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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 청춘이 졌다

신성일 1937~2018
2011년 영화배우 신성일씨가 그의 대표작 '맨발의 청춘'을 생각하며 맨발을 내밀고 있다. [중앙포토]

2011년 영화배우 신성일씨가 그의 대표작 '맨발의 청춘'을 생각하며 맨발을 내밀고 있다. [중앙포토]

별 중에도 단연 빛나는 별이었다. 4일 81세로 세상을 떠난 영화배우 신성일(1937~2018)은 한국 영화계에서 첫손 꼽히는 대스타였다.  

맨발의 청춘, 만추, 별들의 고향 …
주연만 500편 한국 영화계 큰 별
1964년 엄앵란과 세기의 결혼식
투병 중에도 영화 ‘소확행’ 준비
엄앵란 “우린 부부 이전에 동지”

 
스크린에서 그는 ‘맨발의 청춘’의 거침없는 청춘이자 숱한 로맨스의 절절한 주인공이었다. ‘만추’에선 특별휴가를 나온 모범수 여성을, ‘별들의 고향’에선 호스티스 여성을 사랑한 남자였다. 생전에 그가 대표작으로 꼽은 이 세 편을 포함해 무려 500여 편의 영화에서 주연으로 활약한 전무후무한 배우다.
 
대구에서 자라 경북고를 나온 그는 신상옥 감독의 영화사 신필름 신인배우 공모에 뽑힌 뒤 1960년 ‘로맨스 빠빠’(감독 신상옥)의 막내아들 역할로 데뷔했다. 2년 뒤 신필름을 나와 유현목 감독의 ‘아낌없이 주련다’에서 6·25 피란 시절을 배경으로 연상의 여인과 사랑에 빠지는 주인공 청년을 연기하며 대중의 주목과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64년 ‘맨발의 청춘’(감독 김기덕)에서 부잣집 딸이자 교양 있는 젊은 여성을 우연히 구하며 사랑에 빠지는 거리의 폭력배를 연기해 청춘의 아이콘, 청춘영화라는 당대 새로운 장르의 대표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신성일·엄앵란이 주연한 ‘맨발의 청춘’. [중앙포토]

신성일·엄앵란이 주연한 ‘맨발의 청춘’.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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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이후에도 70년대 ‘별들의 고향’(감독 이장호), ‘겨울여자’(감독 김호선) 등 한국 영화가 새로운 흥행 기록을 세울 때마다 남자 주인공으로 그 한가운데 있었다. 최인호 소설이 원작인 ‘별들의 고향’에서 “경아, 오랜만에 누워보는군”이란 그의 대사는 장안의 화제였다. 80, 90년대는 물론 2013년 주연을 맡은 ‘야관문’까지 연기활동을 이어갔다.
 
스크린 밖에서도 스타였다. ‘맨발의 청춘’에서도 호흡을 맞춘 두 스타, 신성일·엄앵란의 결혼은 하객만 4000여 명이 몰린 ‘세기의 결혼식’으로 기록됐다. 64년 11월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결혼식에 하객과 팬이 구름떼처럼 몰렸다.  
 
‘혈맥’ ‘안개’ 등 20여 편의 영화를 함께한 김수용 감독은 “사람이 너무 많아 식장에 들어가지도 못했다”며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는 엄앵란씨는 이미 대스타여서 신성일씨가 ‘엄선생님’이라고 불렀다”고 돌이켰다. 그는 “신성일은 온 지구를 통틀어도 그만큼 영화에 정열을 쏟은 배우는 없을 것”이라며 “감성이 발달해 한마디만 하면 알아들었고, 운동을 잘해 몸으로 표현하는 연기도 잘했다”고 말했다.
 
영화평론가 김종원씨는 “작품 편수나 연기생활 연륜에서 세계영화사에 보기 드문 배우”라며 “흔히 두 살 위의 프랑스 배우 알랭 들롱과 비교되는데, 신성일이 대중에게 받은 호응은 절대적이었다. 한국 영화를 이끄는 중심축이었다”고 평가했다. 또 “60년대 청춘영화의 아이콘으로 등극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 영화의 걸작으로 평가되는 일련의 작품에서 그만이 가진 캐릭터를 선보였다”며 정진우 감독의 ‘초우’(1966), 이만희 감독의 ‘만추’(1966), 김수용 감독의 ‘안개’(1967), 이성구 감독의 ‘장군의 수염’(1968) 등을 예로 들었다.
 
62년 ‘아낌없이 주련다’에 아역으로 출연했던 배우 안성기씨는 “‘스타’라는 이름이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분이었다”며 “지금 배우들이 상상할 수 없는 인기를 누렸고, 그 분의 티켓 파워 역시 어마어마했다. 상업적인 영화 틈틈이 ‘장군의 수염’이나 ‘만추’ 같은 작품을 하신 게  인상적이었다”고 짚었다.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은 “한국 영화의 대표적 얼굴이자 한국 영화의 역사 그 자체”라며 “지난해 부산국제 영화제에서 회고전을 할 때 출연작이 너무 많아 상영작을 고르기 힘들었을 정도였다. 내년 한국 영화 100주년을 보지 못하고 가신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지난해 폐암 3기 진단을 받은 그는 올해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도 비교적 건강한 모습을 드러냈으나 이달 초 몸 상태가 급격히 악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북 영천에 한옥을 지어 생활해 온 그는 암투병을 하면서는 전남 화순의 병원에서 지냈다. 이런 와중에도 직접 각색을 맡아 이장호 감독이 연출하는 새 영화(가제 소확행)를 준비해 왔다. 안성기씨는 “내년 5월에 촬영한다며 같이 하자고 하신 말씀이 너무 마음에 남는다”고 했다.
 
2011년 펴낸 회고록 『청춘은 맨발이다』(문학세계사)에선 과거의 혼외 연애 등을 가감 없이 털어놓아 논란과 화제를 부르기도 했다. 생전에 그는 “나는 사랑 없이는 못 산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 왔다” “돈, 권력, 사랑 중 역시 으뜸은 사랑”이라는 말을 남겼다.  
 
부인이자 배우 엄앵란씨와는 별거하되 이혼하지 않고 일종의 동료관계를 유지해 왔다. 엄씨는 이 책에 실은 글에서 “우리는 사랑하는 부부 이전에 동지”라고 표현했고, 빈소에서도 이 말을 거듭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유족은 부인과 1남2녀. 6일 오전 영결식을 갖는다. 장지는 경북 영천. 
 
신성일 뜻 ‘뉴스타 넘버 원’ … 신상옥 감독이 예명 지어줘
영화배우 신성일의 본명은 강신영이다. ‘신성일(申星一)’은 수천 명의 지원자가 몰려든 신필름 신인배우 공모에서 그를 낙점한 신상옥 감독이 지어준 예명이다. ‘뉴스타 넘버 원’이라는 의미다. 이후 그는 아예 본명을 ‘강신성일’로 개명했다. 정치활동에 나선 것이 개명의 계기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81년 11대 총선에서 야당인 한국국민당 후보로 서울에서 처음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이후 선거 과정에서 쓴 비용 때문에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워졌다고 전해진다. 1996년 15대 총선 당시 신한국당 후보로 대구에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3수 끝에 2000년 한나라당 후보로 대구에 출마해 당선돼 16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와 관련해 광고업자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이후남·민경원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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