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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연결되는 군산은 ‘경계인’ 윤동주와 닮았다

일본 기자의 ‘일본 뚫어보기’
동국사의 대웅전. 급경사 지붕은 일본식 가옥의 특징이다. [사진 나리카와 아야]

동국사의 대웅전. 급경사 지붕은 일본식 가옥의 특징이다. [사진 나리카와 아야]

한국영화를 사랑하는 나에게 군산은 오래도록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으나 일본사람으로서는 조금 망설이게 되는 곳이기도 했다. 허진호 감독 ‘8월의 크리스마스’ 무대로 알려진 초원사진관을 비롯해 군산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100편이 넘는다. 일제시대에 군산은 일본으로 쌀을 가져가는 주요 항구였다. ‘수탈의 역사’를 생각하면 촬영지를 보러 가는 게 왠지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러던 차에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장률 감독의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를 보고 나서 군산을 가보기로 했다. 두 남녀 윤영(박해일)과 송현(문소리)이 군산을 여행하는 영화인데, 궁금해서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은 장소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10월 말 ‘군산’을 같이 본 한국 친구와 함께 그곳으로 떠났다.
 
궁금했던 곳 중 하나는 동국사다. 급경사 지붕의 대웅전은 딱 보니 일본식 건물이다. 일제강점기엔 일본 불교 조동종(曹洞宗) 사찰이었다고 한다. ‘군산’에서는 송현이 백팔배를 하는 곳으로 나오는데 경내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기 위한 ‘평화의 소녀상’이 서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장률 감독은 일본식 가옥이 많이 남아 있어 군산에서 영화를 찍었다고 한다.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봤더니 “건물은 문화잖아요. 사람은 문화로 소통해야죠”라고 답했다. 일제의 흔적이라고 싫어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었지만 영화를 보면 확실히 일본의 ‘가해’를 느낄 만한 장면들이 몇 번 등장한다. 그중 하나가 소녀상이었다.
 
동국사 경내에 서 있는 ‘소녀상’과 그 뒤에 건립된 ‘참사문’의 비. [사진 나리카와 아야]

동국사 경내에 서 있는 ‘소녀상’과 그 뒤에 건립된 ‘참사문’의 비. [사진 나리카와 아야]

직접 가보니까 소녀상 뒤에 비가 있었다. 오른쪽은 일본어로, 왼쪽은 한국어로 ‘참사문(참회와 사죄의 글)’이라고 적혀 있었다. 조동종 종무총장이 쓴 글로 조동종이 해외포교라는 명목으로 아시아사람들의 인권을 침해한 것에 대해 사과하는 내용이다. 조동종은 일본 불교 종파 중 최대 종파이다. 나는 솔직히 조동종이 이런 글을 발표했었다는 사실도 몰랐다. 2012년 9월 일본의 ‘동국사를 지원하는 모임’이 이 비를 건립했다고 적혀 있는데 이명박 전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한 후 한참 한·일 관계가 안 좋아졌을 때이다. 한국사람들이 보기엔 일본은 과거의 잘못을 사과하지 않는 나라로 보이겠지만 민간 차원에서는 잘못을 인정해서 사과하고 한국과 교류하고자 하는 일본사람들도 적지 않다.  
 
‘군산’에서 궁금했던 또 하나는 윤영과 송현이 자꾸 윤동주 시인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다. 둘 다 윤동주 시인의 팬이라는 설정이긴 하지만 군산과 윤동주 시인은 직접 관계가 없다. 그런데 군산에 와보니까 윤동주 시인과 군산은 닮았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군산근대역사박물관에는 윤동주 시인의 대표작 ‘서시’가 쓰인 현수막이 있었다. 일제가 사용을 금지한 조선어로 시를 쓴 시인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사했다. 그래서 윤동주 시인은 조선어를 일본에 빼앗긴 상징 같은 존재이며, 군산 또한 일본에 주식 쌀을 빼앗긴 상징 같은 장소이다.
 
일본풍 정원이 보이는 히로쓰 가옥. [사진 나리카와 아야]

일본풍 정원이 보이는 히로쓰 가옥. [사진 나리카와 아야]

그런데 내가 닮았다고 느낀 것은 한·중·일이 연결되는 지점이다. 군산의 일본식 가옥 중에도 영화 ‘장군의 아들’이나 ‘타짜’의 촬영지로 유명한 ‘히로쓰 가옥’은 다다미방과 일본풍 정원이 있어 전형적인 일본식 가옥 같아 보인다. 하지만 창문은 동그란 중국식이며 한국식 온돌도 있다. 그래서  한·중·일이 혼재하는 건물이다.
 
윤동주 시인 또한 지금으로 말하면 중국 옌볜 출신 조선족이며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에 다니다가 일본에 유학했다. 나는 몇 번 윤동주 시인에 대한 기사를 쓴 적이 있다. 일본 독자들에게 한국에서 얼마나 사랑받는 존재인지를 표현하기 위해서 ‘한국의 국민 시인’이라고 썼다가 ‘한국’에 한정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운 적이 있다.
 
히로쓰 가옥의 중국풍 동그란 창문. [사진 나리카와 아야]

히로쓰 가옥의 중국풍 동그란 창문. [사진 나리카와 아야]

엄밀히 말하면 윤동주 시인이 지금의 한국 땅에 있었던 시기는 연희전문학교 시절뿐이다. 영화 ‘군산’ 속에도 비슷한 지적이 나온다. ‘군산’에서 윤동주 시인이 자꾸 언급되는 것은 ‘수탈’의 상징이라서라기보다 한·중·일이 연결되는 ‘경계인’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윤동주

윤동주

그렇게 생각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나는 작년 말 옌볜에서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을 축하하는 한·중·일 심포지엄에 참가했다. 한·중·일의 연구자와 시인, 팬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면서 윤동주 시인은 동아시아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 주는 존재라는 걸 느꼈다.
 
군산의 유명한 음식도 ‘한·중·일 짬뽕’이다. “군산으로 간다”고 했을 때 주변 친구들은 짬뽕과 ‘이성당’ 단팥빵을 먹고 오라고 했다. 짬뽕은 한국화되었지만 원래 중국 음식이고 단팥빵 또한 일본에서 들어온 빵이다.
 
사실 내가 처음 군산에 관심을 가진 이유도 이성당에 대한 글을 일본에서 읽었기 때문이었다. 이성당에 가보면 ‘since1945’라고 적혀 있지만 1945년 이전에 이성당은 일본사람이 경영하는 ‘이즈모야(出雲屋)’라는 제과점이었다. 그 일본사람이 해방 후에도 군산에 남고 싶어했다는 내용을 읽었다. 장사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주변 조선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살았던 것 아닐까 싶다.  
 
윤동주 시인의 사진 중에 도시샤(同志社)대학 친구들과 함께 소풍을 갔을 때 찍은 장면이 있다. 미소를 띤 표정이 인상적이다. 윤동주 시인은 일제 군국주의와 싸우면서도 일본 친구들과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주말이면 하루에 2만 개가 팔릴 정도로 사랑받는 이성당 단팥빵과 이문화가 공존하는 군산은 역시 윤동주 시인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나리카와 아야 전 아사히신문 기자
나리카와 아야(成川彩) 2008~2017년 일본 아사히신문에서 주로 문화부 기자로 활동한 후,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석사과정에 유학. 한국영화에 빠져서 한국에서 영화를 배우면서 프리랜서로 일본(아사히신문 GLOBE+ 등)과 한국(TV REPORT 등)의 여러 매체에 영화 관련 칼럼을 집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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