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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뱅크에선 의사나 아이나 1시간 노동 값어치 똑같다

[박정호의 사람풍경] 에드커 칸 ‘타임뱅크’ 창립자
에드거 칸 박사가 벽시계를 뒤에 두고 생각에 잠겨 있다. 그에게 1시간의 노동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간의 고귀한 행동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에드거 칸 박사가 벽시계를 뒤에 두고 생각에 잠겨 있다. 그에게 1시간의 노동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간의 고귀한 행동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엄마 뱃속에서부터 평등을 배웠다는 사람이 있다. ‘타임뱅크’ 창립자로 유명한 미국 사회운동가 에드거 칸(83) 박사다. “쌍둥이 여형제가 있다. 엄마 자궁에서 열 달을 함께 지내지 않았나. 그때부터 나눔과 평등을 배웠다”라며 웃었다. 하지만 그는 단단했다. 인터뷰 내내 인간·이웃·사회·가난·정의·지역·공동체 등을 꺼냈다. 긴긴 세월 담금질한 노년의 지혜가 번뜩였다.
 
우리에게 생소한 타임뱅크는 돈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한다. 이웃을 위해 1시간 일하면 1크레딧(신용점수)을 쌓고, 그간 모은 크레딧만큼 남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중요한 건 일에 차별을 두지 않는다는 점. 남녀노소 구분이 없다. 숙달된 의사든, 코흘리개 꼬마든 1시간 노동은 동일한 값어치를 인정받는다. 혈액은행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타임뱅크는 사랑·헌신·우애·돌봄·양육 등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주목한다. 어린이·노인·장애인·소수인종 등 사회적 약자를 껴안는다. 돈이 최고인 자본주의 시스템을 보완하는 ‘제2의 경제’를 겨냥한다. 1대99 사회, 초고령사회에도 안전망을 치려 한다. 지난 40년 타임뱅크 씨를 뿌리고, 땅을 일궈온 칸 박사를 7일 만났다.
 
 
40개 국가에 1700여 개 타임뱅크
 
칸 박사가 지난 7일 서울 생명보험교육문화센터에서 강연하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칸 박사가 지난 7일 서울 생명보험교육문화센터에서 강연하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1980년 처음 타임뱅크를 생각했다.
“예일대 로스쿨을 나왔다. 젊은 변호사 시절부터 사회정의를 향해 뛰어왔다. 흑인·인디언 등의 인권신장·빈곤퇴치를 위해 일했다. 그러다 몸에 탈이 났다. 심장의 60%가 망가졌다. 그때 저를 친절하게 돌본 간호사·조무사·자원봉사자 등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나를 위해 무엇이든 했다.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서비스를 어떻게 하면 함께 나눌 수 있을까 생각했다.”
 
시간을 저축한다는 개념이 새롭다.
“경제학을 제대로 배우러 런던정경대(LSE)에 갔다. 그곳 학자들은 처음에 고개를 저었다. 경제활동이라면 비용보다 이익이 커야 하는데 타임뱅크는 남을 위한 시간(비용)과 내가 돌려받는 시간(이익)이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익이 꼭 금전만의 문제일까. 성취감·자존감도 이익이 된다. 일례로 자원봉사를 생각해보라.”
 
자원봉사와 차별점을 강조하는데.
“시혜자가 일방으로 베푸는 자원봉사와 달리 타임뱅크는 수혜자도 노동을 한다. 호혜성이 원칙이다. 예컨대 외출이 불편한 노인도 우울증 환자의 전화 친구가 될 수 있다. 할아버지가 손자의 숙제를 도와주면 역으로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컴퓨터를 가르쳐줄 수 있다. 그런 고리를 넓혀가다 보면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게 된다. 타임뱅크는 사랑의 노동이다.”
 
시장경제를 부인할 수는 없다.
“돈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사회 전반의 지나친 자본화를 걱정한다. 그리스 신화의 미다스를 떠올려보자. 손이 닿는 모든 게 황금으로 변하는 미다스는 되레 그것 때문에 사랑하는 딸마저 잃었다. 음식을 먹을 수도 없었다. 돈이 축복이 아닌 저주가 됐다. 요즘은 어떤가. 다들 돈, 돈 하고 살지 않나. 황금송아지를 좇다 이웃을 잃고 있지 않나. ‘미다스 단일경작’의 폐해다.”
 
무슨 말인가. 단일경작이라니.
“오래전 아일랜드 감자기근을 생각해보라. 감자는 아일랜드 경제의 기둥이었다. 하지만 재앙이 닥쳤다. 단일품종만 경작하다가 특정 바이러스에 걸린 감자가 죽어갔다. 19세 중반 수확이 급감하면서 100만 명이 아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일경작의 비극이다. 타임뱅크는 화폐 단작(單作)경제에 또 다른 돈을 심는 다종작(多種作)경제로 불 수 있다.”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두고 있나.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40여 개국 1700여 타임뱅크가 설립돼 있다. 미국·영국에는 각각 300여 단체가 있다. 한국에도 경북 구미시 사랑고리와 서울 노원구 시간은행이 있다. 여러 지자체에서 고령화 문제를 푸는 방안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들었다. 미국 뉴욕 대교구가 운영하는 타임뱅크의 경우 회원이 1300명이나 된다. 회원들은 그간 저축한 크레딧으로 야채를 사고, 가전제품도 수리한다. 모르는 사람끼리 친구가 된다. 유대감이 쌓이다 보니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고, 의료비도 줄었다고 한다.”
 
 
돈만 좇는 ‘화폐 단작경제’ 보완
 
영국 타임뱅크에서 사용하고 있는 1시간 타임 크레딧 지폐.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영국 타임뱅크에서 사용하고 있는 1시간 타임 크레딧 지폐.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그래도 노동의 질이 다르지 않는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내가 하는 1시간 법률상담과 초등생 학습지도 1시간이 같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화폐경제선 큰 차이가 난다. 하지만 영원이란 잣대로 둘을 견주어보라. 비교가 무의미하다. 시장경제 역사는 이제 수백 년이다. 어머니들이 자식들을 키우며 어떤 조건을 붙이는가. 우리는 서로서로를 필요로 한다.”
 
타임뱅크 이전에 공익법률가였다.
“지금은 사별한 첫 아내와 1956년 결혼했다. 나보다 먼저 예일 로스쿨에 들어간 흑인이었다. 당시만 해도 미국 여러 주에선 백인과 흑인의 결혼이 불법이었다. 아내의 고향 메릴랜드주가 그랬다. 합법인 워싱턴 DC에서 식을 올려야 했다. 마치 어제 일만 같다. 로스쿨을 나와 존슨 대통령 법무부에서 빈민퇴치 업무를 맡았다. 아내와 함께 미국 남부를 돌다가 백인과 흑인이 동승했다는 이유 하나로 체포되기도 했다. 이후 흑인·인디언들의 인권·식량 문제에 전념했다. 연방정부를 상대로 많은 소송을 냈다. FBI에 가면 내 사진이 많다. ‘미국 빈민법의 아버지’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래서 자식이 많은 편이다. (웃음)”
 
정의를 위한 전사(워리어)를 자처한다.
“법철학자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정의란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사회적 불의에 저항하는 것이라고 배웠다. 그게 뿌리가 된 것 같다. 법은 사회정의를 위한 도구가 돼야 한다고 믿었다. 가난한 사람을 돕는 법률가를 양성하는 대학도 세웠다. 현재 내가 교수로 있는 워싱턴 DC대(UDC) 로스쿨의 전신이다. 80년 재정위기로 폐교 위기에 놓이자 기금을 모으려 밤낮없이 뛰었는데 그때 심장병이 생긴 것 같다.”
 
그런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나.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다. 항상 부족하다, 충분하지 않다, 더 할 게 남아 있다는 마음으로 살아왔다.”
 
세상이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는다.
“알고 있다. 인내와 끈기가 있기에 오늘도 웃을 수 있다. 타임뱅크는 ‘쓸모 없는 사람은 없다’고 믿는다. 아무리 어렵거나 아픈 사람도 남에게 힘이 될 수 있다.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가 된다. 윈도 같은 컴퓨터 운영시스템(OS)이 있다. 워드·엑셀·파워포인트 등을 작동시키는 밑천이다. 타임뱅크는 현재 돈으로 도는 운영체제를 사람으로 바꾸려고 한다.”
 
기억에 남는 성공 사례라면.
“2년 전이다. 출소한 수감자들이 우리 집을 찾아왔다. 할 일이 없다며 절망에 빠진 상태였다. 그들에게 아이들의 우범지역 등·하교 안내를 맡겼다. 그들은 그간 모은 크레딧을 바탕으로 직장을 찾을 수 있었다. 지금은 인공지능(AI) 시대다. 자동화에 따른 대규모 실업이 우려된다. 소외계층일수록 사회변동에 취약하다. 이웃에 대한 신뢰와 헌신이 절실한 때다. 타임뱅크 영역이 확대될 것으로 본다.”
 
개인적으로 크레딧을 어디에 쓰나.
“나는 불량소비자다. (웃음) 잘 쓰지를 못했다. 한 달 전에 춤을 배우는 데 6크레딧을 썼다. 다리에 힘이 없어 스텝을 연습했다. 어쩌면 타임뱅크가 나를 살렸다고 볼 수 있다. 심장이 85%까지 치료됐다. 하루 두 시간도 움직일 수 없다던 내가 지금은 하루 14시간, 주 7일 일한다. 그렇게 우리 모두 건강했으면 한다. 우리는 세상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유대인 성인식 거부했다가 팔순에 치러 … “이제 열여섯 살”
“이제 열여섯 살이 된 게 아닐까요.”
 
칸 박사가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실제 나이 여든셋인 그가 아닌가. 설명을 들어보니 수긍이 갔다. 그는 유대인이다. 유대교에선 전통적으로 남자는 열셋에 성년의례를 치른다. 히브리어 성서를 읽어야 하고, 또 이를 음송(吟誦)할 줄 알아야 된다. 아이들은 율법 관련 책임을 지게 되며, 사회활동에도 참여하는 권리를 얻는다.
 
칸 박사는 열셋이 됐을 때 성인식을 거부했다. 부모·친지들이 어른이 된 아이를 축하하며 선물을 주고, 행사도 벌이는 데 어린 나이의 그에게는 종교의식보다 돈 잔치처럼 비쳤다고 했다. 그랬던 그가 3년 전 성인식을 치렀으니 유대교 나이로 열여섯이 됐다는 유머다. 왜 그가 마음을 바꿨을까.
 
“유대교 전통을 새로 배우고 자부심도 갖게 됐어요. 유대인이든, 유대인이 아니든 똑같은 하느님의 자손이라는 겁니다. 유대교 유일신 신앙이 많은 비판을 받아온 건 알지만 사람 한 명 한 명 모두가 우주라는 가르침은 귀중합니다. 평등한 거죠. 기독교·이슬람·불교 등에서도 강조하는 대목이고요.”
 
그는 “타고난 음치라 어린 손녀에게 히브리어 성서 음송을 배웠다”고 했다. 그가 모은 ‘타임 크레딧’ 일부도 건네줬다. 3년 전 쉰여섯인 아들과 함께 성인식을 치렀다는 말도 덧붙였다. 유쾌한 할아버지다.
 
박정호 문화·스포츠 에디터 jhlogo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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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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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