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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국회의원이 500명인 세상

박원호 서울대 교수·정치학

박원호 서울대 교수·정치학

한국에서 가장 인기 없는 기관, 국민의 신뢰가 가장 낮은 기관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국회 혹은 국회의원일 것이다. 국내외 여러 여론조사에 단골로 포함되는 ‘기관 신뢰’ 문항은 청와대에서부터 대기업·시민단체까지를 포함한 여러 제도와 기관에 대한 신뢰를 측정하는데, 적어도 내가 아는 한 한국에서 국회나 국회의원이 압도적 꼴찌를 면한 적이 없었다.
 
불신이라는 말이 너무 점잖다면 원망과 혐오라는 말이 더 적절할지 모른다. 국회라는 기관은 결국 300명의 ‘악동’들이 패거리 지어 다니면서 적극적으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곳이 아니었던가. 그곳에서 우리의 세금, 무려 5400억원의 예산이 매년 쓰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여야, 좌우, 진보·보수 할 것 없이 어떤 유권자들이건 혀를 끌끌 찰 것이다. 국회 해산을 부르짖었던 대통령 후보들은 차치하고라도 의원 정수를 파격적으로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던 배경은 그래서 쉽사리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지난달 구성됐던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출범하기 전부터 풀리지 않을 난제를 받아들게 됐던 것이다. 정치 개혁의 핵심이 대표성과 비례성을 강화하는 선거제도 개혁이라는 데 동의한다면 이것은 지금 300명인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현행 253명의 지역구 선출 국회의원 상당수가 자신들의 지역구를 포기하면서까지 개혁 입법에 찬성할 리가 없으므로 의원 정수를 늘리지 않고선 선거제도 개혁의 효과는 미미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가 여론이라는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예컨대 국회의원이 500명인 정치는 아마도 지금보다 두 배 정도 엉망일 것이며, 우리의 삶은 그만큼 더 지옥에 가까워져 있을지 모른다. 의원 정수를 늘리자는 말은 정치적 자살행위로 여겨져 왔고, 이번 정개특위에 참여하는 그 어느 정당도 과감한 의원 정수 증가를 주장하지 못한다. 그래서 지난 정개특위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번 정개특위도 문제를 풀지 못한 채 21대 총선을 맞게 되거나 매우 소소한 변화를 가져오는 데 그칠 가능성이 크다.
 
박원호칼럼

박원호칼럼

이곳에서 간단한 사고(思考) 실험을 제안하고 싶다. 만약 의원 정수를 당장 50명으로 줄인다면 우리의 국회는 향상되고 정치는 나아질 것인가? 300명의 악동을 50명으로 줄인다고 해서 이들의 ‘행실’이 나아질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외려 확실한 것은 권력이 그만큼 소수의 손에 과점(寡占)될 것이며, 네댓 명의 친한 의원들로 형성된 블록이 국정을 좌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국회는 종합상사가 아니기 때문에 실적이 나쁘다고 인원 감축을 할 수도, 해서도 안 될 일이다.
 
의원 정수가 500명인 세상은 어떠할 것인가? 반드시 정치가 지금보다 더 나아진다는 보장은 없지만 적어도 국회의원이 그만큼 더 흔한 존재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우리의 국회의원 1명이 대표하는 유권자 수가 세계적으로 많다는 논지는 차치하더라도 우리 유권자들이 정치를 만나는 지점(access points)이 너무나 희소해 인터넷 국민청원으로 몰리는 현실은 외면할 수 없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의원 정수를 늘리는 데 가장 반대하는 이들은 바로 자신들의 희소성을 지키려는 현직 의원들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나는 강하게 지니고 있다. 국회는 종합상사가 아니기 때문에 실적이 나쁘다면 오히려 국민에게 봉사할 인원을 더 뽑는 것이 상식이 아닐까 싶다. 5400억원을 줄이거나 동결하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흥미롭게도 가장 신뢰가 낮은 기관이 의회이고 인기가 없는 직종이 정치인인 것은 한국만의 경우는 아니다. 행정부에 비해 의회가 비효율적이고 비전문적이며 개별 이익의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의회 쇠퇴론’이 운위되는 것도 한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의회가 그렇게 답답하고 너절한 것은 그것을 선출하고 구성한 유권자들-우리-을 그대로 빼어 닮았기 때문이며, 근본적으로 사회의 다양한 이해와 갈등 혹은 잠재적인 내전을 미리 발견하고 터트리고 해결하는 일이 아름다울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주의가 비용이 드는 체제라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한다. 그러나 정치가 피할 수 없는 과정이고, 의회가 없앨 수 없는 기관이라면 기왕에 치르는 비용을 웃으며 지불하고 알차게 따져볼 것이다. 같은 비용을 지불한다면 나는 300명짜리 의회보다는 500명짜리 의회를 언제 어디에서나 구매할 용의가 있다.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의 성공과 정치 개혁의 성공을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빌어 마지 않는다.
 
박원호 서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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