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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의 얼굴’ 림프종, 악성이지만 항암제로 완치 가능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회사원 박모(45)씨는 한두 해 전부터 오른쪽 겨드랑이에 조그만 덩어리가 만져지는 걸 느꼈다. 별 통증이 없어 대수롭지 않게 지내다가 최근에 조금 커진 것 같고 주위의 권유도 있어서 대학병원에 갔다. ‘아무렇지도 않은데 별일 있겠나’하는 생각으로 조직검사 결과를 받았다. 뜻밖에도 ‘여포성(또는 소포성) 림프종’ 판정이 나왔다. 혈액암의 일종이라는 의사의 말에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감을 경험했다. 게다가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림프종은 재발도 잘되고 빠르게 진행해서 무서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내용이 여기저기에 적혀 있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추가 검사를 하고 최종 결과를 들으러 갔더니 담당 의사는 지금은 치료를 시작하지 말고 경과를 관찰하는 게 좋겠다는 것이다. 세상에 암인데 치료 대신 관찰하자고 하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온몸 곳곳에 덩어리, 증상도 진행도 제각각
 
림프종은 우리 몸의 면역 작용에 관여하는 림프 조직에서 발생한 악성 종양이다. 1832년 영국 의사 토마스 호지킨이 몸에 여러 개의 덩어리가 생기면서 사망한 사람들을 치료한 경험을 처음 기술한 것이 그 시초다. 그 후 동료들이 그의 이름을 따서 ‘호지킨 병’이라고 명명하면서 림프종의 역사는 시작됐다. 이후 림프조직에서 발생했지만 ‘호지킨 병’과 형태나 임상적인 특성이 다른 경우들이 발견됐다. 림프종은 크게 ‘호지킨’과 ‘비(非)호지킨’ 림프종으로 나뉜다. 그 후 의학이 발달하면서 ‘비호지킨’ 림프종 안에서도 암세포의 기원이 되는 세포가 B세포인지 T세포인지에 따라서 다시 수십여가지 세부 아(亞)형으로 나뉘게 됐다. 사람도 성격이 제각각이듯 림프종도 증상도 없고 진행도 느린 조용한 ‘지연성’ 림프종, 열도 나고 하루가 다르게 빠르게 덩어리가 커져가는 공격적인 ‘공격성’ 림프종이 존재한다. 지연성 림프종에도 여러 가지 세부 아형이 있고 각각의 형태 및 질병 진행 여부에 따라 처음부터 치료를 시작할지 아니면 경과 관찰을 할지를 결정하게 된다.
 
엄연히 혈액암의 하나이지만 지연성 림프종에 있어서 몸 안에 질병의 정도가 심하지 않은 경우는 일정 기간 치료를 보류하고 관찰을 한다. 그러다 정말 치료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시점에서 치료를 하더라도 전체적인 치료 성적에 큰 차이가 없다.
 
박씨가 진단받은 여포성 림프종은 지연성 림프종에 해당한다. 갑자기 상태가 나빠지는 병은 아니며 더욱이 림프종 진단 그 자체만으로 절망에 빠질 이유는 전혀 없다. 정확하게 현 상황을 이해하고 정기적으로 관리를 받으면서 살면 일상 생활에 아무런 지장 없이 살 수 있는 것이다. 지연성 림프종 중에도 바로 치료를 시작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는 질병의 범위가 크거나 질병으로 인한 증상이나 이상 징후가 있는 경우 또는 향후 공격적인 타입으로 변할 가능성이 큰 경우 등이 해당된다.
 
그렇다면 공격성 림프종의 경우는 어떠할까. 대학생 이모(21)씨는 한 달 전부터 컨디션이 안 좋고 열감과 오한이 들기 시작했다. 감기 몸살로 생각하고 의원에서 약도 처방받아 복용했지만 가슴도 답답하고 누우면 잔기침도 계속 됐다. 자고 일어나면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있는 일도 생기더니 결국 기침이 너무 심해지고 숨이 차기 시작해 대학병원 응급실에 갔다. 흉부 컴퓨터 단층 촬영을 포함한 검사를 한 결과 심장을 누르고 있는 10㎝가 넘는 큰 덩어리가 발견됐다. 조직검사를 한 결과 공격성 림프종에 해당하는 ‘광범위 거대 B세포 림프종’이란 진단이 나왔다. 이씨가 진단받은 공격성 림프종은 진행 속도도 빠르고 증상을 유발한다. 목이나 겨드랑이 또는 사타구니에 있는 림프절에서 공격성 림프종이 발생하면 덩어리가 빠르게 커져 손으로 쉽게 만져진다. 이 때문에 빨리 병원에 오지만 가슴 안쪽에 덩어리가 생기는 경우는 증상이 늦게 나타나는 편이다.
 
뱃속에도 림프절들이 많이 분포돼 있는데 이곳에서 림프종이 발생하면 상당히 커질 때까지 복통 등의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발열이나 오한 등의 증상들이 먼저 나타나 다른 염증 질환 등으로 잘못 알고 검사를 하는 도중에 림프종으로 진단받는 경우가 있는 게 사실이다. 또한 림프종은 우리 몸 어디든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침범된 장기에 따라 다양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예를 들어 중추신경계에 해당하는 뇌나 척추에 발생한 경우는 두통, 성격이나 의식변화, 허리 통증, 마비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고, 대장이나 소장에 발생한 경우에는 장 폐색이나 장 천공으로 응급 수술을 통해 진단되기도 한다. 따라서 림프종에만 특별히 나타나는 증상을 특징지어 말하기는 참 어렵다. 목이나 겨드랑이 림프절이 커지는 경우 역시 다른 질환에서도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뱃속에 생기면 상당히 커질 때까지 모를 수도
 
더욱이 림프종은 그렇게 흔한 병은 아니다. 2015년 국가암등록사업 통계에 따르면 한 해 비호지킨 림프종 환자는 4948명이고 호지킨 림프종 환자는 278명으로 보고됐다. 아직까지 원인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연령이 증가할수록 발생 위험도는 올라간다. 그럼에도 림프종의 빈도는 우리가 흔히 보는 다른 암 질환들보다는 낮으니 위에서 열거한 증상들이 있다고 림프종을 처음부터 걱정하고 두려워할 필요까지는 없다
 
공격성 림프종으로 진단되면 즉시 적극적인 항암 치료를 받는 것이 원칙이다. 간혹 환자 중에 커져있는 림프종 덩어리를 수술로 제거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물어보는 경우가 있는데 검사 결과에서 국소적으로 존재하는 것 같아 보여도 보이지 않게 몸 어딘가에 퍼져있을 가능성이 항상 있다. 처음 진단 후에는 아주 일부 경우를 제외하고는 항암 치료를 한다. 정맥 주사를 통해 들어간 항암제는 전신에 있는 림프종 암세포를 공격한다. 일반적으로 항암 치료를 통해 완전 반응에 도달하면 치료를 종료하고 추적을 하게 된다. 완전 반응이란 의학적인 검사에서 림프종이 남아 있는 증거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완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완전반응에 도달한 후에도 1~2년 내에 또는 수년 후에도 재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략적으로 5년 이상의 시간이 지난 후에도 재발의 증거가 없다면 완치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물론 항암 치료제가 갖고 있는 특성상 여전히 면역도 떨어지고 감염, 출혈 등의 합병증의 위험도가 있기에 치료 중 고생하는 환자들이 많이 있긴 하다. 하지만 이전보다 항암치료의 부작용은 줄어들고 효과는 더욱 높아져 상황이 훨씬 좋아진 것은 사실이다. 현대 의학이 발전하면서 림프종은 항암 치료로 완치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질환이 됐다.
 
김석진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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