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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돈 어디가] 연봉서 빼간 86만원, 저출산에 쓴다더니?

 
만약 당신이 100대 기업에서 일하는 직장인이라면 내년에 당신 연봉에서 86만원이 ‘저출산 대책’에 사용됩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은 470조5000억원입니다. 국회는 여기에 일정액을 가감해 내달 2일 예산안을 처리합니다. 470조원이 얼마나 큰 돈인지 가늠하기 어려우시지요? 5000만 국민이 5년 동안 5000원짜리 커피를 매일 마실 수 있는 돈입니다.
 
그런데 이 470조원은 땅 파서 나온 돈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낸 세금입니다. 올해 기준으로 100대 기업의 직장인은 평균 1166만원의 세금을 냅니다. 평균연봉 5400만원에 조세부담률 21.6%(한국경제연구원 추산치)를 대입한 금액입니다.
 
중앙일보가 전년 대비 9.7%를 늘려 ‘역대급’이라 불리는 내년도 예산안을 살펴봤습니다. 그 첫 번째는 전가의 보도가 돼버린 저출산 예산입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에서 저출산 대책에 쓰려고 책정한 돈이 24조1430억원(기금을 뺀 예산 전체의 7.4%)인데요, 이를 100대 기업 직장인들에 대입하면 연간 86만3000원(1166만원의 7.4%)입니다. 즉, 연봉 5400만원인 직장인 ‘나세금’씨의 주머니에 있던 86만원이 부지불식간에 저출산 예산에 잡힌 것이지요. 
 
문화예술교육도, 해외취업 지원도 '저출산' 예산 
 
이번 달 안에 ‘제3차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 수정안’이 발표될 예정인데, 예산이 줄어들 가능성은 작습니다. 저출산이 국가적 재난이라는 데는 모두가 동의하기 때문입니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도 “출산 축하금을 2000만원 주자”(김성태 원내대표)고 할 정도니까요.
 
뒤짚어 얘기하면 저출산 예산이란 딱지만 붙이면 국회의원들이 덜 깐깐하게 예산을 심사할 것이란 추정도 가능합니다. 그래서 그런 걸까요. 온갖 예산이 다 ‘저출산’ 입니다.
 
대표적인 게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예술교육 활성화 예산’ (502억5000만원)입니다. 문화예술 교육이 저출산 해소에 직접 도움을 주는지 의문입니다. 보건복지부 국가시책 특별교부금(기초학력 향상 지원, 199억2000만원)도 고개가 갸웃거려집니다. 기초 학력을 높이는 것과 아이를 더 낳는 것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 관계가 얼마나 있을까요. 두 예산 모두 해당 부처가 ‘저출산 예산’이라고 분류해놓았습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아동학대 피해자 보호 및 지원(222억원), 자살 예방 및 지역 정신보건 사업(33억1000만원), 지역 교통안전 환경개선(211억원)도 저출산 이슈와 직접적 관련성은 떨어집니다.
 
저출산 대응 정책을 ‘생애주기’라는 명목으로 아동, 청소년, 청년까지 확대해서 적용하다 보니 저출산 예산과 일자리 예산이 중복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국회예산정책처의『2019년도 예산안총괄 분석 II』에 따르면 정부는 ‘성인(청년)을 위한 저출산 예산’으로 5조3310억원을 배정했는데요, 여기서 중소벤처기업부의 창업 성공패키지(972억원)나 고용노동부의 해외취업 지원(571억원)은 일자리 예산으로 분류해야 맞을 것 같네요.
 
이게 저출산 정책? 잘 모르겠는데...[국회예산정책처]

이게 저출산 정책? 잘 모르겠는데...[국회예산정책처]

 
산학협력기술기능인력 양성(338억6000만원)이나 소프트웨어(SW) 전문인력 양성(375억원)에도 저출산 예산 꼬리표를 달아놓은 걸 보면 ‘부처별로 하나씩은 저출산에 걸쳐야 한다’라는 강박감이 작용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출산 예산이 흩어진 것도 문제입니다. 유치원은 교육부, 어린이집은 보건복지부 소관입니다. 이 때문에 최근 유치원 파동 이후 대책을 제각각 내놨습니다. 부처 간 교통정리가 필요합니다. 프랑스의 경우 ‘가족수당 전국공단’ 형태로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저출산 예산의 적중률을 높여야 한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정부 지출의 효과성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조금 뻔하지만, 예산이 필요한 곳에 정확히 가야 한다는 게 정답입니다.   
 
모두가 공감하는 대책은 국공립 및 직장어린이집 확충입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근무 중인 윤미정 실장은 “직장어린이집이 있어서 맞벌이하면서도 아들을 키울 수 있었다”며 “300인 이하 사업장 여러 곳을 묶어 인근 어린이집을 다니게 하면 맞벌이 부부에게는 최고의 정책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일본 이시카와현 노미시 데라이 중앙아동관에서 초등학생들이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노미 시는 예산의 30% 이상을 육아와 보육에 쏟아붓는다. 그런 덕분에 육아 친화도시가 됐다. 일본 813개 도시 중 살기 좋은 고장 3위에 올랐다. [중앙포토]

일본 이시카와현 노미시 데라이 중앙아동관에서 초등학생들이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노미 시는 예산의 30% 이상을 육아와 보육에 쏟아붓는다. 그런 덕분에 육아 친화도시가 됐다. 일본 813개 도시 중 살기 좋은 고장 3위에 올랐다. [중앙포토]

 
일본의 사례를 볼까요. 도쿄에서 고속철로 2시간 반 떨어진 이시카와(石川) 노미(能美)시는 임신부와 0~18세 병원비가 무료였습니다. 노미시는 813개의 일본 시(市) 가운데 살기 좋은 고장 3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도쿄 인근 하토야마 뉴타운은 신생아가 태어나면 ‘마을의 아이’가 됩니다. 누구나 무료 키즈 카페에 아이를 데려와서 놀고 도시락도 먹습니다. 카페에는 보육전문가가 상주하며 상담을 해줍니다.
 
시마네 현 하마다(濱田)시는 임신부터 출산 후 1년까지 시에서 운영하는 가사 도우미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2시간에 400엔(3900원)입니다. 하마다시에선 20~55세 여성의 75% 이상이 일자리를 갖고 있습니다. 일을 포기하지 않아도 아이를 기를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사례죠.
 
특별취재팀=권호ㆍ서유진ㆍ한영익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내 세금 이렇게
저는 아이 셋(초등학교 2학년, 5살 쌍둥이)을 둔 맞벌이 가정 아빠입니다. 저출산 예산은 난임 부부들을 위한 비용 지원이 먼저입니다. 요즘 난임 부부가 많아서 수정관 임신으로 태어난 쌍둥이 비율이 10%나 된다네요.  
 
예산은 국공립 보육기관을 늘리는 데 써야 합니다. 임신 때부터 대기표를 뽑아놔야 겨우 보낼 만큼 경쟁이 너무 셉니다. 국공립에서 탈락하면 월 100만원씩 하는 사립유치원에 넣을 수밖에 없어 가계 부담이 큽니다.  
세 자녀와 시간을 보내는 김상봉 교수

세 자녀와 시간을 보내는 김상봉 교수

 돌봐주실 ‘이모님’ 찾아 헤매지 않았으면 합니다. 중국 교포 이모님이 고향으로 돌아가면 맡아줄 사람을 찾아 전전합니다. 민간에서 알선하는 건 정보 비대칭성이 있어 부모 입장에선 불안합니다. 싱가포르 등처럼 국가에서 보육인력을 등록해 관리하는 제도가 있으면 합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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