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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추적]밥사주고 담배 준 그들에게 10억 탈탈 털린 노숙인들

지난 2월 중순 충남 천안시 동남구 천안역 서광장 앞. 쌀쌀한 겨울바람이 부는 가운데 A씨(50) 등 두 명이 역 광장을 오가며 사람들의 동태를 살폈다.
노숙인·무직자를 앞세워 대출을 받게 한뒤 이를 가로챈 일당이 경찰에 검거됐다. 원안은 알선책이 피해자를 데리고 대출을 받으러 가는 모습. [사진 충남경찰청]

노숙인·무직자를 앞세워 대출을 받게 한뒤 이를 가로챈 일당이 경찰에 검거됐다. 원안은 알선책이 피해자를 데리고 대출을 받으러 가는 모습. [사진 충남경찰청]

 
잠시 뒤 모자를 눌러쓴 허름한 옷의 한 남성이 그들의 눈에 들어왔다. 천안역 노숙인 가운데는 낯선 얼굴로 새로 노숙을 시작한 김모(59)씨였다. A씨 등은 곧바로 ‘먹잇감’인 것을 직감했다.
 
A씨 등은 천안역 광장 구석에 앉아 있던 김씨에게 다가가 “밥은 먹었냐” “언제부터 노숙을 시작했냐”며 담배를 건넸다. 새내기 노숙인에게 다가가는 전형적인 수법이었다.
 
낯선 사람들의 접근에 경계하던  김씨는 “같이 밥을 먹자”는 A씨의 손에 이끌려 역 주변 식당으로 갔다. 자영업을 하다 폐업한 뒤 덜덜 떨며 며칠째 끼니도 제대로 못 때웠던 김씨는 밥 두 공기를 뚝딱 해치웠다.
 
A씨 등은 며칠간 천안역에 나와 노숙하는 김씨에 밥을 먹여주고 환심을 샀다. 그리고는 서서히 본색을 드러냈다. 김씨에게 “돈을 벌게 해주겠다” “이름만 빌려주면 된다”고 꾀여 신분증을 건네받았다.
노숙인·무직자를 앞세워 대출을 받게 한뒤 이를 가로챈 일당이 경찰에 검거됐다. 이들은 보험 결합상품에 가입해 가전제품을 받기도 했다. [사진 충남경찰청]

노숙인·무직자를 앞세워 대출을 받게 한뒤 이를 가로챈 일당이 경찰에 검거됐다. 이들은 보험 결합상품에 가입해 가전제품을 받기도 했다. [사진 충남경찰청]

 
이들은 신분증을 이용해 김씨를 한 회사의 직원으로 둔갑시켰다. 김씨가 직원이 된 회사는 서류만 있는 유령회사였다. 김씨 명의로 신용카드를 만들고 재직증명서 등을 발급한 뒤 “중고차를 사겠다”는 명목으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도록 했다.
 
이들은 김씨 명의로 발급받은 신용카드로 ‘카드론’ 대출을 받거나 카드깡(허위매출) 등의 수법으로 무려 7800만원이나 가로챘다. 보험 등 각종 상품에 가입한 뒤 받은 가전제품(대형냉장고 등)도 빼돌렸다. 휴대전화도 두 개 개통해 팔아넘겼다. 하지만 김씨가 손에 쥔 돈은 경우 100여 만원 정도였다.
 
이씨의 뒤에는 총책인 B씨(37)가 있었다. 천안지역에서 중고차 대출업무에 종사했던 B씨는 새로운 돈벌이 수단을 찾다가 노숙인을 앞세워 각종 대출을 받는 방법을 찾아냈다.
 
이씨 등이 A씨를 상대로 저지른 범죄를 속칭 ‘작업’이라고 부른다. 온갖 수법을 동원해 금융기관 등에서 대출을 최대한 받아낸 뒤 돈을 가로채고 명의(이름)를 빌려준 사람은 신용불량자로 전락시키는 범죄다. 범죄자들 사이에선 “탈탈 털린다”라는 표현을 쓴다. 
노숙인과 무직자를 앞세워 대출을 받게 한뒤 이를 가로챈 일당이 허위로 만든 업체의 사업자등록증. [사진 충남경찰청]

노숙인과 무직자를 앞세워 대출을 받게 한뒤 이를 가로챈 일당이 허위로 만든 업체의 사업자등록증. [사진 충남경찰청]

 
B씨처럼 노숙인과 무직자를 앞세워 대출을 받아 가로채는 수법으로 거액을 챙긴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충남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지난 6일 무직자를 유령 사업체 직원으로 둔갑시킨 뒤 ‘작업’을 통해 각종 대출금을 가로챈 혐의(사기 등)로 총책 B씨 등 8명을 구속하고 8명은 불구속 입건했다.
 
B씨 등은 2016년 12월부터 최근까지 노숙인이나 직업이 없는 무직자 23명을 사업체 대표·직원으로 둔갑시킨 뒤 대출을 받는 수법으로 10억2000여 만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B씨는 A씨 등 10여 명을 알선책으로 두고 이들이 가져온 노숙자·무직자 개인정보를 이용해 회사에 다니거나 사업체 대표인 것처럼 서류를 꾸몄다. 주로 갓 노숙을 시작했거나 신용불량자기 되지 않은 무직자가 범행 대상이었다.
노숙인·무직자를 앞세워 대출을 받게 한뒤 이를 가로챈 일당이 경찰에 검거됐다. 원안은 알선책이 피해자를 데리고 대출을 받으러 가는 모습. [사진 충남경찰청]

노숙인·무직자를 앞세워 대출을 받게 한뒤 이를 가로챈 일당이 경찰에 검거됐다. 원안은 알선책이 피해자를 데리고 대출을 받으러 가는 모습. [사진 충남경찰청]

 
불법 오락실 주변이나 경마장 주변에서도 대상자를 물색했다. 돈 한 푼이 아쉬운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단돈 10만~20만원에 자신의 개인정보를 넘긴 사람도 있었다.
 
B씨 등은 서류를 근거로 중고차 매매 계약서를 작성하고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 자동차 계약서를 작성하는 데는 중고자동차 매매상 딜러도 가담했다. 계약서만 오갈 뿐 실제로 자동차는 넘겨주지 않았다.
 
이름을 빌려준 노숙자와 무직자에게는 대출금의 일부만 건넸다. 하지만 피해를 본 사람 대부분은 “이거라도 고맙다”며 오히려 고마워했다고 한다.
 
조사 결과 B씨는 벌어들인 돈으로 아파트를 분양받고 명품을 사거나 골프를 즐긴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B씨 등에게서 압수한 가전제품을 김씨 등 피해자에게 돌려주고 범죄이익을 환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노숙인·무직자를 앞세워 대출을 받게 한뒤 이를 가로챈 일당을 검거한 충남경찰청. [중앙포토]

노숙인·무직자를 앞세워 대출을 받게 한뒤 이를 가로챈 일당을 검거한 충남경찰청. [중앙포토]

 

경찰 관계자는 “피해를 본 노숙인 등은 자신 명의로 대출을 받은 사실을 모르거나 알더라도 크게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런 사기를 당할 경우 신용불량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절대로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예산=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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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