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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받은 트럼프노믹스, 금리인상 늦추고 무역전쟁 가속

미국 중간선거 이후 경제 전망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12월 기준금리 인상 뜻을 그대로 유지했다. 파월은 8일(현지시간) 이틀간의 연방공개시장정책위원회(FOMC)를 마치고 발표한 성명에서 “노동시장이 계속 강세를 유지하고, 경제 활동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다음달 회의 때 올해 네 번째 금리인상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월가 사람들은 풀이했다. 성명서는 판에 박힌 내용으로 가득했다. 톰슨로이터 등은 전문가의 말을 빌려 “무역전쟁이나 금융시장 불안 등 최근 현안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전까지 FOMC 성명엔 직전에 발생한 현안을 판단한 내용이 들어가곤 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통화정책에 대해 말할 빌미를 주지 않겠다는 파월의 의지가 엿보이는 듯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파월이 그럴 만했다. 올 7월 이후 트럼프는 ‘윌슨 레거시(legacy)’를 무시하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미국 대통령은 자기 사람을 Fed 의장으로 지명해도 통화정책엔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는 전통이다. Fed를 처음 세운 우드로 윌슨 전 대통령(재임 기간 1913~21년)에 의해 시작된 전통이다. 그런데 6일 중간선거 결과를 보면 트럼프의 Fed 때리기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영국계 경제분석회사인 캐피털이코노믹스(CE)는 중간선거 직후 내놓은 보고서에서 “공화당이 상원을, 민주당이 하원을 장악했다”며 “의회 양분은 제롬 파월 Fed 의장에 대한 정치적 압력이 커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CE는 정치적 압력을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았다. 다만 최근 상황에 비춰 정치적 압력은 트럼프의 비판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트럼프는 올 7월 이후 일곱 차례에 걸쳐 파월의 금리 인상을 비판했다. 에둘러 꼬집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맘에 들지 않는다” “Fed가 미쳤다”는 수준은 물론 심지어는 “파월의 의장 지명을 후회하게 될 것 같다”는 말까지 했다. 이는 그가 백악관의 내밀한 곳에서 참모들과 한 이야기가 아니다. 폭스TV 등 언론 인터뷰나 선거유세 등에서 공공연하게 말했다. CNBC 등 미국 언론들은 “통화정책에 대한 트럼프의 직접적인 비판은 전례 없는 일”이라는 전문가들의 비판을 전했다.
 
 
러스트벨트·농장지대 지지 얻어
 
이런 트럼프의 압박이 더욱 거세질 판이다. 특히 중간선거에서 무역전쟁의 정당성이 재확인됐다. 톰슨로이터는 “무역전쟁의 타격이 큰 러스트벨트(Rust Belt)와 농장지대에서 트럼프가 승리를 거뒀다”고 전했다. 중국을 겨냥한 무역분쟁에 유권자들이 지지를 보낸 것이다. 이런 선거결과를 등에 업고 트럼프는 이달 말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을 한다. 트럼프는 시진핑의 양보를 최대한 끌어내야 한다. 벌써 압박 공세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미 상무부 “중국산 일반 합금 알루미늄 판재에 대해 최종 반덤핑·반보조금 관세를 96.3%~176.2% 부과한다”고 7일 발표했다. 트럼프의 압박이 통해 타협이 이뤄지면 무역전쟁이 한풀 꺾인다. 하지만 타협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면 무역전쟁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미 기업의 실적악화와 경기 둔화는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중간선거 결과 재정수단을 이용한 경기부양이 어려워 보인다. 민주당이 하원을 장악해서다. 미국 금융그룹인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BofAML)는 최근 보고서에서 “트럼프와 민주당이 경기부양에 합의할 가능성은 실낱 같은 희망”이라고 묘사했다. 경제정책을 놓고 입장 차이가 커서다. 트럼프는 추가 감세를 추진하고 싶어한다. 선거 유세 동안 “중산층을 위한 세금 감면”을 입에 올렸다. 그는 지난해 말 법인세 등을 중심으로 한 1차 감세를 이끌어냈다. 감세는 미 기업들의 순이익이 무역전쟁 와중인 올 3분기에 나쁘지 않은 바탕이 됐다. 반면, 민주당은 인프라 투자를 원한다. 부자와 법인세 증세도 요구할 참이다. 민주당은 중간선거전에서 “법인세 1%포인트를 올려 앞으로 10년 동안 세수 1000억 달러(약 113조원)를 늘리겠다”고 공약했다. 트럼프와 정면 충돌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Fed는 정치압력에 약한 구조
 
트럼프가 마땅한 재정수단을 동원할 수 없는 상황에서 꺼내들 수 있는 수단은 바로 금리인상 속도 조절이다. 트럼프 눈에 기준금리 인상은 미국제 수출을 막는 행위로 비친다. 그가 통화정책을 경제의 균형을 유지하는 지렛대가 아니라 무역전쟁에서 승리를 얻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보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올 7월 “중국과 유럽연합(EU) 등이 기준금리를 낮추고 있는 와중에 우리만 올리고 있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여차하면 파월을 이적행위자로 몰아붙일 수도 있을 듯하다.
 
역사적으로 미국 정치리더들은 통화수단을 즐겨 이용했다. 영국 화폐 역사가인 고(故) 글린 데이비스는 저서 『화폐역사』에서 “전쟁뿐 아니라 경제 위기 순간 종이돈을 찍어내는 데 주저하지 않은 사람들이 바로 미국 정치인과 중앙은행가들”이라고 꼬집었다. 트럼프의 파월 비판이나 압박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닌 셈이다. 또 트럼프의 압박이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한 미 전문가들의 비판과 다른 얘기다.
 
한 술 더 떠 고(故) 앨런 멜처 전 카네기맬런대 교수는 저서 『Fed역사』 등에서 “Fed는 태생부터 정치적이었다”고 말했다. Fed의 이사회가 대통령에 의해 지명된 점을 두고 한 말이다. 멜처 교수는 “대통령 지명은 Fed 설립 움직임이 본격화한 1910년 전후엔 금기였다”고 설명했다. 당시 영국 영란은행(BOE)은 국가 기관이 아니었다. 런던 시중은행들이 출자해 세운 ‘마지막 대부자’였다. BOE 주주인 시중은행가들이 이사를 지명했다. 멜처 교수에 따르면 미 월가는 공화당을 움직여 BOE 형태의 중앙은행을 세우는 법안을 제출했다. 금리를 조절하지만 민간 은행이면서 본부를 뉴욕에 두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1912년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 윌슨이 당선됐다. 월가의 꿈이 물거품이 됐다. 윌슨은 BOE 형태의 중앙은행 설립을 월가의 음모라고 봤다. 대신 그는 대통령이 Fed 이사를 지명하고 본부를 ‘돈의 수도’ 뉴욕이 아닌 ‘정치의 수도’ 워싱턴에 두는 법안을 만들었다. Fed 이사가 월가 시중은행의 선임이 아니라 대통령의 지명을 받기 때문에 정치적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구조다. 또 미국을 12개 지역으로 나누고 지역에다 준비은행을 설치하도록 했다. 현재 Fed의 탄생이다.
 
 
“기준금리 예상보다 낮아질 가능성”
 
윌슨이 자신의 입맛대로 Fed를 설립했지만, 공화당의 견제 때문에 이사 인준에 애를 먹었다. 윌슨은 공화당 의원들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이 지명은 하지만 통화정책에 개입하진 않는다’는 전통(윌슨 레거시)이 자리 잡았다. 그의 레거시는 구두 약속이었다. 대통령의 성격이나 정치 상황에 따라 흔들리곤 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1980년대 초에 공세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사냥한 폴 볼커 당시 의장에 볼멘소리를 했다는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보다 더 직접적인 사례가 있다. 70년대 초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당시 Fed 의장인 아서 번스를 만나 저금리 정책을 요구했다. 번스는 실제 금리를 낮게 유지해 닉슨의 72년 재선을 도왔다.
 
파월도 번스처럼 할까. 파월은 올 7월 언론과 인터뷰에서 “(통화정책을 결정할 때) 정치적 고려를 전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월가 사람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BofAML은 공화당이 상원을, 민주당이 하원을 장악하는 바람에 “기준금리가 예상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올 9월 FOMC 참가자들의 전망에 따르면 내년 기준금리는 2.75~3.5% 수준이다. 월가 사람들이 Fed가 올 12월 한 차례에 이어 내년 3차례 정도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예상하는 근거다.
 
BofAML의 예측대로라면 이른바 ‘트럼프 리스크’가 현실화한다. 트럼프 리스크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수석 칼럼니스트인 마틴 울프가 지난해 12월 중앙SUNDAY와 인터뷰에서 한 경고다. 그때 울프는 “파월 지명자(당시는 지명자 신분)가 트럼프 압력에 맞설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며 “그가 트럼프의 입김에 휘둘려 Fed의 컨센서스 대로 긴축하지 못하면 미 경제가 끝내 경착륙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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