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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 '원숭이 3000마리'... 인류 난치병 극복 위해 모였다

벽에 걸린 그네를 타고 놀다 문득 지루해졌다. 정사각형의 5㎝ 타일 12개 높이의 대문으로 햇빛이 스며든다. 빛을 쫓아 집 밖으로 뛰어 나왔다. 거대한 원형의 광장이 나타났다. 광장 중앙에 서 있는 정자 모양의 탑 위로 쏜살같이 뛰어올랐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동료들이 함께 광장으로 쫓아나오고 있다. 정자에 걸린 그네로 몸을 날렸다. 사람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사람과 흡사하다. 바로 ‘붉은털원숭이’의 입장에서 본 정읍 영장류자원지원센터 ‘캐슬동’의 풍경이다. 
 
사실 캐슬동은 일부 팔자 좋은 원숭이를 위한 '호텔' 이다. 대부분의 원숭이들은 27㎡(약 8평)의 우리에 15마리씩 들어가 지내야 한다. 국내 최대 규모인 3000마리의 원숭이가 수용될 영장류자원지원센터는 이런 우리가 10개 또는 20개씩 들어있는 10개 사육동으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사육동 내에도 추위에 약한 원숭이의 특성을 고려해 온돌과 히터까지 미련돼 있다. 이들은 이곳 '캠프'에서 지내다, 국내 기업이나 대학 등의 연구소로 '파견'될 운명이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영장류자원지원센터 준공식을 하루앞둔 5일 오후 전북 정읍 영장류자원지원센터 사육동에서 원숭이들이 뛰어놀고 있다. [사진 김성태 기자]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영장류자원지원센터 준공식을 하루앞둔 5일 오후 전북 정읍 영장류자원지원센터 사육동에서 원숭이들이 뛰어놀고 있다. [사진 김성태 기자]

인간과 유전체 93.5% 유사한 원숭이...치매ㆍ파킨슨병 등 난치병과 싸우다
 
알츠하이머성 치매ㆍ파킨슨 병 등 퇴행성 뇌질환을 치료하고 인공장기를 생산하는 등 미래 바이오 산업을 지원할 베이스캠프가 마련됐다. 5일 한국생명공학연구원(생명연)은 전북 정읍시 입암면 7만3424㎡ 부지에 ‘영장류자원지원센터’를 준공했다고 발표했다. 
 
총 3000마리의 영장류를 사육할 수 있는 국내 최대 규모로, 2014년부터 4년간 185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지어졌다. 현재는 약 550마리의 붉은털원숭이ㆍ게잡이원숭이가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전라북도 정읍 입암면에 위치한 영장류자원지원센터. 현대 550마리 규모의 영장류자원이 2000마리 규모가 되면, 바이오ㆍ제약 연구를 수행하는 대학ㆍ출연연ㆍ민간 기업에도 공급할 예정이다. [사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전라북도 정읍 입암면에 위치한 영장류자원지원센터. 현대 550마리 규모의 영장류자원이 2000마리 규모가 되면, 바이오ㆍ제약 연구를 수행하는 대학ㆍ출연연ㆍ민간 기업에도 공급할 예정이다. [사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이들이 고향인 인도네시아ㆍ중국 등을 떠나 정읍에 정착하게 된 이유는 뭘까. 대답은 바로 수치에 있다. 
 
93.5%. 영장류자원지원센터에 사는 원숭이와 사람의 유전체가 일치하는 정도다. 영장류가 사람과 흡사하다는 것은 사람과 같은 질병에 걸릴 수 있고, 영장류를 고칠 수 있는 약으로 사람도 고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부작용 역시 공유한다. 이 때문에 모든 신약은 사람에게 사용되기 전 먼저 사람과 유전체가 유사한 동물을 상대로 실험을 하게 된다. 특히 임상시험의 최종단계인 ‘전임상시험’에서는 영장류를 상대로 한 시험이 필수적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만 총 308만 2259마리의 동물이 임상시험에 사용됐다. 전년 대비 7.1% 증가한 수치다. 이 중 원숭이는 총 2403마리 사용됐다. 불치병과 난치병에 대항하는 싸움이 치열해질 수록 이 숫자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김지수 영장류자원지원센터장은 “현재 550마리인 유인원 사육규모를 연말까지 1090마리까지 확대하고, 2025년에는 3000마리까지 늘릴 계획이다”며 “제약ㆍ바이오 관련 중추기관인 대학과 연구기관·민간업체에도 공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추위 타는 원숭이 위해 온돌도...단체생활 습성 고려한 '집단 사육'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영장류자원지원센터 검역동에서 연구원들이 원숭이를 관찰하고 있다. 원숭이는 더위보다 추위에 약한 것으로 알려져 사육동 실내 온도를 16~18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게 관건이다. [사진 김성태 기자]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영장류자원지원센터 검역동에서 연구원들이 원숭이를 관찰하고 있다. 원숭이는 더위보다 추위에 약한 것으로 알려져 사육동 실내 온도를 16~18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게 관건이다. [사진 김성태 기자]

 

이 외에도 생명연이 신약 개발의 핵심인 영장류를 본격적으로 사육하기 시작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바로 중국의 자원무기화와 생물주권을 인정하는 나고야의정서의 영향이다. 현재 중국은 전세계 실험용 영장류의 90%를 독자적으로 공급하고 있다. 반면 동물윤리가 강조되고 있는 서구사회에서는 영장류 실험을 줄여나가는 추세에 있어 생명공학 연구자들은 중국과 공동연구를 하거나, 직접 중국에 가서 실험하는 등의 방법을 택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자원 무기화하는 중국ㆍ나고야의정서는 생물주권...영장류자원 독립해야 
세계 실험용 영장류 자원의 90%는 중국이 공급하고 있다. 또 나고야의정서는 생물주권을 이유로 해외생물을 통한 실험성과는 로열티지급ㆍ연구성과 공유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해당국가에 보상을 하도록 하고 있다. [사진 김성태 기자]

세계 실험용 영장류 자원의 90%는 중국이 공급하고 있다. 또 나고야의정서는 생물주권을 이유로 해외생물을 통한 실험성과는 로열티지급ㆍ연구성과 공유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해당국가에 보상을 하도록 하고 있다. [사진 김성태 기자]

 
지난해 8월 한국에서도 발효된 나고야의정서는 ‘유전자원의 접근 및 이익공유(ABS)’라는 국제 규범을 도입해 생물자원에 대한 주권적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해외의 생물자원을 이용해 연구성과를 얻을 경우, 해당 국가에 로열티를 제공해야 하며 기술이전ㆍ공동연구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익을 공유해야 한다. 신약 개발의 후발주자인 한국으로서는 기술 유출을 걱정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 센터장은 “2005년부터 충북 오창에 국가영장류센터를 운영하면서 400마리 규모의 영장류를 보유하고 있지만 이는 국내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부족했다”며 “특히 멸종 위기에 처한 동식물 교역에 관한 국제협약(CITES)' 등으로 인해 외국에서 실험용 원숭이를 들여오는 것이 점점 까다로워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는 불가능한 영장류 번식의 합법화가 필요하다는 해석이다. 김장성 생명연 원장은 그러나 “이번 영장류지원센터 등 국가적 SPF 영장류 연구기관이 확립된다면 재생의학 등 전임상 연구 지원을 통해 바이오산업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정읍=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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