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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길영의 빅 데이터, 세상을 읽다] 회색인간의 종말을 꿈꾸다

송길영 Mind Miner

송길영 Mind Miner

영국의 의사이자 정치개혁가 새뮤얼 스마일스가 1859년 쓴 『자조론』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오래된 그리스의 격언으로 시작합니다. 출간 첫해에만 2만 부가 넘게 팔렸다는 당대의 베스트셀러는 우리 출판가에서 빠질 수 없는 자기계발서(self-help book)라는 분류의 어원이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이 분야의 유명 저자 팀 페리스가 낸 책 『나는 4시간만 일한다』표지를 보여드리면 연령대가 조금 높은 분들은 “하루에 4시간?”이라고 되묻는 경우가 많습니다. 책의 내용은 ‘일주일에 4시간만 일한다’는 이야기인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두 번째로 오래 일하는 나라에서 하루 8시간을 넘어 상시로 야근을 하던 습관이 몸에 밴 우리네는 하루에 4시간만 일한다 해도 그야말로 황송한 것이지요.
 
정시에 퇴근할라치면 “일찍 들어가 보겠습니다”라는 이치에 맞지 않는 이야기를 하며 상사의 눈치를 봐야 했던 나라가 저녁이 있는 삶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 52시간제라는 그 정상화를 넘어 시간을 팔지 않는 사회를 꿈꾸는 세대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들의 꿈은 인스타그램 위, ‘일주일에 4시간만 일한다’는 책 표지가 보여주는 해변가의 여유로운 사진 속에서 자연스레 표출됩니다.
 
몸을 써서 땅을 갈던 시기, 개인 능력의 차이는 그리 클 수가 없었기에 오래 일하는 자가 더 많은 결과를 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 시절 더 많은 시간을 일한 사람이 받던 칭송은 어느덧 현대인에겐 족쇄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더 창의적이고 지적인 능력을 가진 김 대리는 옆자리 박 대리보다 훨씬 먼저 업무를 처리할 수 있지만 근무 시간이 아직 남았기에 오히려 추가적인 일이 주어집니다. 업무에 혁신을 하면 빨리 끝낸 만큼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는 지경이 되면, 차라리 태업을 하거나 일을 마치지 못한 척 해야 동료와 같은 급여를 받는 억울함을 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럴 바에야 업무량으로 계약을 하고 부리나케 일을 마친 후 좀 더 여유롭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는 이들은 이제 시간을 파는 일을 멈추고 싶어 합니다.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에서 등장한, 타인의 시간을 빼앗아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는 회색인간이 이제 우리 곁에서 사라지길 희망하고 있습니다. 1973년 회색인간의 위험을 경고한 저자가 살았던 독일이 지금 OECD에서 가장 근무시간이 짧은 나라가 된 것 역시 결코 우연이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송길영 Mind Mi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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