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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내 발표 본 뉴욕 공대 관계자, MIT의 연봉 2배 부교수직 제안

지금은 뉴욕대 탠던 이공과대가 된 뉴욕 공대에서 가장 오래된 운쉬 빌딩. 1847년에 세운 유서 깊은 건물이다. [사진 위키피디아].

지금은 뉴욕대 탠던 이공과대가 된 뉴욕 공대에서 가장 오래된 운쉬 빌딩. 1847년에 세운 유서 깊은 건물이다. [사진 위키피디아].

하버드대 행정대학원의 과학기술 정책과정에 다니면서 재미와 보람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과거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신나게 공부하던 일이 저절로 떠올랐다. 이 과정을 수료하면서 제출한 논문의 제목이 ‘후진국에서의 두뇌 유출을 막는 정책 수단’이었다. 세계 각국에서 미국으로 유학 온 인재들이 왜 공부를 마친 뒤 조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미국에 남는가가 문제의식의 출발이었다. 미국의 앞선 과학기술을 배운 인재들이 귀국해 조국 발전을 위해 이바지할 수 있는 방법을 논한 논문이었다. 평소 내가 관심을 가진 주제였고 나 자신에게도 끊임없이 되풀이해서 질문하던 문제였다. 무엇을 배우고 돌아가서 어떻게 조국 발전에 보탬이 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미국 유학 시절 내 최대 화두였기 때문이다. 이 논문은 나중에 한국에 큰 도움을 주게 된다.  

미국 뉴욕 공대의 전기 물리학자인 올리너(1921~2013년) 교수. MIT에서 핵융합을 연구하던 정근모 박사를 부교수로 스카웃해 플라스마 연구소장을 맡기고 아낌없이 지원했다. [사진 뉴욕 공대]

미국 뉴욕 공대의 전기 물리학자인 올리너(1921~2013년) 교수. MIT에서 핵융합을 연구하던 정근모 박사를 부교수로 스카웃해 플라스마 연구소장을 맡기고 아낌없이 지원했다. [사진 뉴욕 공대]

미국에서 만난 과학기술계 지도자들의 공통적인 특징의 하나도 바로 이러한 인재 양성에 대한 투자였다. 앞서 만났던 미시간 주립대의 존 해너 총장이나 프린스턴 플라스마 물리학 연구소(PPPL)의 라이먼 스피처 소장과  토마스 스틱스 실험부장, 매사추세츠 공대(MIT) 핵융합 교실의 데이비드 로즈 교수는 한결같이 인재 양성에 주력하는 모습이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인재를 찾았고, 찾은 인재를 길렀으며, 그 인재가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격려와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MIT의 로즈 교수는 특히 헌신적이었다. MIT 졸업생들이 미국 과학기술계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것은 그와 같은 훌륭한 스승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 온몸으로 느낄 기회가 있었다. MIT에선 매년 봄 뜻깊은 학술 발표회를 연다. 대학 소속의 각 연구소·연구실·학과에서 지난 1년 동안의 연구 업적을 정리해 발표한다. 대학 관계자는 물론 정부기관·연구소와 다른 대학의 교무·연구 책임자들도 찾아와 MIT의 과학기술 연구결과를 듣고 연구자들과 직접 토론도 한다. 
정근모 박사가 1967년 전기 물리학 교수로 부임했던 뉴욕 공대의 모습. [사진 위키피디아]

정근모 박사가 1967년 전기 물리학 교수로 부임했던 뉴욕 공대의 모습. [사진 위키피디아]

로즈 교수는 우리 연구팀 대표 발표자로 나를 지명했다. 발표 자리에는 뉴욕 공대(Polytech Institute of New York)의 아서 올리너 전기물리학 주임교수가 있었다. 뉴욕 공대는 전기 물리와 초단파 전자기학 분야에서 명성이 높았다. 발표가 끝나자 그는 내게 자기 학교에서 강의를 한 번 해달라고 부탁했다. 
뉴욕 공대에서 전기 물리학을 연구하고 가르쳤던 아서 올리너(1921~2013년) 교수의 만년 모습. [사진 뉴욕 공대]

뉴욕 공대에서 전기 물리학을 연구하고 가르쳤던 아서 올리너(1921~2013년) 교수의 만년 모습. [사진 뉴욕 공대]

뉴욕 공대에서 강의를 마치자 대학 측이 부교수와 연구소장직을 함께 제의했다. 연봉도 MIT의 2배이고 평생 근무를 보장하는 영년 교수(Tenure)도 될 수 있는, 너무나 좋은 조건이었다. 특히 연구소가 미국 과학재단의 특별 연구비를 이미 확보했기 때문에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엄청난 기회였다. 나는 제의를 수락하고 67년 9월 뉴욕 공대의 전기 물리학 부교수로 새 생활을 시작했다. 만 27세 9개월의 나이였다. 이 과정에서 로즈 교수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황수연 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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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