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남자가 생리하면 역사도 달라졌을 것이다

아직도 두터운 여성에 대한 편견
이것은 나의 피

이것은 나의 피

이것은 나의 피

방대한 분량의 생리의 문화사
사람들은 왜 생리를 불편해하나
역사·신화·의학·경제지식 망라해

여성이란 이름의 억눌린 존재
화학물질 생리대로 돈 버는 기업
왜 사회는 여기에 입을 닫고 있나

자랑스럽게 여겨야 할 여성성
인류를 구할 생리혈 속 줄기세포
건강한 신체를 위한 연대 필요해

엘리즈 티에보 지음
김자연 옮김, 클
 
문화적으로 금기시되어 온 주제에 과감히 뛰어드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수 세기 동안 고착되어온 편견과 차별에 맞서는 일은 우리를 항상 논쟁의 한가운데로 이끌어간다. 프랑스의 저술가 엘리즈 티에보가 쓴 『이것은 나의 피』는 최근 뜨거운 관심을 모으고 있는 젠더 문제, 그 가운데서도 가장 억압되어온 화제인 생리에 대해 집중적으로 탐구하는 책이다.
 
책을 쓴 엘리즈 티에보는 자신이 바로 40년 가까이 매달 생리를 해왔으며 최근 생리가 멎은 ‘완경(完經)’에 이른 여성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여성이라면 지극히 자연스럽게 경험하는 평범한 신체 현상에 불과한 생리가 왜 바깥세상으로 나오면 그토록 이질적이고 불편한 대상으로 취급받는가? 어째서 생리혈은 불결한 것이며 생리를 하고 있는 여성들은 ‘비정상적인’ 병적 상태에 있다는 편견이 뿌리 깊게 박힌 것일까? 그는 이러한 물음을 하나씩 풀어가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 그리고 남성들에게 성의 속박에서 벗어나 새로운 주체성을 갖도록 제안한다.
 
독자는 생리라는 주제가 이토록 방대하고도 심원한 지적, 문화사적 반경을 가로지르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될 것이다. 결코 무겁지 않은, 단출한 분량의 저서에서 그는 역사, 신화, 종교, 의학, 과학, 문화, 사회, 경제, 환경까지 이르는 총체적인 영역을 두루 펼쳐 보인다. 가히 ‘생리의 문화사’라는 별명을 붙일 만하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설명 사이사이에 시의적절한 사건 사례들을 적절히 끼워 넣음으로써, 저널리스트로서의 감각을 발휘하는 일도 잊지 않는다.
 
여성 생리에 대한 언급을 금기시하는 풍토는 생리대 생산 기업들의 무분별한 유해 화학물질 사용으로 이어진다. 유기농 여성용품도 출시된다. [중앙포토]

여성 생리에 대한 언급을 금기시하는 풍토는 생리대 생산 기업들의 무분별한 유해 화학물질 사용으로 이어진다. 유기농 여성용품도 출시된다. [중앙포토]

그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사례가 있다. 2015년 4월 런던 마라톤을 완주한 인도계 미국인 가수 키란 간디의 일화다. 경이로운 것은 그가 탐폰이나 패드 같은 생리용품을 전혀 착용하지 않은 채, 생리 첫날 마라톤 코스를 완주했다는 사실이다. 피로 물든 가랑이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달리는 모습이 여과 없이 공개된 보도 사진은 당시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사회의 편견을 깨뜨리는 일은 아직 요원했던 것일까. 사진을 본 사람들은 그의 모습이 ‘언레이디라이크(unladylike)’했다는 내용을 포함한 비난의 글을 사회관계망 서비스를 통해 퍼뜨렸다.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뉴스 사이트들이 옷과 침대 시트에 묻은 핏자국도 얼른 삭제하곤 하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자신의 생리혈을 당당하게 공개한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이 보여준 용기는 상상 이상으로 큰 것이었다.
 
한편 저자는 많은 분량을 할애해서 생리에 얽힌 사회적 편견과 혐오를 이용해서 돈을 벌어들이는 대기업과 의료계들을 비판하고 있다. 생리를 침묵과 어둠의 영역에 가두면서 쉬쉬하는 동안 대기업은 독한 화학물질을 사용한 생리용품과 생리전증후군에 관련된 약물을 판매해 큰 수익을 올리고 있지 않은가.  
 
생리를 억압하는 대가로 여성들은 건강을 잃는데도 이에 대처해야 할 책임 있는 기관들은 이러한 사회문제를 서둘러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왜 우리 사회는 생리에 대해 이렇게 부당한 대우를 해온 것일까? 간단하다. 생리를 하는 주체가 ‘여성’들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만일 생리가 여성뿐 아니라 남성들도 경험하는 일이었다면 우리가 이토록 생리를 금기시하도록 교육받아왔을까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만일 그랬다면 인류는 생리를 자랑스러운 ‘남성성’의 표식으로 여기며 훨씬 당당하게 대하지 않았을까.
 
생리의 명예회복을 위해 저자는 대부분 미처 모르고 넘어갔을 사실 하나를 추가하고 있다. 바로 생리혈 안에 인류의 생명을 구하는 데 기여할 줄기세포가 들어있다는 것이다.  
 
‘자궁내막 재생 세포’라고 명명된 이 새로운 줄기세포들은 탯줄에서 얻은 것보다 성장 인자 비율이 무려 10만배나 더 높다고 한다. 현대 과학을 통해 생리에 덧씌워진 편견을 깨뜨리는 발견이 속속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대에 걸쳐 각인된 견해를 바꾸는 일은 좀처럼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편견을 바꾸어 나갈 것인가?
 
저자는 스스로를 생리하는 사람으로 규정함으로써 정신적 신체적 해방을 추구하는 미국의 제3세대 페미니스트들의 운동인 ‘멘스트루에이터(mentstruator)’ 운동에 대해 소개하는 것으로 책을 마무리 했다. 결국 변화는 새로운 세대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연대함으로써 이끌어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듯하다. 이러한 운동을 통해서 살아있는 신체의 건강한 활동을 상징하는 생리는 “우리의 세포, 우리의 몸, 우리의 욕구, 그리고 우리의 운명”을 위해 연대하는 구심점의 핵으로 작동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생리하는 여성들의 삶과 목소리를 조명한 영화 ‘피의 연대기’(2017)가 개봉되어 입소문을 타면서 신선한 충격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자신이 생리하는 존재임을 당당히 밝히고 더 건강하고 자유로운 삶을 누릴 권리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바로 동시대를 사는 여성들과 이번 달에도 어김없이 생리를 기다리고 있는 내 몸 안에서 살아 꿈틀대고 있다.
 
이소연 문학평론가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