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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학회 무용론

조영태 서울대 교수, 인구학

조영태 서울대 교수, 인구학

바야흐로 학회(學會)의 계절이다. 학계에 있는 사람들은 요즈음 각종 학회에 참가하느라 분주하다. 주변에 교수나 연구원이 있거나 자녀가 대학원에 다니고 있는 독자들은 ‘학회 다녀올게’라는 이야기를 적잖이 들었을 것이다.
 
학회는 학술회의의 줄임말이다. 학회는 동일하거나 비슷한 학문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연구한 것을 발표하고 그것에 대해 토론하는 장이다. 과학으로서의 학문에는 절대적인 지식이나 발견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학자들은 학회에서 나의 연구를 발표하고 다른 학자들로부터 의견을 듣는 것은 물론이고 신랄한 비평도 감내한다. 이렇게 받은 의견과 비평을 토대로 연구는 진일보(進一步)한다. 신진 학자나 대학원생들은 학회에 참석해 본인이 공부하는 학문 분야의 대가(大家)들도 직접 만나고, 다른 학교나 다른 연구실에서 하는 연구들을 보고 들으며 학자로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1년에 한두 번 열리는 학회에서 학자들은 학문적 교류뿐 아니고 인간적인 친분도 쌓는다. 이처럼 학회는 학문의 발전과 학계의 네트워킹을 위해 기여하는 바가 매우 크다.
 
그런데 이 학회가 지금 위기에 봉착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많은 학회는 발표될 논문을 선정하기 위해 심사위원회를 구성할 정도였다. 지금은 사정이 180도 달라졌다. 학회에서 발표될 논문을 섭외하는 것이 어려워 논문이 발표되는 세션의 수를 줄이고 이틀 혹은 최소한 하루 종일 하던 학회를 반나절로 줄이는 꼼수를 써야만 한다. 학회 참가자의 수도 급감했다. 과거에는 논문 발표자와 토론자보다는 단순 참가자의 수가 훨씬 많았다. 이제 단순 참가자를 기대하는 호사를 누릴 학회는 그리 많지 않다. 하물며 연구실에서 발표되는 논문을 응원하기 위해 참석한 대학원생들도 손에 꼽을 정도인 학회가 다반사다.
 
혹시 전 세계 학계가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현상일까? 당연히 아니다. 학계의 중심인 미국과 유럽에서 개최되는 대부분의 학회는 참가자들로 넘쳐난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조영태칼럼

조영태칼럼

우리나라 학회 위기의 원인은 무엇일까? 기본적으로 학회의 수가 너무 많다. 그래도 규모가 좀 있는 학술단체들의 협의체라 할 수 있는 한국학술단체총연합회에는 현재 약 680여 개의 학술단체가 등록돼 있다. 이 연합회에 등록되지 않은 소규모 학술단체까지 고려하면 아마도 우리나라에는 1000여 개의 학술단체가 있을 것이고, 이 단체들이 한 해 1~2회씩 학회를 한다. 흔치 않은 학문 분야인 인구학을 하고 있는 필자도 매년 4~5개의 학회에서 논문 발표 요청을 받는데, 주요 학문 분야에 있는 학자들은 어떠하겠는가?
 
그럼 우리나라 학계에는 왜 이렇게 많은 학술단체가 생겼을까? 간단한 이유다. 과거에 학문을 하는 사람이 많았고, 그들이 학회에서 적극적으로 발표하고 토론할 정도로 젊었다. 1980~90년대에 대학생의 수가 많아지면서 전국에는 수많은 대학이 생겨났고, 원래 있던 대학들도 교수들을 충원했다. 대학원생과 신진 학자는 본인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학회에 적극 참여해 논문도 발표하고 심지어는 행사 진행까지 담당했다. 젊은 학자들이 넘쳐나니 더 많은 학술단체가 필요했고, 그 결과가 바로 1000개도 넘는 학술단체였다. 매년 1~2회 열리는 학회에서 선배 교수들은 신진 학자들을 격려하고 충원이 필요한 인재를 데려갔다.
 
최근 수많은 대학이 학생 충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아직 2002년에 태어난 저출산둥이들이 고등학생인데도 이 정도이면, 3년 뒤 이들이 대학에 입학하는 나이가 되는 순간 대학들의 재정이 어떻게 될지 어렵지 않게 예측이 가능하다.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교수들의 임금을 주어야 하는 대학들은 이미 새로운 교수 충원을 꺼리고 있으니 앞으로의 상황은 더 악화될 것이 뻔하다. 이제는 선배 교수들이 학회에 가서 본인이 재직하고 있는 대학의 교수 충원 계획을 이야기할 여지는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들다.
 
학자도 생계가 있는 생활인이다. 선배들과의 네트워킹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소들 가운데 하나였던 취업의 가능성이 닫히면 학회에 참가할 매우 큰 동기가 축소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열심히 준비한 논문은 더 다양하고 건설적인 토론을 얻을 수 있는 해외 학회에서 발표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 학회는 이제 신진 인력 없이 시니어들만 모여서 잘나가던 때를 회상하고 현재의 신세를 한탄하는 사랑방이 될까 씁쓸하다.
 
조영태 서울대 교수, 인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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