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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앵란 “연기 같은 인생, 욕심없이 살 것” 송해 “저승서도 영화 만들길”

5일 배우 김창숙씨가 엄앵란씨를 위로하는 모습. [연합뉴스]

5일 배우 김창숙씨가 엄앵란씨를 위로하는 모습. [연합뉴스]

“인생은 연기에요. 스님 말이 꼭 맞아요. 연기로 와서 연기로 떠서 돌아다니다가 나하고도 다시 연기로 만나겠지요.”
 
고인이 된 남편이자 ‘배우 동지’ 신성일의 입관식을 마치고 5일 엄앵란(82)씨는 이렇게 말했다. 입관식은 고인의 신앙에 따라 불교식으로 치러졌다. 엄씨는 “사람은 숨이 끊어지면 목석과 같다. 잘났다고 하지만 눈 딱 감으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며 “여기서는 ‘내 새끼, 내 식구’ 야단법석을 치지만 저세상에서는 내 식구 찾는 법이 없이 다 똑같다. 오늘부터 욕심 없이 살겠다”고도 말했다.
 
두 사람은 55년 동안 부부였다. 그 이전에 1960년 신성일의 데뷔작 ‘로맨스 빠빠’부터 함께한 동료 배우였다. 고인은 생전에 본지에 연재한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청춘은 맨발이다’에서 이렇게 돌이켰다. “데뷔작에서 드러난 내 연기 실력은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시쳇말로 ‘발연기’인데 가장 짜증 냈던 사람이 지금의 아내인 엄앵란이었다. 그 모든 과정이 훗날 뼈가 되고, 살이 됐다.”
 
연재를 통해 가혹했던 검열의 칼날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가 출연한 이만희 감독의 영화 ‘휴일’은 “암울하고 퇴폐적이란 이유로 상영 금지”됐다. 이 영화의 제작자 전옥숙은 홍상수 감독의 어머니다. 고인은 “박정희 정권에서 검열이란 돋보기를 들고 보는 정도였다. 경제부흥을 이룬 점은 높이 평가하지만 대중예술인 입장에선 아쉬움이 크다”며 “전두환 정권은 통행금지를 없애면서 성을 개방했다. 반면 현실 비판적인 영화는 눈곱만큼도 허용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방송인 송해씨도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연합뉴스]

방송인 송해씨도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연합뉴스]

그는 어쩌면 스스로의 표현처럼 “한마디로 세상물정 모르는 사나이”였다. 30대엔 필름공장을 짓는단 꿈에 부풀어 1억원을 사기 당하기도 했다. 배우의 길을 꿈꾸게 된 것도 가수로 성공한 고교동창을 우연히 마주친 것이 계기가 됐다. “내가 그 자리에서 했던 생각은 단 한 가지였다. ‘그래, 너 노래 잘한다. 하지만 난 너보다 잘생겼다는 소리 듣는다. 두고 보자.”
 
무엇보다 한국영화에 어떻게든 기여하려는 열정만큼은 대단했다. 80년대 후반 남양주종합촬영소 건립에도 앞장섰다. 당시 영화진흥공사 사장이었던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은 4일 빈소를 찾아 “어떻게 보면 남양주종합촬영소를 함께 지었다. 대통령 결제부터 예산 확보까지 큰 도움 줬다”고 전했다.
 
평탄하지 않은 결혼생활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곧잘 내비쳤다. 생전에 “나는 사랑 없이는 못 산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다”고 한 고인은 아내를 ‘엄 여사’로 지칭하며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엄 여사가 어떻게 참고 살았느냐고들 하는데, 사실 나는 손오공처럼 엄 여사 손바닥에서 놀았어요. 정보를 엄 여사가 다 쥐고 있었지요. 참고 산 게 아니라 알면서도 넘어가 준 거죠. 내 방패막이도 돼 주었고.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연재를 바탕으로 펴낸 단행본 『청춘은 맨발이다』에는 아내 엄씨의 글도 실렸다. “살아오면서 원망도 많이 했고, 미워도 했고, 그만 끝낼까라는 생각도 서른 번은 했다”면서도 “우리는 사랑하는 부부 이전에, 동지”라고 쓰여있다.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는 이날도 각계의 조문이 이어졌다. 91세의 방송인 송해씨는 고인에 대해 “정말 철저한 영화인이었다”면서 “우리나라서 영화하면 제약도 많이 받고 검열도 많이 하는데 거기선 뜻대로 마음에 있는 것 제작해서 우리 세상에 많이 보내달라”고 했다. 16대 국회에서 의정활동을 함께한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는 “고인을 보면 천의무봉(天衣無縫)이란 말이 생각난다”며 “정말 꾸밈과 거짓이 없고 좋은 분”이라고 추모했다.  
 
나원정·민경원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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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