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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탐사] 성범죄 5명 중 1명 무혐의, 피해자가 입증하라는 경찰도

성범죄 처벌
19.4%. 최근 5년간 전국 경찰이 처리한 성범죄(강간·강제추행 등) 사건 중 ‘혐의 없음’(무혐의) 의견으로 송치한 비율이다. 5명 중 한 명꼴로 무혐의 의견이 나온 셈이다. 같은 기간 경찰 전체 사건(15.4%), 폭행 사건(5%) 무혐의 의견 비율과 비교해 보면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경찰서별 무혐의 의견 비율은 낮게는 7.8%에서 높게는 31.4%까지로 조사됐다.
 
성범죄 사건에선 왜 이렇게 무혐의 의견 비율이 높고 경찰서마다 편차도 큰 것일까.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경찰서별 여성청소년과에 속한 여성경찰관 비율을 조사했다. 무혐의 의견 비율이 높은 10곳과 낮은 10곳 경찰서의 평균 여성경찰관 비율을 조사한 결과 각각 11.8%와 12%(2017년 기준)로 큰 차이가 없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관할 지역의 성격이나 인구도 큰 변수는 아니었다. 서울 지역 경찰서의 지난 5년간 성범죄 무혐의 비율은 평균 18.8%였으며 부산·대전 등 광역시는 20.9%, 광역시가 아닌 인구 50만 이상의 도시는 18.4%, 그 외 지역은 18.8%였다. ‘시골이라서’ ‘여경이 없어서’ ‘외지인이 많은 지역이어서’ 등 전문가들이 직관적으로 지적한 무혐의 비율 편차의 원인은 통계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
 
성폭력 피해자 지원 단체 관계자들은 지역적 성격보다는 개별 경찰관의 성인지 감수성 차이가 수사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고 지적한다. 피해자의 신체를 대상으로 하는 성범죄에서 피해자의 진술은 가장 직접적인 증거지만 이를 대하는 경찰관의 태도가 천차만별이라는 이야기다. 김희겸 천안 여성의전화 사무국장은 “피해자의 말을 의심부터 하고 수사하는 것과 일단 믿고 수사하는 것은 차이가 크다”며 “강한 폭행과 욕설이 동반되는 명백한 성폭력 사건보다 경계가 애매한 사건이 오히려 많아 담당 경찰관의 성인지 감수성 차이는 수사의 중요한 변수가 된다”고 설명했다.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성폭력 피해자 13명 심층면접과 상담사 66명 설문조사 결과에는 경찰관들의 태도 차이를 보여주는 실사례들이 나온다. 경남 지역의 한 피해자는 심층면접에서 “조사받을 당시 경찰관으로부터 ‘모텔 갈 때 가기 싫으면 안 갈 수도 있었는데 끝까지 간 이유가 뭐냐?’ ‘도망쳐 나올 수 있는데 왜 안 나왔느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상대방 성향이 난폭해서 또 잡혀 갈 수밖에 없어서 그렇게 됐는데 계속 물어봐서 화가 났다”고 말했다. 또 다른 피해자는 “수사관이 차량 블랙박스를 요청해 준비해 뒀는데 그날 이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고 했다.  
 
상담사 설문조사에서도 수영강사로부터 강제추행을 당한 대학생이 사건을 신고하자 경찰관이 “수영을 가르치다 보면 그럴 수 있다”고 한 사례, 회식 자리에서 추행당한 피해자에게 “사건에 대해 기억도 못하면서 무슨 진술을 한다는 거냐”고 면박을 준 사례 등이 나왔다. 이와 반대로 담당 수사관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피해자들도 있었다. 한 피해자는 “고소장 접수할 때 ‘지금은 괜찮으세요’라는 말을 들었고 조사받는 내내 강압적 분위기 없이 잘 이해받는 느낌이 들어 좋았다”고 말했다. 성범죄 피해자 국선변호 경험이 많은 장경아 변호사는 “‘피해자가 담배를 피워 의심이 된다’는 경찰관도 봤다”며 “의욕적으로 수사하는 경찰관들도 있지만 성범죄를 ‘물총사건’이라 비하하며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이들도 여전히 많다”고 말했다.
 
피해자 진술이 유일한 증거라고 속단하고 피해자에게 입증을 요구하는 관행부터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김희겸 사무국장은 “피해자가 신고했는데 증거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자 가해자 조사를 몇 달 뒤에 한 사례도 있다”며 “수사 진척이 안 되면 가해자는 활보하고 증거는 훼손되고 피해자는 좌절하게 된다”고 말했다.  
 
신고 후 입증에 실패할 경우에 발생할 법률적 상황에 대해 지나친 공포심을 심어주는 것도 문제다. 검사 출신인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학내 성범죄 상담 중 알게 된 심각한 사안을 인근 경찰서에 보냈는데 ‘이거 사건 안 되고 잘못하면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할 수 있다’며 피해자를 돌려보냈다”며 “입증이 어려워 보이면 손도 대지 않으려는 경찰의 성향이 드러난 사례”라고 지적했다.
 
탐사보도팀=임장혁·박민제·이유정 기자
김나윤 인턴(성신여대 화학4)
deep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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