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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통 늙었으니 형님이…" 45년전 서빙고 특실의 비명소리

1973년 윤필용 전 수도경비사령관 등 10명은 '쿠데타를 모의했다'는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결국 쿠데타는 아니지만 업무상횡령·수뢰 등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중앙포토]

1973년 윤필용 전 수도경비사령관 등 10명은 '쿠데타를 모의했다'는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결국 쿠데타는 아니지만 업무상횡령·수뢰 등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중앙포토]

 
1970년대 '윤필용 사건'으로 강제 전역했던 장교들이 "전역 처분을 취소하라"며 낸 소송에서 줄줄이 이기고 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부장 조미연)는 1973년 중령으로 전역한 박모(82)씨가 국방부장관을 상대로 낸 '전역처분 무효 확인' 소송에서 지난달 26일 원고 승소 판결했다. 지난 2016년 9월 정봉화(79) 전 소령이 처음으로 행정소송에서 이긴 후 송모 전 소령, 황모 전 대령도 같은 소송을 내 이겼고 박 전 중령은 4번째가 된다.
 
1973년 윤필용 당시 수도경비사령관이 술자리에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에게 "박정희 대통령은 노쇠했으니 형님이 후계자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가 쿠데타를 모의한 것으로 몰려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사건이다. 수도경비사령부 참모장, 육군본부 보좌관 등 장성과 장교 10명도 실형을 선고받았고, 측근으로 분류된 하나회 소속 장교 등 31명은 강제로 군복을 벗었다.
 
1973년 4월 육군보통군법회의가 윤필용 전 수도경비사령관 등 10명에 대한 판결문을 낭독하고 있는 모습. 윤 전 사령관은 징역 15년을 선고받았고 2년 뒤 형집행정지로 석방됐다. 이 사건으로 기소된 준장과 대령 등 6명은 재심으로 무죄를 받았다. [중앙포토]

1973년 4월 육군보통군법회의가 윤필용 전 수도경비사령관 등 10명에 대한 판결문을 낭독하고 있는 모습. 윤 전 사령관은 징역 15년을 선고받았고 2년 뒤 형집행정지로 석방됐다. 이 사건으로 기소된 준장과 대령 등 6명은 재심으로 무죄를 받았다. [중앙포토]

 
박 전 중령은 45년 전 그 때를 잊지 못한다. 그는 1968년 베트남 파병 때 윤 전 수도경비사령관과 인연이 있었던 데다 귀국 후에도 수도경비사령부 비서실장으로 일했기 때문에 타깃이 됐다. 박 전 중령은 재판부의 당사자본인신문에서 "(윤필용 사건) 조사가 시작되자 광주 포병학교로 발령이 났고 얼마지 않아 광주 보안대원에 의해 호송돼 항공기를 타고 김포공항으로 들어와 서빙고 분실로 압송됐다"며 그때를 회상했다.
 
박 전 중령은 "잡혀간 첫날 윤필용과의 관계, 하나회 명단 등에 대해 조사를 받았고 다음날 전역지원서를 쓸 것을 요구받았으나 거부하자 욕설과 구타를 당했다"고 진술했다. 22세에 소위로 임관한 그는 1973년 당시 37세의 젊은 중령이었다. 전역하지 않겠다고 버텼다. 그러자 보안사 조사관들은 그를 '특실'이라고 불리는 컴컴한 방으로 데려갔다. 박 전 중령은 "옆방에서는 비명소리와 숨넘어가는 소리가 났다. 결국 공포감에 전역지원서를 쓰게 됐다"고 말했다.
 
당시 수도경비사령부 비서실에서 서기장으로 일했던 최모씨도 이번 재판과정에서 증인으로 나왔다. 최씨는 자신도 서빙고분실에 끌려와 욕설과 구타를 당했다면서 "박 전 중령이 고통 속에 비명을 지르거나 신음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말했다. 최씨는 보안사의 한 장군으로부터 "박 중령도 여기 잡혀 왔는데 견디기 힘들 거다. 군 생활 여기서 끝나지 않나 모르겠다"는 말도 들었다고 했다.
 
재판부는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윤필용 사건과 관련해 체포된 피해자들은 보안사 조사관들로부터 고문 등 가혹행위를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면서 "국방부가 1973년 4월 10일 박 전 중령에게 한 전역처분은 무효다"는 결론을 내렸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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