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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벽 사이 햇살, 요리처럼 재료 살려야 ‘맛있는 건축’

도시와 건축
미국 포도산지인 캘리포니아주 나파밸리에 있는 도미누스 와이너리 전경. 스위스 건축가 헤르조그 앤 드 뫼롱이 지은 긴 박스 형태의 건축물이다. [사진 도미누스 에스테이트 웹사이트]

미국 포도산지인 캘리포니아주 나파밸리에 있는 도미누스 와이너리 전경. 스위스 건축가 헤르조그 앤 드 뫼롱이 지은 긴 박스 형태의 건축물이다. [사진 도미누스 에스테이트 웹사이트]

요리사가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면 양념보다는 재료 본연의 맛을 드러내는 식으로 요리가 발전한다고 한다. 건축도 성숙해지면 건축 재료 본연의 특색을 드러내는 식으로 발전한다. 요리에서 요리재료를 설명할 때 ‘맛’ 혹은 ‘식감’이라는 표현을 쓴다면 건축에서는 재료의 ‘물성’이라는 표현을 쓴다. 물성은 그 재료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특성을 말한다.  
 
예를 들어서 나무는 가볍고 조각하기 쉽고, 돌은 가공은 어려우나 쌓아서 만들면 무게감을 느끼게 해주는 식의 차이점이다. 요리와 건축은 비슷하다. 그런데 다른 점이 있다면 건축물은 너무 크다는 점이다. 그래서 하나의 건축물을 하나의 재료만으로 만들 수 없다. 또한 요리에서는 여러 재료들이 한데 버무려져서 한 덩어리로 놓이면 된다. 하지만 건축은 내부의 빈 공간을 사용하기 위해서 만드는 것이다 보니 재료들이 어느 특정한 구조로 모여서 안에 빈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건축의 재료들은 특별한 방식으로 합쳐져야 한다.  
 
이렇듯 다양한 재료가 합쳐진 방식을 뜻하는 단어가 있는데 그것을 ‘텍토닉’이라고 한다. 번역하면 ‘구축’이라고 할 수 있다. 텍토닉이라는 단어는 목수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 ‘텍톤’에서 유래한다. 건축을 영어로 ‘아키텍처’라고 하는데 ‘아키’는 으뜸이라는 뜻이고 어미인 텍처도 텍톤과 같은 어근을 가지는 말이다. 영어로 건축가를 ‘아키텍트’라고 하는데 뜻을 풀어보면 목수들의 최고 우두머리라는 의미가 될 듯싶다.
 
 
음식 식감처럼 건축 재료의 ‘물성’ 중요
 
건축물에서 인문학적인 의미를 빼고 단순히 물리적인 덩어리로만 바라본다면 물성과 텍토닉은 건축평가에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일반적으로 건물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응, 그 벽돌건물” 혹은 “유리로 된 건물 있잖아”라고 말한다. 그만큼 우리가 건축물을 접할 때 처음 드는 생각은 그 건물의 재료다. 말할 때의 습성으로 보아 우리의 의식에서 건축물을 카테고리로 분류할 때 ‘재료’가 처음의 특징으로 규정되는 듯하다. 그만큼 건축물에서 재료는 중요하다.  
 
그런데 건축에서 이 재료는 어떻게 결정이 될까. 건축물의 재료는 기후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최초의 문명인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문명을 보면 주로 사용된 건축 재료가 ‘흙벽돌’이다. 그 이유는 메소포타미아 지방은 건조 기후대이기 때문이다. 비가 적게 내리니 커다란 나무가 없다. 큰 강의 하구였기 때문에 대형 돌들보다는 장마철 범람 때마다 쌓이는 진흙이 가장 흔한 재료였다.
 
이들의 문명은 동쪽으로 계속 이동해서 극동아시아에까지 이른다. 그런데 극동아시아에 위치한 우리나라는 같은 방식으로 벽돌건축을 하지 않는다. 이유는 벽돌로 벽을 쌓아서 만들면 두 가지 문제점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기후는 장마철에 집중호우가 내린다. 따라서 벽돌 벽은 빗물에 씻겨 나가고 무거운 벽돌 벽은 장마철에 비로 땅이 물러지면 벽이 쓰러질 위험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집을 지을 때 가벼운 재료인 나무를 주재료로 사용하게 되었고, 낮은 담장을 쌓을 때에나 흙으로 된 담을 쌓았다. 비가 오는 특징 때문에 우리나라 건축에서는 경사 지붕이 필수다. 지붕의 처마가 길게 나와서 나무기둥이 빗물에 젖는 것을 막아야 했고 심지어 담장에도 지붕을 씌웠다. 이처럼 건축 디자인은 기후가 결정한다. 과거에는 물류가 발달돼있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그 지역의 재료를 사용해야만 했다. 그러다보니 지역의 재료와 기후가 합쳐져서 각 지역마다 특색 있는 건축물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물류가 너무 발달해서 지나치게 다양한 타지의 재료가 들어와서 지역의 독특한 디자인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다.
 
 
‘세상에 하나뿐인 공간’ 고수들의 건축 경지
 
건축물의 벽은 철망 안에 돌을 넣어 만든 ‘게비온’ 형식이어서 햇빛이 돌 틈으로 들어와 건물 내부를 은은하게 밝힌다. [사진 도미누스 에스테이트 웹사이트]

건축물의 벽은 철망 안에 돌을 넣어 만든 ‘게비온’ 형식이어서 햇빛이 돌 틈으로 들어와 건물 내부를 은은하게 밝힌다. [사진 도미누스 에스테이트 웹사이트]

요리사가 경지 이르면 자기 동네 재료로 승부를 한다. 어느 요리사나 처음에는 해외요리를 배워서 실력을 뽐내지만 고수들은 나중에는 자기들이 사는 지역의 산나물처럼 주변의 흔한 재료를 가지고 자신만의 요리를 만들고 싶어 한다. 건축가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고수는 그 지역성을 드러내는 재료로 승부를 한다.  
 
좋은 사례가 ‘헤르조그 앤 드 뫼롱’이라는 스위스 건축가가 캘리포니아에 지은 포도원인 ‘도미누스 와이너리’다. 이 건축물의 모양은 그냥 긴 박스가 옆으로 누워있는 단순한 형태다. 그런데 가까이서 바라보면 벽의 표면이 좀 특이하게 생겼다. 건물을 더 가까이 가서 보면 건물의 벽이 철망 안에 돌들이 들어가 있는 재료로 마감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철망 안에 돌을 집어넣은 것을 ‘게비온’이라고 한다. 게비온은 보통 토목공사를 할 때 경사지 흙이 무너지지 않게 만들 때 사용되는 재료이다. 도미누스 와이너리에서 특별한 점은 이 게비온의 재료가 주변에서 구한 돌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더 특이한 점은 철망에 돌을 집어넣을 때 벽의 아래쪽으로 갈수록 작은 돌을 사용하고 위로 갈수록 큰 돌을 넣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작은 돌을 철망에 넣으면 밀도가 더 높은 게비온이 되는데, 밀도가 높은 게비온을 벽의 아래에 위치시켜야 상부벽의 하중을 더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놀라운 점은 왜 이런 방식을 사용했느냐에 있다. 이 건물이 위치한 곳은 캘리포니아로 태양광이 강한 곳이다. 그런 곳에 있는 건물의 벽을 성글게 돌을 집어넣어서 만든 게비온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강한 햇빛이 그 돌 사이를 통해서 안쪽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래서 건물의 안쪽 복도에서는 이 세상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불규칙하면서도 아름다운 빛의 향연이 연출된다. 마치 우리가 숲속에서 불규칙하고 정신없는 나뭇가지와 나뭇잎 사이로 빛이 들어오는 것과 비슷한 아름다운 빛의 연출이다. 이것이 성숙한 건축가가 지역의 재료와 그에 알맞은 구축법을 이용해서 세상에 하나뿐인 공간을 만드는 방식이다. 고수만이 할 수 있는 건축의 경지다.
 
독일의 바겐도르프에 있는 ‘클라우스 경당’은 단순한 박스 형태의 콘크리트 덩어리가 들판 위에 세워진 모습을 보인다. [중앙포토]

독일의 바겐도르프에 있는 ‘클라우스 경당’은 단순한 박스 형태의 콘크리트 덩어리가 들판 위에 세워진 모습을 보인다. [중앙포토]

또 다른 스위스 건축가인 ‘페터 줌토르’의 작품인 ‘클라우스 경당’이라는 작은 교회는 또 다른 느낌의 텍토닉의 경지를 보여준다. 이 건축물은 겉에서 보면 단순한 박스형태의 콘크리트 덩어리가 들판 위에 세워진 모습이다. 그런데 내부에 들어가 보면 모양을 알 수 없는 동굴 같은 공간이 있고 내부벽은 표면이 거친 검정색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목한 결이 잡혀 있는 거친 검은 돌 같은 느낌이다.  
 
경당 안에 들어서면 검게 불에 탄 나무결이 그대로 살아 있는 내벽과 뾰족하게 열린 천창에서 쏟아지는 빛이 만나 경이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중앙포토]

경당 안에 들어서면 검게 불에 탄 나무결이 그대로 살아 있는 내벽과 뾰족하게 열린 천창에서 쏟아지는 빛이 만나 경이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중앙포토]

이런 공간이 만들어진 과정을 보자. 우선 건축가는 가늘고 긴 통나무를 여러 개를 세워서 쌓고 그 밖에 박스모양의 거푸집을 만들었다. 그 안에 콘크리트를 붓고 다 굳은 다음 바깥의 상자형 거푸집은 걷어내고 안에 쌓아놓은 통나무는 불을 붙여서 태워버렸다. 통나무가 타면서 만들어지는 검정색 타르는 콘크리트 벽체에 숯처럼 들러붙으면서 통나무 결이 그대로 살아있는 거친 표면의 검정색 콘크리트 내부벽체가 완성이 된 것이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공법이다. 줌토르는 수백 년 동안 내려오던 나무 거푸집이라는 전통은 그래도 살리면서 나무 거푸집을 ‘뜯어낸다’라는 동사 대신에 ‘태우다’라는 다른 동사를 접합시켜서 새로운 텍토닉의 건축물을 만들어냈다. 기발한 발상이다. 이처럼 같은 콘크리트 재료라고 하더라도 다른 텍토닉을 접합시키면 새로운 건축이 만들어진다. 물성과 텍토닉은 마치 음악에서 멜로디와 박자처럼 두 개가 합쳐져서 하나의 아름다움을 완성한다.
 
추운 날 복잡한 시계부속을 가지고 씨름을 하던 민족의 후예라서 그런지 이들 스위스 건축가들은 텍토닉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여준다. 사실 우리도 과거에는 물성과 텍토닉에 뛰어난 건축물을 만들었다. 한옥은 나무재료 하나하나를 깎고 대패로 밀고 조립해서 만들어진 건축물이다. 한옥이 감동을 주는 이유는 나무라는 물성이 잘 살아있고 그것을 정성껏 조립해서 만든 텍토닉이 잘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대에 와서는 우리가 건축물을 너무 덩어리로 대충 짓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수메르문명의 점토판, 토기, 벽돌건물, 그리고 우리나라의 한옥은 모두가 다 물성과 텍토닉이 잘 드러난 디자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건축물이 가지는 여러 가지 미학중 하나인 물성과 구축미를 잘 보여주는 건축물이 이 땅에 회복되기를 기대해본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
하버드·MIT에서 건축 공부를 했다. 세계적인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 사무소에서 실무를 익혔다. 젊은 건축가상 등을 수상했고 『어디서 살 것인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저술활동도 활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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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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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