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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구멍에 걸린 건 냉면이 아니라 말이었다

김정기의 소통 카페 
우리 사회가 말 때문에 말이 많다. 북한 조평통 위원장의 “목구멍에 냉면이 넘어갑니까”라는 말 때문이다. 이 말의 외포적 의미(denotation)는 ‘할 일을 못하면서 밥만 축내느냐’는 것이고, 내포적 의미(connotation)는 ‘못난이’라는 의미를 포함한다. 처음에는 좀 우스웠다. 대한민국이 절대 빈곤에 시달리던 수십 년 전에 어른들이 ‘목에 밥이 넘어 가느냐’고 야단치면 고개 숙이던 모습과 남한의 거대 재벌총수들이 묵묵히 냉면을 먹는 정경이 겹쳐졌기 때문이다.
 

공식 일정 중 맥락 안 맞는 발언
남북회담 희화한한 사실상 폭언

학생들과 불화가 심했던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학생의 성적이 마뜩하지 않거나, 무쇠라도 소화시킬 수 있는 열혈 청소년들이 점심시간까지 참지 못하고 개봉한 도시락 냄새를 맡을 때 하던 말이기도 했다. 자유분방한 학생에게 그런 폭언으로(절대 왕정과 전체주의적 체제에 대해 목숨을 건 혁명의 덕분으로 쟁취한 인간의 자존심을) 무시하고 망신을 주었다.
 
그러나 웃을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곧 들었다. 그 말의 대상·의도·상황·맥락(context)이 달랐기 때문이다. 살얼음판을 걷듯이 가야 하는 남북회담의 공식 일정에서 기업 총수들을 대상으로 투자 언질도 없이 맨입으로 와 밥만 먹느냐는 힐난이었기 때문이다. “타박성 면박 주기가 아니고 농담조였고 다들 그렇게 받아 들였다”고 여당 쪽은 해명했다. 그러나 농담은 자연스럽게 공감되는 것이지 추후에 확인하고 해석하고 정황을 분석해서 성립되는 게 아니다. 설사 농담이었다 해도 논쟁의 대상이 되면 이미 농담이 아닌 거다.
 
말이라는 행위는 상대를 동격체로 대하고, 현실을 고려하는 맥락에 따른 고도의 지적인 수사행위(rhetorical activity)이다. 그건 장례식장에서는 위로의 말을, 예식장에서는 축하의 말을 나누는 분별에서 출발한다. 결혼식과 장례식이라는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맥락을 구별하지 못하는 말은 그리스시대 이래 수사행위의 기본 토대인  로고스(이성), 파토스(정서), 에토스(품격)를 망각한 무지다. 적절성과 효율성을 잃은 무례한 말은 개인의 정체성과 존엄성을 해칠 뿐 아니라 상대와의 관계를 혼돈케 하고  해체시킨다.
 
인간은 말이라는 상징적 행위를 통해 개인의 존엄과 공생적인 관계라는 문명을 성취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은 지구상에서 말 때문에 스스로와 상대를 곤경에 처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기도 하다. 안하무인의 ‘목구멍의 냉면’이라는 폭언도 그런 경우다.
 
말이 목에 걸리면 그 후유증은 냉면과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일시적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고통과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남북의 회담도 예외가 아니다.  더 이상의 진위공방이나 두둔으로 우리 스스로를 할 말을 못하는 꿀 먹은 벙어리로 희화화하지 말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재발 방지와 남북의 평화를 위한 노력을 상징하는 평양냉면의 의의를 다치지 않도록 건강한 말로 소통하는 지혜다.
 
김정기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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