준 한국식품연구원 원장은 기관장의 신분임을 고려해 국가과학기술연구회에서 별도의 윤리위원회를 여는 등 더욱 엄정한 절차를 거치게 된다. 부실학회 최다 참가자인 A 씨도 기계연 차원에서 별도의 윤리위를 열 예정이다.
 
한편 지난 7월 처음으로 그 문제점이 드러난 WASET과 OMICS는 세계 각지에서 과학ㆍ공학ㆍ인문학 등 가짜 학술대회를 개최하거나 의학ㆍ생화학 분야의 가짜 학술지를 양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WASET이 유령 학회라면 OMICS는 유령 출판사의 성격도 동시에 가진 셈이다. 한국연구재단이 지난 9월 초 발간한 ‘약탈적 학술지와 학회 예방 가이드’에 따르면 가짜학회는 공공기금이나 연구비를 받지 않으며 신뢰할 만한 학자ㆍ기술 협회에서 운영되지 않는 등 특징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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