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중앙시평] ELS, 전문가 역설 그리고 마술사의 질문

김형태 서울대 경영대 객원교수·전 자본시장연구원장

김형태 서울대 경영대 객원교수·전 자본시장연구원장

마술(magic)이란 무엇인가. 마술은 “당신이 갖고 있는 기대와 가정이 당신을 배반하게 만드는 것”이다. 물리학을 전공한 마술사 알렉스 스톤이 한 말이다. 정말 멋지고 기발한 정의 아닌가? 알렉스 스톤은 특정분야 전문가를 제일 속이기 쉽다고 했다. 그 다음이 나이든 일반인 그리고 제일 속이기 어려운 사람은 아무런 가정과 편견이 없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이라고 했다. “전문가의 역설”이라고도 하는데, 전문가에게는 쌓이는 지식과 경험에 비례해 알게 모르게 너무나 많은 가정, 집착, 고정관념이 또한 쌓이기 때문이다. 속기 쉽고 혁신하기 어려운 이유다.
 
2003년 처음 한국에 ELS(주가연계증권)가 도입되던 당시는, “증권은 주식과 채권밖에 없다”라는 고정관념이 시장을 지배하던 시기였다. 이 고정관념을 깨고 도입된 것이 바로 ELS다. 단군 이래 가장 성공적인 금융상품으로 자리 잡았고 진화를 거듭한 지금, “코스피지수, 홍콩H지수(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 등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스텝다운형 ELS”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현재 ELS를 보면, “전문가의 역설”을 깨고 탄생한 ELS지만 오히려 새로운 “전문가의 역설”에 빠진 듯하다. 만일 알렉스 스톤이라면 ELS 시장 전문가인 증권사에게 어떤 질문을 던질까.
 
첫째, 왜 홍콩H지수에 그렇게 집착하는가. 전문가의 대답은 이럴 것이다. ELS의 특성상 다양한 옵션이 내포되므로 옵션가치를 키우려면 지수의 변동성이 커야 한다. 더불어 변동성 위험을 쉽게 헤지할 수 있는 선물옵션시장이 필요하다. 이 두 조건을 만족하는 주가지수는 이외로 별로 없다. 한국의 코스피, 홍콩H지수, S&P500, 니케이225, 유로스톡스50가 대표적이다. 나스닥지수는 장내파생시장이 없어 이를 기초로 하는 ELS가 없다.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넷플릭스만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ELS도 없고 스페인, 이탈리아, 러시아 주가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ELS도 없다. 전문가인 증권사 입장에서 헤지를 할 수 없으니 ELS도 없는 게 당연하다. 그러다 보니 기초자산에 쏠림이 쉽게 생긴다. 누구나 변동성이 매우 큰 H지수를 사용하는 것이다. 홍콩경제나 시장이 크게 흔들리면 대부분 상품이 녹인 구간(지수가 정해진 수준을 넘어 급락해 고정수익을 받지 못하는 지수구간)에 진입할 수도 있지만 투자자 입장에선 별 선택의 여지가 없다.
 
둘째, 왜 선물옵션시장 즉 장내파생상품을 통한 헤지에만 집착할까. 전문가의 대답은 이럴 것이다. 장외파생을 통한 헤지는 비싸고 거래상대방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전문가의 가정과 고정관념이 드러나는 답변이다. ELS는 장내파생으로만 헤지한다는 고정관념 말이다. 장외파생까지 생각을 확대하면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 대상 ELS를 설계할 수도 있다. 비용을 줄이며 장외파생을 활용하는 것이 바로 증권사 능력이다. 장내파생상품 외에 장외파생상품을 통해 헤지를 할 수 있는 증권사가 있다면 이 증권사는 기초자산을 획기적으로 확대할 수 있다.
 
여기서 생각나는 회사가 아마존이다. 아마존이 “시간”에 집착하는 이유는 배송시간을 줄일수록 판매할 수 있는 품목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과일, 야채, 생선회까지 말이다. 그래서 드론을 개발하고 배송회사들을 M&A하는 것이다. 아마존에 “시간”이 중요하듯, ELS 설계하는 증권사엔 “헤지”가 중요하다. 헤지수단이 증가할수록 증권사가 기초자산으로 투자하고 편입할 수 있는 대상이 획기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장외파생만을 활용하든, 장내파생과  장외파생을 결합하든, 희한하게 주가지수와 상관계수가 높은 대상을 발견해 내든 그건 증권사의 몫이다. 분명한 사실은 이런 능력을 갖춘 증권사는 아마존처럼 글로벌시장도 지배할 수 있다. 피 터지는 레드오션 H지수에 집착하지 않고서도 말이다.
 
셋째, 왜 주가가 일정수준 이하로 떨어지지 않으면 고정된 수익을 주는 구조에 집착할까. 전문가 대답은 이럴 것이다. 저금리시대엔 상대적으로 높고 고정된 수익을 제공한다는 것은 큰 매력이자 장점이라고. 맞는 대답이다. 그래서 은퇴자를 비롯해 많은 투자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안전자산인 국채를 제공하는 것은 정부의 역할이지만, 안정성과 수익성을 겸비한 ELS 같은 금융상품을 제공하는 것은 금융시장의 역할이다. 특히 저성장과 저금리가 고착화된 시대에 국가 전략적으로 갖추어야 할 기능이기도 하다.
 
홍콩경제와 H지수 때문에 또다시 출렁대는 ELS 시장을 보며 떠오른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과거엔 국내 증권사가 글로벌기준에서 볼 때 ELS 전문가가 아니었으니 “전문가의 역설”을 운운할 이유가 없었다. 지금은 다르다. 세계 어딜 가 봐도 한국 정도 되는 ELS 시장을 찾기 힘들다. 그 동안 잘해 왔고 성공적이었으니 그만큼 극복하기도 힘들다. 결론은 명확하다. 한국 ELS 시장의 또 다른 비상을 위해, 이젠 홍콩H지수 위주의 ELS를 극복해야 한다. 장내선물옵션에만 집착하지 말고 새로운 독창적 방식으로 변동성을 헤지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스스로 원하는 “변동성 패턴”을 만들어 내는 증권사가 차세대 승자다.
 
김형태 서울대 경영대 객원교수·전 자본시장연구원장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오영환 부소장 : oh.younghwan@joongang.co.kr (02-751-5515)
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