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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인재산실 뉴욕공대 … 웨버 교수, 독일군 U보트 잡는 탐지기 개발

1967년 9월 전기 물리학과 부교수로 부임한 뉴욕 공대(Polytechnic Institute of New York)는 뉴욕시 브루클린과 롱아일랜드 파밍데일에 캠퍼스를 둔 연구 중심의 이공대학이다. 뉴욕대(NYU)와 통합하면서 지금은 ‘뉴욕대 탠던 이공대(New York University Tandon School of Engineering)’가 됐다. 

미군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사용한 초기 군사용 레이더. 뉴욕 공대의 에른스트 웨버 교수를 비롯한 미국 과학자들의 개발했다. [사진 ZME 사이언스]

미군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사용한 초기 군사용 레이더. 뉴욕 공대의 에른스트 웨버 교수를 비롯한 미국 과학자들의 개발했다. [사진 ZME 사이언스]

전기 물리학과엔 웨버 교수나 나를 스카웃한 아서 올리너(1921~2003년) 교수 외에도 뛰어난 과학기술자가 즐비했다. 27세의 나이에 그런 대학의 부교수가 될 수 있었던 이유를 알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데이비드 로즈 MIT 교수의 적극적인 추천이었다. 로즈 교수 밑에서 겨우 15개월을 머물렀을 뿐인데, 핵융합 연구실에선 연구를 전폭적으로 지원하더니 자리를 옮길 때도 적극적으로 추천해준 것이다. 어린 나이에 미국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고맙고 훌륭한 분을 많이 만난 덕분임을 알게 됐다. 아울러 과학기술 발전의 핵심은 결국 인재를 발굴하고 키우는 일이란 사실도 절감하게 됐다. 
초단파 연구와 레이더 연구를 주도한 공로로 1987년 조지 HW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국가과학자 메달을 받은 에른스트 웨버 교수(오른쪽). [사진 미국 과학기술한림원]

초단파 연구와 레이더 연구를 주도한 공로로 1987년 조지 HW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국가과학자 메달을 받은 에른스트 웨버 교수(오른쪽). [사진 미국 과학기술한림원]

나는 이런 깨달음을 실천에 옮겼다.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찾아온 수많은 과학기술 인재를 제대로 가르치고 지원하는 일에 몰두했다. 미국 과학재단이 대학에 지원한 우수연구센터 연구자금을 바탕으로 핵융합을 연구할 플라스마 연구소를 세우고 소장을 맡았는데 미국 원자력 위원회의 연구비로 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다. 뉴욕은 내겐 물론 제자들에게도 기회의 땅이 됐다. 
내가 속했던 전기 물리학과는 사실 미국 과학기술 혁신을 이끌어온 전통의 학과다. 학과를 이끈 어니스트 웨버(1901~96) 교수는 오스트리아 빈 출신의 전기공학자로 ‘초단파(마이크로파) 연구 개척자’로 명성이 높다. 초단파는 레이더·위성통신·위성방송·이동통신 등 정보통신 시대에 필수적인 문명 이기다. 그가 설립한 초단파연구소(MSI)는 그 공로를 기려 ‘웨버 초단파 연구소’로 불린다. 
미군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처음으로 실전에서 사용한 극초단파 이동식 통신 시스템. 뉴욕 공대의 에른스트 웨버 교수를 비롯한 미국 과학기술자들이 초단파 연구를 주도한 결과 탄생했다. [위키피디아]

미군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처음으로 실전에서 사용한 극초단파 이동식 통신 시스템. 뉴욕 공대의 에른스트 웨버 교수를 비롯한 미국 과학기술자들이 초단파 연구를 주도한 결과 탄생했다. [위키피디아]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군용 레이더 개발자’로도 활약했다. 초기 레이더는 성능이 신통치 않았다. 웨버 교수와 연구진은 이를 끊임없이 개량해 독일 U보트(잠수함)나 전투기를 탐지하는 수준으로 만들었다. 과학기술자들의 집념·끈기·사명감이 기술혁신을 이루고 승전을 이룬 사례다. 웨버 교수는 이 공로로 48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 표창장’을 받았다. 당시 이 대학 동문인 존 트럼프(1907~85년) 매사추세츠 공대(MIT) 전자공학과 교수도 함께 수상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삼촌으로 2차대전 중 레이더 개발에 참여했다. MIT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36~73년 교수로 일했다. 
웨버 교수는 과학기술인의 위상을 높이는 데도 헌신했다. 63년 창립된 국제 엔지니어 조직인 전기전자기술자협회(IEEE)의 초대 회장을 맡았고 64년 출범한 미국 공학한림원(NAE)의 발기인으로도 참여했다. 내게 큰 영감을 준 인물이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황수연 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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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