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중앙시평] 우상이 돼 버린 소득주도 성장

이철호 논설주간

이철호 논설주간

그제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야당 원내대표들의 감상문은 조금씩 달랐다. “대통령도 소득주도 성장의 한계를 웬만큼 느끼는 것 같았다”(김성태 자유한국당), “미세하지만 소득주도 성장의 인식에 변화가 있더라”(장병완 민주평화당), “그래도 정책 기조를 바꿀 마음이 그렇게 없는 것 같았다”(김관영 바른미래당)….
 
개인적으로 김관영 대표의 관전평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가보지 않은 길을 간다”→“우리는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과거로는 돌아갈 수 없다”…. 문 대통령의 소득주도 성장은 신념으로 굳어졌다. 그 부작용마저 “경제 체질 전환 과정의 진통”으로 여긴다. 그제 장하성 정책실장은 선지자처럼 “내년에는 소득주도 성장의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 예언했다. 어느새 소득주도 성장은 경제정책을 넘어 문재인 정부의 집단 신앙이 돼 버렸다.
 
그렇다면 과연 내년에 좋아질까.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을 사수하기 위해 요즘 두 개의 총력전을 펴고 있다. 하나는 통계와의 싸움이다. 공기업들에 한두  달짜리 단기 알바라도 5만6000개 만들라고 닦달하고 있다. 꼼수를 쓰더라도 고용지표를 분식하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예산 투쟁이다. 올해 7.1% 증가한 초확장 예산에 이어 내년에는 무려 9.7% 팽창한 울트라 수퍼 예산을 밀어붙이고 있다. 사실 현 정부가 믿는 유일한 정책수단이 재정밖에 없다. 거의 재정 중독 수준이다.
 
경제학은 비교적 정밀한 사회과학 장르다. 자연과학처럼 딱 떨어지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세밀히 계량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어느 정도 경제적 영향을 예측할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내년에 소득주도 성장의 효과를 누리는 게 아니라 그 부작용을 뼈저리게 체감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물론 470조원의 울트라 수퍼 예산이 통과되면 내년 성장률을 인위적으로 0.2%포인트쯤 끌어올릴 것이다. 하지만 그 나머지 경제 변수들이 일제히 나빠지고 있다. 좋아질 게 없다.
 
이철호칼럼

이철호칼럼

우선 미국이 기준금리를 네 차례 1%포인트 올릴 전망이다. 한국 금리가 덩달아 1%포인트 오르면 경제성장률은 0.2%포인트 내려가게 된다(2014년 한은 거시계량모형 추정 결과). 중국 리스크도 무시할 수 없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중국 성장률을 올해 6.6%에서 내년에는 6.3%로 낮춰 잡았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중국 국내총생산(GDP)이 0.3%포인트 하락하면 한국 GDP는 0.15%포인트 떨어진다.
 
더 심각한 게 국내 문제다. 어느새 소득주도 성장은 계급투쟁으로 변질되고 있다. 귀족노조들이 완장을 차고 설치는 반면 기업들은 최저임금, 주 52시간 근로, 통상임금 펀치를 연달아 얻어맞아 만신창이가 됐다. 이들에게 반창고를 붙여 주며 “투자 좀 해라”고 한들 제대로 투자가 이뤄질 리 없다. 오히려 기업들은 납작 엎드려 눈치만 살피고 있다. 지난 9월 말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평양 대신 미국으로 건너가 윌버 로스 상무장관을 만났다. 문재인 정부만큼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과 자동차 관세도 겁나기 때문이다.
 
어제 한국개발연구원(KDI)마저 “소득주도 성장의 단기적인 부작용을 부인하기 힘들다”며 내년 경제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지난주 국내의 이코노미스트들 사이의 화제는 유승민 의원이 국감에서 김동연 부총리를 상대로 “2~3년 안에 마이너스 성장의 위기가 올 가능성이 있느냐”고 집요하게 캐묻는 장면이었다. 사실 반도체 수퍼호황이 끝나고 미·중 통상마찰이 악화되면 마이너스는 아니더라도 1%대 성장으로 주저앉을 수 있다는 게 업계에선 공공연한 비밀이다.
 
문제는 문재인 정부가 성장을 너무 가볍게 여겨 1%대 성장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른다는 것이다. 성장률이 반 토막 나면 멀쩡한 일자리가 날아가고 소득은 정체되며 경제는 골병이 든다. 성장지상주의보다 성장경시주의가 더 무서운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 답은 이미 나와 있다. 프랑스나 독일처럼 강력한 정치적 리더십으로 구조개혁과 규제 완화를 통해 신산업과 서비스 산업을 키우는 것이다. 노사정 합의로 노동시장도 개혁해야 한다. 하지만 뻔히 알면서도 따라 하기 힘든 게 이런 독일·프랑스식 모델이다.
 
문재인 정부는 쉬운 길로 가려는 조짐이다. 소득주도 성장을 우상처럼 떠받들며 ‘정책 일관성’으로 포장해 끝까지 밀어붙일 분위기다. 어제 민주노총·진보연대 등은 “문재인 정부가 친재벌·반노동 정책으로 ‘촛불 민의’에 역행하고 있다”며 민중대회를 열겠다고 압박했다. 이런 구도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소득주도 정책을 스스로 포기할 것 같지 않다. 이대로 가면 우리 사회는 내년에 체질 전환 과정의 진통이 아니라 단말마적 고통에 휩싸일지 모른다. 한국 경제가 참 나쁜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철호 논설주간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