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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적인 바른말은 폭력이라는 걸 왜 몰랐을까

기자
윤경재 사진 윤경재
[더,오래] 윤경재의 나도 시인(21) 
달도 가끔은 몰려드는 구름에 조각이 나 가던 길 멈칫거린다. [중앙포토]

달도 가끔은 몰려드는 구름에 조각이 나 가던 길 멈칫거린다. [중앙포토]


조각달 마음
윤경재 
 
달도 가끔은 몰려드는 구름에 조각이 나
가던 길 멈칫거린다
 
마음이 바깥에서 헤맬 때
네가 골라준 시집을
마지막 페이지부터
거꾸로라도 읽고 싶어졌다
색 바래고 얼룩이 묻은 겉표지를
벗기고 보니
말간 알맹이가 그대로 낯 붉히더라
그리움의 화살이 종종거리며
네 가슴을 비켜 지나갔구나
오늘은 어쨌는지 때맞춰 묻고 들어주지 않으면
제비꽃도 아파 고개를 숙이더니
반쯤 접어둔 종이 혀에서
보랏빛 옛 향기가 아련히 배어 오른다
 
아뿔싸,
조각달 마음이라도 곁에서 비춰주겠다고 다짐했건만
붉은 시집의 글자들이 내 옷섶을 물들이고 있었구나
 
[해설]
나와 상담을 하고 돌아간 환자들은 다시 진료받으러 오는 경우가 적었다. 알고 보니 환자는 내게 위로와 공감을 받고 치유되고자 온 것인데 너무 쉽게 '바른말'을 하고 있었다. [사진 pixabay]

나와 상담을 하고 돌아간 환자들은 다시 진료받으러 오는 경우가 적었다. 알고 보니 환자는 내게 위로와 공감을 받고 치유되고자 온 것인데 너무 쉽게 '바른말'을 하고 있었다. [사진 pixabay]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한다. “이봐, 나 여기 있어”라고 외치는 사람과 “아, 너 여기 있었구나”라고 가볍게 감탄하는 사람이다.
 
처음 한의원을 열고 진료실에서 상담했을 때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환자에게 전해주려고 시간을 들여 논리적으로 조금 장황하게 설명하곤 했다. 그러면 그 자리에서는 알았다는 듯이 머리를 끄덕이고 돌아갔으나 다시 진료받으러 오는 경우가 생각보다 적었다. 한동안 그 이유를 몰라 낙담하곤 했다. 그러다가 나중에 의사가 말하기보다 환자가 알아서 말하게 유도 질문을 하는 게 더 좋다는 충고를 선배 한의사한테 들었다. 과연 옳은 말이었다.
 
환자가 내게 온 이유는 위로받고, 공감받고, 치유되고자 온 게 아닌가. 그런데 잘못된 습관이나 식생활을 지적이나 하는 의사가 뭐가 좋겠는가. 나는 너무 쉽게 ‘바른말’을 했다. 바른말은 어쩌면 폭력인지도 모른다.
 
유대인의 밥상머리 교육 ‘하브루타’
우리의 학교 교육은 사지선다형 문제를 풀며 보낸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정답을 하나 골라내 머릿속에 주입하는 데 주력했다. 정답이 아니면 틀린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오늘도 아이에게 학교에 가면 선생님 말씀 귀담아들으라고 훈계하지 않는가. 그러나 유대인은 자녀에게 학교에 가 질문을 얼마나 많이 하고 돌아왔는지 묻는다고 한다.
 
유대인들은 대체로 저녁 식사 자리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어떤 주제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고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을 묻는 밥상머리 교육을 한다. 이를 '하브루타' 라고 한다. [사진 pixabay]

유대인들은 대체로 저녁 식사 자리에서 부모가 자녀에게 어떤 주제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고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을 묻는 밥상머리 교육을 한다. 이를 '하브루타' 라고 한다. [사진 pixabay]

 
유대인은 저녁 식사 자리에서 아빠가 자녀에게 어떤 주제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고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을 묻는다고 한다. 그런 밥상머리 교육을 ‘하브루타’라고 부른다. 하브루타에는 색다른 답은 있어도 틀린 답은 없다.
 
그래서 유대인은 질문을 아주 적절하게 잘한다고 한다. 질문을 통해 새롭고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르게 된다. 또 서로 질문하고 답하는 사이 공감하게 되고 생각의 차이에 대해 이해하는 마음이 생긴다고 한다. 유대인이 노벨상을 그렇게 많이 타는 이유도 하브루타 교육 덕분이라고 한다. 좋은 질문은 좋은 이야기를 끌어낸다.
 
사람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쳤을 때 만족감을 크게 느낀다. 사람은 ‘이야기하는 행위’와 ‘이야기 듣는 행위’를 통해 단순한 소통을 넘어 자신의 삶을 구조화하고 의미화한다. 소소하고 일상적인 개인 경험일지라도 완벽하게 서술하고, 경청하다 보면 서로에게 의미 있는 경험이 된다는 것이다. 이때 듣는 사람도 적절한 질문을 함으로써 말하는 사람의 생각을 변화시키거나 강화할 수 있다.
 
“~ 체험했을 때 네 마음이 어땠어?”, “넌, 어떻게 변했어?”, “와! 나라면 ~생각했을 텐데.”
 
이렇게 추임새를 넣어가며 듣는 걸 ‘능동적 경청’이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도 어떤 기술이 필요하다. 공감에는 과녁이 있다. 과녁을 한참 벗어나면 겉도는 느낌이 들어 서로 피곤해진다. 공감에서 과녁은 ‘그 사람의 존재’가 되어야 한다. 듣는 사람이 수위 조절을 해주어야 한다. 잡다한 세상사 이야기에서 주제를 그의 ‘나’ 이야기로 말머리를 틀어야 한다.
 
현대인은 생각보다 ‘나’ 이야기를 잊고 지낸다. 어느 날 진료실에 남자환자가 찾아왔다. 많이 말랐고, 소심해 보이는 성격이다. 평소에 명치가 답답해 얹힌 거 같고, 불안하며, 잠을 푹 못 자고, 손발에 땀이 많이 나며, 대변이 불규칙하고, 머리는 늘 무겁다고 호소한다. 여러 가지로 문진하다가 가족이나 직장에서 껄끄러운 사람이 있느냐고 물으니 자기 속사정을 이야기한다.
 
입사해서 처음부터 상사에게 찍힌 거 같아 한동안 그를 피해 도망 다녔다. 마치 투명인간처럼 생활했단다. 그러다가 자기만 진급에서 누락되자 방향을 확 바꾸어 그 상사에게 잘 보이려고 같이 등산도 하고, 교회도 가고, 모임에도 따라 다녔다. 그런데도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자신이 점점 더 위축되고 사라진 느낌만 들었다.
 
그는 상사에게 처음부터 지금까지 없는 존재였을 뿐이다. 이렇게 된 데는 자기가 스스로 심리적 공모자가 돼 준 데도 원인이 있다. 그는 자기의 경계를 허물어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산 것이다. 아마 부모에게서도 그런 대접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상대의 '나' 이야기 들으려 노력해야
최종태 작가의 작품. 우리는 감정표현이 잘못인 것처럼 여길 때가 많다. 그러나 감정을 꽁꽁 숨기다 보면 언젠가는 폭발해 파편처럼 내 자아가 분해되고 만다. [사진 윤경재]

최종태 작가의 작품. 우리는 감정표현이 잘못인 것처럼 여길 때가 많다. 그러나 감정을 꽁꽁 숨기다 보면 언젠가는 폭발해 파편처럼 내 자아가 분해되고 만다. [사진 윤경재]

 
상대방에게 내가 누구인지 인식이 생겨야만 그런 일방적인 관계가 끊어질 것이다. 좋은 관계란 그것을 통해 기쁨과 즐거움, 배움과 성숙, 성찰의 기회가 물 흐르듯이 진행되는 관계를 말한다. 자기 혐오와 학대는 관계에서 상호 배움과 성숙이 자랄 수 없다.
 
남녀 간의 단체 모임에서 매력을 느끼는 정도를 측정해보면 진실성이 있어 보이고 따뜻해 보이는 사람뿐만 아니라 뭔가 그만의 독특함이 드러나는 사람이 호평을 받는다고 한다.
 
이를 ‘초점효과’라 부른다. 주위와 다른 모습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드러낼 때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거다. 그러니 이번에 실패했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가 없다. 자기를 간직하고 있다가 다음에 기회가 올 때 살리면 된다.
 
매번 대화할 때 먼저 상대방의 ‘나’ 이야기를 들으려 노력하면 된다. 그러면 그도 질문하는 ‘나’를 인식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다만 주의할 점은 충고, 조언, 평가, 판단하는 말투와 태도이다. 그런 것은 ‘바른말’ 계통이니 폭력으로 여겨지기 쉽다.
 
자기를 잊고 사는 사람은 생명 기운이 급격히 소모되고 기운 보충이 어렵게 된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다. 기가 부족하다 보면 타인에게 소홀하게 된다. 그럼 상대는 자신을 무시하는 거로 오해한다. 그 환자의 상사도 오히려 자신을 무시한다는 느낌을 받아 더 가혹하게 굴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경계를 잘 지키는 사람이 남의 경계도 잘 지켜준다.
 
이야기에는 맥락이 있다. 맥락을 잘 느끼는 훈련을 해야 자유를 느낀다. 맥락은 시의적절한 질문과 대답을 통해 튼튼히 자란다. 사람의 마음은 한결같지 않다. 마치 저 하늘의 달처럼 보름달이다가 그믐달이 되기도 한다. 반달일 때도 있으며 손톱달, 조각달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순간순간 수시로 변한다.
 
그렇다고 그런 감정이 잘못된 게 아니다. 현재의 나를 표현할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감정표현이 잘못인 것처럼 여길 적이 많다. 꽁꽁 숨겨야 한다고 서로 충고한다. 일면 맞는 말이나 그렇게 감추다가는 언젠가 폭발하고 만다. 조각이 나 자아가 파편처럼 분해되고 만다.
 
감정 숨기지 말고 표현을
보물 안동 하회탈. 탈을 쓰듯 감정을 숨기려고 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인간이 느끼는 정서는 그른 게 아니다. 서로 나누고 공감할 때 정도에서 벗어날 위험성이 적어진다. 내게서 솟아오르는 정서들을 잘 지켜보고 잘 지켜주어야 한다. [사진 윤경재]

보물 안동 하회탈. 탈을 쓰듯 감정을 숨기려고 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인간이 느끼는 정서는 그른 게 아니다. 서로 나누고 공감할 때 정도에서 벗어날 위험성이 적어진다. 내게서 솟아오르는 정서들을 잘 지켜보고 잘 지켜주어야 한다. [사진 윤경재]

 
인간이 느끼는 정서는 그른 게 아니다. 늘 옳다. 서로 나누고 공감할 때 정도에서 벗어날 위험성이 적어진다. 내게서 솟아오르는 슬픔, 분노, 억울함, 욕망, 공포, 환희, 비애, 시기심, 주저, 두려움, 부정, 타협 등등의 정서는 다 옳은 것이기 쉽다. 잘 지켜보고, 잘 지켜주어야 한다.
 
장자에서 나오는 대붕은 짙은 구름과 세찬 바람을 마주치지 않으면 하늘을 나는 자유를 얻지 못한다. 진정한 자유로움은 타자와 마주쳐 서로의 한계를 깨달았을 때,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것이다.
 
붉은 시집은 피땀 흘려 몸으로 쓴 시집이다. 또 시집은 ‘詩集’만이 아니라 ‘媤집’이기도 하다. 누구와 함께 관계를 맺고 사는 삶은 마치 시집살이하는 사이와 같다. 얼마나 힘들고 어려울지 상상이 된다. 하지만 우리는 그 관계를 통해 어떻게든 물들어 변해 간다.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윤경재 한의원 원장 whatay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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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