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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내일을 꿈꾸는 유치원

민은기 서울대 교수·음악학

민은기 서울대 교수·음악학

최근 불거진 사립유치원들의 비리는 가히 충격적이다. 유치원 교비로 비자금을 조성하거나 원장 개인 빚을 갚고 심지어는 일하지도 않은 가족에게 급여를 지급했다니. 자기 돈으로 하는 사업장에서도 불법적이라 할 일들이 정부 지원금을 받은 교육기관에서 버젓이 벌어진 거다. 이런 사정을 알고 분노하지 않을 학부모가 있을까. 늦게나마 정부가 문제 해결에 팔을 걷어붙이겠다니 다행이지만 자칫 아이들이 볼모가 되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아이를 키우는 것이 이렇게 힘들어서야. 출산율이 매년 최저 기록을 경신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는 듯하다.
 
뉴스를 듣고 있자니 오래전 기억들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이 세상에 고생 안 하고 아이를 키워낸 엄마가 어디 있으랴마는 내게도 육아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 동안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도와줄 사람도 없는 타지에서 학업과 육아를 병행해야 했다. 그래도 프랑스라서 다행이었다고 해야 하나. 당시 프랑스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실시했고, 그 혜택은 나 같은 외국인 유학생들에게도 돌아왔다. 생후 10주부터 하루 8시간을 공립 유아원과 유치원에서 아이를 맡아 주었고, 소득이 없는 학생이라는 이유로 그 모두가 무료였으니.
 
진짜 고생은 오히려 귀국 후부터였다. 유치원은 아침 9시 반에 시작해서 12시만 되면 아이를 돌려보냈고, 직장에 가려면 아이를 맡아줄 사람을 구해야만 했다. 어렵게 부탁을 하고, 가족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하루하루가 가시방석 같은 날들이었다. 하도 힘들어서 원장 선생님에게 종일반을 개설하자는 제안을 했지만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며 한마디로 거절이다. 아니면 나더러 원아를 10명 모아오란다. 자선사업이 아니라는데 딱히 뭐라고 반박하기도 어렵고. 그저 아이 키우기 정말 힘들다는 푸념만 주억거렸을 뿐.
 
그래서일까. 공립 유치원을 확대한다는 소식이 반갑기 그지없다. 적어도 아이들을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지는 않을 테니까. 사익을 편취하려는 불법적 비리도 줄어들 거다. 보육 교사들의 처우나 일자리도 더 좋아지지 않을까. 다만, 한 가지 더 바란다면 이참에 유치원 교육 내용도 좀 손을 보면 좋을듯하다. 유치원에서 하는 교육이 너무 부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부모들이 고객이니 그들의 입장을 고려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경쟁에 익숙한 학부모들의 요구만 맞춘다면 아이들에게 정말 유익한 교육은 제대로 할 수 없지 않을까.
 
내 아이는 종이접기나 찰흙 공예 등 날마다 유치원에서 뭔가를 만들어 왔는데, 놀랍게도 아이 혼자서는 도저히 만들 수 없는 수준의 작품들이었다. 낙서에 가까운 조악한 그림을 그대로 집으로 보내주었던 프랑스 유치원과는 격이 달라도 크게 달랐다. 노래도 그랬다. 아이는 유치원에 다니면서 예쁜 노래들을 자주 배워왔다. 공통점은 하나같이 빠르고 신나는 가락이라는 점. 어려운 노래를 외워 부르니 부모로서는 기특하고 대견할 수밖에. 돈을 내고 유치원을 보내는 보람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흥겨운 노래가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흥분해서 목청껏 소리를 지르는 발성은 아직 성대가 발달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무리가 될 수밖에 없다. 노래의 음역도 종종 아이들이 감당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가사 발음이나 의미가 아이들 수준에 너무 어렵기도 하고.
 
이제라도 유치원을 아이들에게 돌려주어야 하지 않을까. 돈을 벌기 위한 사업 수단이 아니라 아이들이 미래를 꿈꾸는 곳이 되도록. 부모들이 원하는 것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가르치는 곳이 될 수 있도록. 부모들이 좋아하는 유치원이 반드시 아이들에게 좋은 유치원은 아닐 수 있으니까. 서툴러도 자신의 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만들고 어설퍼도 동심에 맞는 자신들의 노래를 하는 곳이 필요하다. 그런 작고 소중한 경험들이 모여야 내일의 삶을 힘차게 헤쳐 나갈 힘이 생길 테니까.
 
민은기 서울대 교수·음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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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