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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도시 가을 여행

김사과의 맨해튼 리얼리티
제5도살장

제5도살장

지난달 초 내가 쓴 소설 『미나』의 영어판이 미국에서 출간되어 책 홍보 여행을 떠났다. 무모하게도 통역자도 가이드도 없는 열흘간의 미국 일주를 선뜻 승낙한 뒤 걱정은 깊어갔다. 미국의 소설가 앤 패챗(Ann Patchett)은 한 에세이에서 책 홍보 여행을 방문 판매상의 일상에 비교한다. 손수 차를 몰고 나가 한 집, 한 집, 초인종을 누른 다음 제품을 설명하고 팸플릿을 손에 안겨준 뒤, 다시 차에 시동을 걸고 새로운 동네로 떠나는. 그렇다. 베테랑 작가들이라면, 트렁크에 정장 한 두 벌 대충 챙겨 넣고, 뒷좌석에는 책 몇 권을 던져 놓고, 먼지 탄 혼다 자동차에 능숙하게 시동을 걸겠지만…. 요즘에는 스마트폰과 우버가 있으니 좀 다를까?
 
첫 번째 방문지는 브루클린 깊숙이 파크 슬로프에 있는 작은 서점이었다. 나는 몇 달에 걸쳐 심사숙고하여 고른, 인스타그램에서 인기 있는 뉴욕 출신 디자이너의 실크 드레스에, 또 뉴질랜드의 액세서리 브랜드에서 주문한 사과 모양 목걸이를 걸고 나갔지만 아는 사람들과 서점 관계자, 심드렁한 고양이 한 마리를 제외하면, 그 유난하게도 습하고 더운 시월의 밤, 무명의 아시아 작가의 출간 기념행사를 찾아온 사람은 거의 없었다.
 
두 번째 방문지는 시카고였다. 비행기에서 시카고의 독자들에게 건넬 첫인사를 생각했다. 저는 어려서부터 시카고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들을 많이 접했습니다. 영화 다크 나이트, 뮤지컬 시카고, 티브이 쇼 더 와이어(The Wire)…. 하지만 죄다 범죄에 대한 내용이니 좋지 않은 멘트일까? 나는 대신 아름다운 미시간 호에 대해서 언급했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그저 그랬다.
 
세 번째 방문지는 미니애폴리스였다. 그 작고 굉장히 추운 도시는, 조용하고 잘 정돈되어 있었으며 사람들은 친절했다. 다정하지만 내성적인 분위기의 사람들과 현대적이고 쾌적한 다운타운은 북유럽이나 캐나다를 떠오르게 했다. 낭독회에는 본인의 이름이 수정이고 키우는 개의 이름이 미나라는 사람이 찾아와서 나를 놀라게 했다. (내 소설 『미나』는 수정과 미나라는 두 여고생 사이에 일어난 충격적인 사건에 대한 이야기이다.)
 
네 번째로 샌프란시스코에 갔다. 개인적으로도 네 번째 방문이었다. 건조한 캘리포니아 햇살 아래 펼쳐진 그 삐딱한 괴짜 도시는 여전했다. 나는 릿퀘이크(litquake)라는북페스티발의 한 행사에 참여하였는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잔뜩 찾아와서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다섯 번째 도시는 LA였다. 낭독회가 끝나고 드레스덴이라는 이름의 술집에 갔다. 나이든 주인 부부가 직접 재즈를 연주하고 노래하는 재미있는 술집이었는데, 평일 밤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로 가득했다. 나는 내내 구석에 앉아 칵테일을 홀짝이며 술집의 이름인 드레스덴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것은 물론 커트 보네거트의장편소설 『제5도살장』을 세 번이나 읽었기 때문이다.
 
여섯 번째 도시는 휴스턴이었다. 친숙한 느낌의 도시였다. 쾌적한 조지 부시 공항은 인천 공항을 떠오르게 했고, 적당한 습도의 대기는 편안했다.
 
마지막 도시는 시애틀이었다. 점심시간 인터넷 기업 아마존이 장악한 다운타운으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은 인종의 다양함을 비웃듯 충격적으로 균일해 보였다. 비슷한 나잇대의, 비슷한 교육을 받고, 비슷한 세계관을 가진 전도유망한 젊은이들…. 한편 늦은 밤 호수 너머 보이는 스페이스 니들과 다운타운의 정경은 매혹적이었다. 여러 개의 호수들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홈리스들과 아마존의, 신기한 21세기 도시.
 
열흘 만에 돌아온 뉴욕의 화려한 야경은 공허하고 피폐해 보였다. 수천 수만개의 스마트폰 카메라에 생기를 죄다 흡수당한 듯이 말이다. 첫날 브루클린의 서점에서 내가 뉴욕을 인스타그램 도시라고 부른 것에 서점 직원이 동의하며 말했다. 아무도 이 도시의 나쁜 점에 대해서 말하지 않아. 그저, 그게 바로 뉴욕이라고 말하지. 그렇다. 우리가 흔히 삶에 대해 말하듯. 그게 바로 인생이야. 그리고 끝. 우리는 그 나쁜 점들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인간들의 삶은 거기 그냥 그렇게 놓여있다. 요즘의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김사과 소설가 sogreenapple1@gmail.com
2005년 단편 ‘영이’로 등단. 최근 장편 『N. E. W』를 냈다. 장편 『풀이 눕는다』, 산문집 『0 이하의 날들』이 있다. 2016년부터 미국 맨해튼에서 글을 쓰며 생활한다.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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