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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긋한 해외 대형마트 탐험, 자유여행 아니면 못하죠

기자
박헌정 사진 박헌정
[더,오래]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2)  

25년간의 회사생활을 정리하고 50세에 명퇴금 챙겨 조기 은퇴해서 책 읽고, 글 쓰고, 여행하는 건달이자 선비의 삶을 현실화했다. 은퇴 후 도시에 뿌리 박혀버린 중년의 반복적이고 무기력한 삶에 저항하기로 했다. 20대는 돈이 없어 못 하고, 30~40대는 시간이 없어 못 하고, 60대는 힘과 정보가 없어 못 하던 일들, 꿈만 같지만 결코 꿈이 아닌 현실이 되어야 할 일들, 50대의 전성기인 그가 그 실험에 도전하고 그 과정과 결과를 인생 환승을 앞둔 선후배들과 공유한다. <편집자>

 
체코 프라하의 숙소 근처의 Scre Coeur 공원. 언덕과 넓은 잔디밭 뿐이지만 동네 사람들의 한가로운 일상을 마주치며 눈 인사라도 나누기 좋은 곳이 공원이다. [사진 박헌정]

체코 프라하의 숙소 근처의 Scre Coeur 공원. 언덕과 넓은 잔디밭 뿐이지만 동네 사람들의 한가로운 일상을 마주치며 눈 인사라도 나누기 좋은 곳이 공원이다. [사진 박헌정]

 
요즘 젊은 사람들은 해외여행을 참 잘 다닌다. 짧은 휴가와 연휴, 연차, 신혼여행, 군대 입대 전이나 제대 후의 공백 기간 등 틈만 나면 저렴한 비행기 표로 가볍게 훌쩍 다녀온다. 그에 비해 나이 든 세대는 엉덩이가 무겁다. 한번 떠나려면 이것저것 재보고 따져볼 게 한둘이 아니다. 그게 다 세월의 무게다. 그러니 모처럼 떠나더라도 출발시각만 맞춰 모이면 모든 것을 다 처리해주는 패키지여행이 안심되고 편하다. 
 
그런데 거기에도 부족한 감은 있다. 꽉 짜인 일정이 피곤스럽고, 일행들과도 어느 정도 관계로 지내야 할지 애매하다. 젊은 세대의 자유 여행이 부럽다. 영어도 잘하고 입맛도 국제화되어 자유롭게 돌아다녀도 아무런 불편이 없을 것 같다. 여기서부터 해외자유여행은 어려운 것이라는 오해가 시작된다.
 
체코 프라하에는 반려견이 일상화 되어 있다. 대중교통이나 거리에서 대형견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입마개나 목줄을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훈련이 잘 되어 짖거나 다른 사람을 따라가는 일이 없다. [사진 박헌정]

체코 프라하에는 반려견이 일상화 되어 있다. 대중교통이나 거리에서 대형견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입마개나 목줄을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훈련이 잘 되어 짖거나 다른 사람을 따라가는 일이 없다. [사진 박헌정]

 
그 첫 번째 문턱이 언어소통에 대한 부담감이다. 페이스북, 밴드, 카페 등 SNS에 해외에 있다는 근황을 알리면 반응은 대개 ‘부럽다’이다. 그 뒤에 따르는 말이 “나도 거기 가봤는데 패키지로 다녀와서. 영어를 잘했더라면 자유롭게 다니며 즐길 수 있었을 텐데….”이다. 영어에 자신이 없어 자유 여행이 어렵다는 이야기인데, 실제 다니면서 내가 본 우리 젊은이들을 보면 대부분 영어 실력이 그렇게 빼어난 것 같지 않았다.
 
영어 실력이 있다 해도 자랑할만한 기회도 별로 없다. 우선 현지인들이 나의 영어 실력에는 관심도 없고 용건만 빨리 알아듣기를 원한다. 접촉 기회도 별로 없다. 30일 동안 유럽을 여행해봐도 장사하는 사람 말고는 현지인과의 친교는커녕 대화할 기회도 별로 없다. 그들도 바쁘다.
 
슬로베니아의 류블랴나에서 숙소 근처 동네를 산책하다가 태권도복을 입은 소녀들을 만나 발칸지역 클럽대항 태권도 대회가 열리는 체육관까지 따라가 보았다. 예상치 않은 이벤트에 휩쓸리는 게 자유여행의 가장 큰 매력일 것 같다. [사진 박헌정]

슬로베니아의 류블랴나에서 숙소 근처 동네를 산책하다가 태권도복을 입은 소녀들을 만나 발칸지역 클럽대항 태권도 대회가 열리는 체육관까지 따라가 보았다. 예상치 않은 이벤트에 휩쓸리는 게 자유여행의 가장 큰 매력일 것 같다. [사진 박헌정]

 
영어를 잘할수록 더 유리한 나라가 많지도 않다. 영어 쓰는 나라 가운데 자유 여행으로 가보고 싶은 곳은 미국, 캐나다, 영국,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 정도 아닐까? 자유 여행이 가장 보편화된 유럽에서 영어는 소통수단으로서의 외국어일 뿐이다. 그래서 오히려 기름지게 혀 굴리는 네이티브 발음이나 정확한 문법은 더 불편할 때가 많다.
 
어차피 자유 여행에서 맞닥뜨릴 곳은 숙소와 가게, 식당, 역이나 터미널 정도다. 핵심에 근접한,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고 익힌 단어 몇 개가 훨씬 더 유용하다. 목이 마르면 ‘워러’가 아니라 자신 있게 큰 소리로 ‘워터, 플리즈!’ 하면 된다. 돌아다니며 느끼는 가장 중요한 소통방식은 말이 아니라 인간의 관습과 생활패턴이다.
 
체코 프라하 테스코에서 3만 원어치 장을 봐 왔다. 삼겹살, 양송이 버섯, 모듬 채소, 빵, 햄, 치즈, 소시지, 달걀, 버터, 마요네즈, 와인, 보드카 등이다. 관광지 물가는 최악이지만 생활 물가는 최고인 곳이 프라하인 것 같다. [사진 박헌정]

체코 프라하 테스코에서 3만 원어치 장을 봐 왔다. 삼겹살, 양송이 버섯, 모듬 채소, 빵, 햄, 치즈, 소시지, 달걀, 버터, 마요네즈, 와인, 보드카 등이다. 관광지 물가는 최악이지만 생활 물가는 최고인 곳이 프라하인 것 같다. [사진 박헌정]

 
버스 터미널에서 돈 내밀면 버스표를 주지, 메뉴판을 주지는 않는다. 우리에게 헷갈리는 길은 그들에게도 헷갈리기 마련이라 표지판이 있다. 국내에서 온종일 돌아다니면서 말 몇 마디 하지 않는 것처럼 해외에서도 말 한마디 없이 하루가 지날 때도 많다. 생활방식이 어느 정도 균일해졌기 때문이다.
 
다음은 음식 때문에 고생할 거라는 걱정이다. 음식이 안 맞아서 패키지여행을 간다고 하는데, 그것 자체가 패키지여행이 낳은 부작용이다. 언뜻 보기에 패키지여행은 고객의 입맛을 가장 배려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이다. 전문가들이 우리 입맛에 맞는 현지 전통음식을 선정하고 아침은 풍성한 호텔 조식, 그리고 간간이 한국 음식까지 균형을 갖춘다.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의 재래시장에서 빙어를 사다가 튀김옷을 입혀 빙어튀김을 만들었다. 보드카와 잘 어울린다. 현지에서도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식재료를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사진 박헌정]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의 재래시장에서 빙어를 사다가 튀김옷을 입혀 빙어튀김을 만들었다. 보드카와 잘 어울린다. 현지에서도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식재료를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사진 박헌정]

 
그런데 이제는 그 패턴에도 질리는 것이다. 늘 같은 호텔 조식, 한국의 맛보다 훨씬 떨어지는 한국음식점, 현지의 전통요리도 현지의 느낌을 가지면서 먹으면 좋을 텐데 여러 사람이 회식하듯 몰려가서 바쁘게 먹고 나오는 분위기. 자유 여행 같으면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는 숙소를 잡아 입맛에 맞는 음식을 여유 있게 해 먹을 수 있고, 경험하고 싶은 현지전통 음식이 있다면 인터넷의 평가를 살펴 맛집을 찾아가면 될 일이다.
 
나의 해외여행 짐은 크게 세 종류다. 카메라, 노트북, 핸드폰이 든 배낭, 옷 가방, 그리고 식료품 가방이다. 이 가운데 식료품 가방의 핵심은 2인용 전기밥통과 새지 않도록 꽁꽁 묶은 김치 한 꾸러미다. 거기에 액젓, 간장, 참기름, 고춧가루, 된장, 고추장, 쌈장 등 양념을 챙기면 아무리 긴 여행이라도 자신 있다. 약간의 밑반찬이나 북어와 미역, 소주와 라면도 챙기면 금상첨화다. 아, 가장 중요한 건 젓가락이다.
 
체코 프라하 테스코의 빵 매장. 빵 매장 면적이 웬만한 동네 슈퍼보다 크다. [사진 박헌정]

체코 프라하 테스코의 빵 매장. 빵 매장 면적이 웬만한 동네 슈퍼보다 크다. [사진 박헌정]

 
여기에 현지 스타일을 섞어 넣어야 하니 현지의 대형마트 탐험에 나선다. 자유 여행이라 가능한 일이다(이때 중요한 것은 돋보기다). 현지 식재료와 한국의 양념이 만나면 ‘불가능은 없다’. 낯선 곳에서 장보기는 무척 재미있다. 
 
가령, 프라하의 테스코 매장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빵이었다. 이들에겐 빵이 주식이니 엄청나게 다양하고 풍부한,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한, 산더미처럼 쌓인 빵들을 보며 신기하고 기가 질리고 재미있고 신났었다. 담백한 빵은 한 개에 백원, 단 것이 잔뜩 들어간 고급 빵도 사오백원, 베개보다 큰 빵이 1,300원이다. 이곳에서 빵 사진을 실컷 찍는 내가 이곳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이들에게 익숙한 것이 이방인에게는 신기한, 그것이 여행이다. 여행의 본질이 낯선 체험 아닌가. 숙소에 돌아오는 길에 쓰레기통 손잡이에 빵이 가득 든 비닐봉지가 걸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내내 아까 본 그 종류의 빵들이다. 어? 며칠 간의 프라하 생활로는 속단하기 힘든 여러 감정과 궁금증이 밀려든다. 패키지여행이라면 가이드에게 즉시 답을 얻었을 그 궁금증이 현지생활 속에서 오래도록 조금씩 녹아가는 것이 바로 자유 여행이다.
 
박헌정 수필가 portugal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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