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서소문 포럼] 보험의 위기, 미래의 위기

나현철 경제연구소 부소장 겸 논설위원

나현철 경제연구소 부소장 겸 논설위원

얼마 전 집안 어르신의 병원비를 정산하다 깜짝 놀랐다. 응급실과 집중치료실, 일반 병실에 일주일 이상 입원해 있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적게 나왔기 때문이다. CT며 MRI도 여러 번 찍었는데 치료비가 100만원 남짓이었다. 수납직원에게 물어보니 “건강보험이 꾸준히 강화돼 예전보다 본인 부담금이 많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암과 뇌졸중 등 4대 중증 질환에 대한 본인 부담률은 최근 10여년 동안 40%에서 20%로 떨어졌다. “보험 하나 안 들었다”며 병원비를 걱정하던 가족들은 “굳이 보험 들 필요 없겠네”라며 안도했다. 또 다른 가족의 치과 비용도 비슷했다. 임플란트 두 개에 인공치아 하나를 시술받았는데 70만원이 안 됐다. 지난 7월부터 65세 이상 어르신의 임플란트 비용 국가 지원이 50%에서 70%로 상향된 덕이었다.
 

시장 포화·고령화로 2016년 이후 역성장
혁신 않고 신뢰까지 잃으면 탈출구 없어

이 얘기를 한 생명보험사 최고경영자(CEO)에게 했다. 그는 “안 그래도 요즘 보험이 안 팔린다”고 푸념했다. 건강보험이 강화되니 질병보험의 메리트가 크게 줄었다는 것이다. 다른 주요 상품들도 막다른 골목에 몰려 있기는 마찬가지라고 했다. 생명보험이 안 팔리기 시작한 건 꽤 오래됐다. 저출산·고령화와 가족관계의 변화로 사망 리스크보다 장수 리스크에 대비하는 게 절박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보험사의 대표적인 장수 리스크 대비 상품인 변액연금보험은 은행이나 증권사의 비슷한 상품보다 경쟁력이 떨어진다. 자산운용사가 떼어가는 수수료에 보험사 수수료를 더 떼다 보니 수익률이 높게 나올 수가 없어서다. 요즘 같은 저금리일수록 그 차이는 더 눈에 띈다.
 
설상가상으로 자산 운용도 사면초가다. 과거 고금리 시절 연 7~8% 확정금리로 팔아놓은 상품들이 역마진을 내고 있다. 그동안 평균 수명이 연장되면서 누려오던 사차익도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게다가 2021년 책임준비금 적립을 크게 늘리는 새로운 국제 회계기준(IFRS17)이 도입될 예정이어서 저축성 보험 팔기가 쉽지 않아졌다. “한 마디로 보장성은 안 팔리고 저축성은 못 파는 상황”이라고 그는 정리했다.
 
이 결과로 나타난 게 보험시장의 축소다. 2016년 203조 원으로 꼭지를 찍은 전체보험사의 수입보험료는 지난해 201조 원으로 꺾였다. 올해엔 더 가파르게 떨어져 200조 원 아래로 내려올 것이 확실시된다. 상반기 은행의 방카슈랑스 판매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 넘게 줄었다. 보험사의 덩치와 수익성이 동반하락하는 이런 상황은 더욱 심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더 큰 문제는 신뢰의 붕괴다. 몇 년간의 자살보험금 사태를 통해 소비자는 보험사 스스로 신줏단지처럼 내세우던 약관을 헌신짝처럼 내버리는 모습을 봤다. 지금은 즉시연금을 두고 보험사와 금융감독원·소비자가 대치 중이다. 다음 차례는 종신보험이 될 거라는 예측이 나온다. 많은 보험 상품이 허술하게 만들어져 불완전 판매됐다는 방증이다. 그런데도 보험사가 자성하고 혁신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지금도 종신보험을 저축성 보험처럼 포장해 팔고, 원가도 안 나오는 TV 보험 판매로 출혈 경쟁을 하고 있다. 심지어 시장의 심판인 금융당국은 물론 국회마저 아랑곳하지 않는다. 얼마전 국감에서 한 보험사 임원이 즉시연금 문제를 두고 대놓고 설전을 벌인게 대표적 사례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보험 강국이다. 전체 가계의 93%가 보험을 들고 있다. 국민 1인당 보험료가 연 377만원으로 세계 평균의 5.4배다. 한 소비자단체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계는 소득의 18%를 보험에 쏟아붓고 있다. 보험의 위기가 보험사에만 한정되지 않을 이유다. 사회 전체의 미래가 불안정해지고 국가의 개입 등 막대한 비용이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저출산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그 위험은 시시각각 커진다. 그 파고를 처음 맞는 건 보험사가 될 수밖에 없다. ‘예정된 위기’를 피해 나가려는 보험업계의 자성과 노력을 언제나 볼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나현철 경제연구소 부소장 겸 논설위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