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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2035] 가까운 폭력

윤정민 산업팀 기자

윤정민 산업팀 기자

폭력이 주는 고통의 크기는 무엇으로 정해질까. 정도나 방법도 영향이 있겠지만 누구로부터 가해진 폭력인지, 폭력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있는지 역시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가깝고 지속적인 폭력’은 그 정도나 수법이 덜 잔혹할지라도, 더 큰 고통과 상처를 남긴다.
 
내가 아는 가장 가깝고 벗어나기 힘든 폭력은 가정폭력이다. 부모·친척·형제로부터의 폭력은 인간의 영혼을 바닥부터 파괴한다. 가장 사랑해야 할 존재가 되려 자신을 파괴한다는 점에서 물리적 고통을 넘어서는 배신감을 안기며, 더는 기댈 곳이 없어져 좌절하게 된다. 경험한 사람은 알고 있다.
 
게다가 자식은 부모를 선택한 적이 없다. 태어났다는 이유로 폭력까지 감내하는 건 인종이나 성차별만큼 잔인하다. 심지어 고통이 아무리 심해도 웬만해선 가족, 특히 부모·자식의 연을 끊을 수가 없다. 가정폭력의 고리는 그만큼 질기고 단단하다. 스스로 끊어내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대처는 지금껏 폭력 그 자체만큼이나 잔인했다. ‘남의 집안일’이니, ‘아무리 그래도 자식이 그럴 수 있느냐’ 따위의 말들. 심지어 고통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후레자식’이 되는 처참함을 감당하며 경찰에 신고해도, 한겨울에 맨발로 도망쳐 나와 이웃에 도움을 청해도, 가정사니 천륜 같은 말로 넘기는 일이 흔했다. 실제 보고 들은 일이다.
 
가정폭력에 대한 이런 태도는 사실 폭력에 대한 명백한 방조다. 게다가 한 인간의 행복을 위한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할 가정에서 오히려 욕설과 매질을 당한 피해자에게 추가로 가해지는 폭력이기도 하다.
 
또한 기억해야 할 것은, 가정폭력이 가정 내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얼마 전 본 영화엔 별다른 동기 없이 여럿을 무참히 살해하고 시신을 토막 내 유기한 살인자가 등장한다. 그는 어떻게 괴물이 됐을까. 그의 첫 범죄는 술에 취해 폭력을 저지른 아버지를 살해한 것이었다. 잔혹하며, 특별한 사연도 없는 강력범죄의 뿌리를 파헤쳐보니 어린 시절 가정에서 겪은 폭력이 드러난 일은 결코 특이한 사례가 아니다.
 
가족이나 부모란 이름 아래 행해진 이처럼 ‘가까운 폭력’은, 어쩌면 평범하게 살 수 있었던 존재를 순수한 악으로 바꿀 수 있을 만큼 잔혹하다. 그리고 가까운 폭력에 의해 파괴된 삶은 또 다른 폭력으로 번질 수 있다. 이 폭력은 무차별적이다. ‘남의 집안일’ 따위의 말로 눈감을 수 없는 이유다. 가족도 지인도 아니지만, 전 부인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등촌동 살인사건’ 피의자가 그 가족에게 지은 죄가 있다면 반드시 그만한 죗값을 치르길 바란다.
 
윤정민 산업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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