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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근하는 北, 느긋한 美…제재 정면충돌 속 난감한 정부

북ㆍ미 고위급 회담을 통한 ‘핵 담판’을 연기한 북한이 또 공개적으로 제재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이번엔 한ㆍ미 동맹을 타깃으로 삼았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오른쪽)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 간 고위급 회담이 북한의 요청으로 연기됐다. [연합뉴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오른쪽)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 간 고위급 회담이 북한의 요청으로 연기됐다. [연합뉴스]

 
북한 대남 선전용 매체 ‘우리민족끼리’는 9일 개인 명의 논평 ‘실무팀 조작놀음은 무엇을 보여주는가’에서 한ㆍ미가 이달 중 출범하기로 한 워킹그룹에 대해 “북남 협력사업들에 나서지 못하게 항시적으로 견제하고 제동을 걸며 저들의 비위에 거슬리면 아무 때나 파탄시키려는 미국 흉심이 깔려 있다”고 주장했다. 한ㆍ미는 비핵화 노력 및 유엔의 대북 제재를 준수하는 남북협력에 대한 조율 강화를 위해 워킹그룹을 만들기로 했다.
 
우리민족끼리는 “북남관계 개선 움직임에 대해 대양 건너에서 사사건건 걸고 들며 훈시하다 못해 이제는 직접 현지에서 감시하고 통제하는 기구까지 만들겠다는 미국의 오만한 행태”라고 비난했다. 한국을 향해서는 “문제는 미국의 오만무례하고 날강도적인 행위에 맹종맹동하여 스스로 예속의 굴레를 더 깊숙이 뒤집어쓰고 있는 남조선 당국의 수치스러운 처사”라며 남북 공동선언을 철저히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한ㆍ미 워킹 그룹의 출범 목적이 남북 관계의 과속을 막는 데 있다고 보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한 셈이다. 그 기저에는 강력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때문에 남북 간 경제협력 사업이 건건이 제동이 걸리는 데 대한 불편함이 깔렸다. 공개ㆍ비공개적으로 미국을 향해 연일 제재 해제를 요구하고 있으나 미국이 확고한 ‘선(先) 비핵화-후(後) 제재 완화’ 입장을 굽히지 않자 한국을 흔들어 보자는 심산으로 볼 수 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9일 1면에 ‘<<우리 식대로 살아나가자!>> 이 구호를 더 높이 추켜들고 사회주의강국 건설을 힘있게 다그치자’는 사설을 싣고 자립경제를 강조했다. “오늘 역사에 유례 없는 가혹한 제재 봉쇄 속에서도 기적적으로 일떠서 번영의 새 시대를 열어나가는 주체조선의 무진막강한 국력과 발전 잠재력에 세계가 경탄하고 있다”며 자신들의 국가경제력이 외부의 제재ㆍ압박보다 강하다고 주장했다. 한동안 제재 국면이 유지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미국과의 협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국내적으로 분위기를 다잡고 내부 구심력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북한의 또다른 선전매체 ‘메아리’는 한ㆍ미 해병대 연합훈련(KMEP) 재개를 비난했다. “남조선 군부 호전광들이 이제는 아예 ‘정례훈련’이라는 간판 밑에 ‘한미해병대연합훈련’을 강행해대고 있다”며 “이는 북남 사이의 군사합의서에 배치되고 평화와 번영을 지향해 나가고 있는 조선반도 정세를 엄중히 위협하는 시대착오적인 군사적 움직임”이라고 주장했다. 적대행위 금지를 명시한 남북 군사합의를 빌미 삼아 한ㆍ미 동맹 차원에서 실시하는 연합 방위력 강화 훈련에 딴지를 건 것이다. 이 역시 한ㆍ미 사이를 이간하려는 전형적인 북한의 ‘갈라치기’ 수법이라는 게 외교가의 해석이다.
 
그러나 북한 매체들은 북ㆍ미 고위급 회담 연기에 대한 입장은 전혀 밝히지 않았다. 제재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면서도 불필요하게 미국을 자극하지는 않으려는 분위기다.
 
8일(현지시간) 니키헤일리 주유엔 미국 대사는 회담 연기에 대해 “우리는 기본적으로 그들(북한)이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에 회담을 연기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러시아의 요청으로 소집된 대북 제재 관련 비공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 참석하기 전 기자들과 만나 “그 대화의 일정이 다시 잡힐 것으로 생각한다”며 이처럼 말했다.
 
헤일리 대사가 언급한 ‘준비’는 북한이 아직 주요 시설 사찰과 핵 신고 등 의미 있는 비핵화 조치를 수용할 준비가 안 돼 있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그는 “우리는 지금까지 당근을 많이 줬고, 채찍을 거두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제재 해제를 담보할 어떤 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그들은 여전히 핵ㆍ미사일 시설을 보유하고 있으며, 사찰단이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는 한 제재도 지속된다”고 명확히 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전날 “제재는 유지되고 있고, 서두를 것 없다”고 느긋한 태도를 보인 것과 같은 맥락이다.
 
북ㆍ미 간 대화 국면 조성 이후 잠잠했던 북한 정권교체론도 다시 나왔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미 국방부의 한 고위 관리가 이날 워싱턴 인근 버지니아주 알링턴에서 열린 북한 관련 세미나에서 “북한 정권 교체는 미국의 현재 옵션이 아니지만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계속 거부한다면 미국은 입장을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처럼 제재 문제로 북ㆍ미가 서로 한 치도 양보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가운데 난감한 것은 화내는 북한과 느긋한 미국 중간에 낀 한국이다. 북한은 약속한 남북 협력 사업을 추진하라고 채근하고, 미국은 제재 대열에서의 이탈은 용납하지 않겠다며 한국을 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9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해 ‘북한이 가지고 오는 진전된 안이 없어서 북ㆍ미 고위급 회담이 연기된 것 아니냐’는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의 지적에 “그런 분석과 해석은 가능하다”면서도 “다만 미국은 회담에 대해 향후 시간이 조정돼 열릴 것이라고 확정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미국은 회담 준비를 충분히 하고 있다는 입장”이라며 미 정부가 이번 고위급 회담 연기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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