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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한숨일랑 잊고

WITH 樂: 하이든 첼로협주곡
미샤 마이스키와 유럽 챔버오케스트라가 연주한 하이든 첼로협주곡 음반

미샤 마이스키와 유럽 챔버오케스트라가 연주한 하이든 첼로협주곡 음반

일요일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은 아침산책이다. 가까운 동네부터 좀 떨어진 마을까지 걸어다닌다. 골목 투어이자 주말 운동인 셈이다. 강변 산책로처럼 광속을 자랑하는 자전거를 피해다녀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고, 아는 사람을 만나 어색하게 인사해야 할 일도 없으니 편하다. 
 
골목을 다니다 보면 자동차로 지나치며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여서 좋다. 속도 때문에 놓쳐버린 것들은 속도를 늦춰야만 보이는 법이니까. 담장 너머 석류의 붉은빛을 볼 수 있어 좋고, 이층집 발코니에 나와 있는 잠이 덜 깬 아이들을 보는 것도 좋다. 종종 빨랫줄에 널린 세탁물들이 기하학적 예술작품처럼 보일 때도 있다. 실용적인 발견도 한다. 필요해서 찾을 때면 늘 가까이에 없는 철물점이나 목공소도 골목에서 발견할 수 있다. “집 가까운 곳에 이런 게 있었구나.” 득템한 기쁨이랄까.  
 
여유로운 골목길 산책의 친구는 요제프 하이든의 첼로협주곡이다. 가을햇볕 아래 잘 마르고 있는 흰 셔츠 같은 곡들이다. 하이든의 별명은 ‘파파 하이든’이었지만 이 곡은 ‘아빠의 청춘’ 같이 힘이 있다. 화려한 독주와 높은 음들이 많이 사용되고 있어 발걸음을 경쾌하게 만든다. 첼로협주곡인데도 날렵하기가 바이올린용으로 만들어진 것 같다. 하이든의 첼로 협주곡에서는 첼로 하면 흔히 갖게 되는 편견, 예를 들면 깊은 한숨과 짙은 그림자 같은 이미지들이 없다. 바로크 후기에서 고전주의 초기로 이행하는 시절의 멋진 첼로음악을 만날 수 있다.  
 
하이든의 첼로협주곡은 두 개다. 아마 더 많은 곡을 작곡했을 것이다. 현재까지는 두 곡만 학계에서 진품 대접을 받고 있다. 1번 C장조 협주곡은 1961년 하이든의 필사보가 발견되면서 족보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2번 D장조는 한동안 다른 이의 곡으로 알려져 있다가 1954년에 비로소 하이든 것으로 인정되었다. 이 곡은 궁정에서 연주회용으로만 잠시 사용되고 잊혀져버렸던 것 같다.  
 
두 곡 중 먼저 작곡된 C장조는 바로크의 색채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화사한 현악 총주 이후 첼로와 오케스트라의 반복되는 대화가 시작된다. 밝고 높은 톤의 첼로는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처럼 시원하다. 이어서 몰아치는 빠른 패시지는 비발디의 협주곡을 연상시킨다. 느린 악장은 수북이 쌓인 낙엽을 밟듯 푹신하다. 나긋나긋한 첼로가 긴 여운을 남긴다. 중반부로 넘어가면서 사색적인 분위기가 연출되는데 감당 못할 무게는 아니다.  
 
첼로협주곡 2번은 1번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는다. 첫 악장부터 고전주의 소나타 양식을 한눈에 알아볼 만큼 격조가 있다. 하이든이 고전주의 형식을 완성하던 단계에서 만들어진 곡이어서 1번에 비해 짜임새가 좋다. 화려한 기교도 많고 곡의 변화도 크다. 2악장은 다양한 표정을 가지고 있고 낭만적 선율이 아름답다. 연주시간은 대략 7~8분쯤인데 하이든의 첼로협주곡 중 라디오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악장이 아닌가 싶다. 주로 밤에 많이 나오던데 아마 늦은 밤에 창문을 닫으며 듣기 좋아서 그런 것 같다.  
 
하이든의 첼로협주곡 음반 중 자주 손이 가는 것은 미샤 마이스키와 유럽 챔버오케스트라의 연주다. 내가 이 음반을 좋아하는 것은 처음 이 곡들을 들었던 첫 정 때문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이후 들어본 다른 몇 종의 음반에서도 마이스키를 포기해야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너무 날리지 않으며 또한 지나치게 심각한 척하지 않는 것이 하이든 음악의 핵심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탄력 있는 첼로 소리와 세련된 스타일, 빠른 속도감을 겸비한 미샤 마이스키의 연주는 금방 구워 윤기 흐르는 식빵처럼 늘 쫄깃하다.  
 
글 엄상준 TV PD 90emperor@naver.com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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