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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앵란 “대문 밖 남편, 저승서 순두부 같은 여자 만나길”

4일 타계한 배우 신성일은 1960~70년대 충무로의 최고 스타였다. 그와 함께 시대에 방황하던 한국 사회의 청춘도 스크린에 본격적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사진은 ‘맨발의 청춘’. [중앙포토]

4일 타계한 배우 신성일은 1960~70년대 충무로의 최고 스타였다. 그와 함께 시대에 방황하던 한국 사회의 청춘도 스크린에 본격적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사진은 ‘맨발의 청춘’. [중앙포토]

“신성일씨와 나, 우리는 동지야. 남자도 여자도 아니야. 영화하는 동지!”
 

배우 신성일 빈소에 추모의 물결
55년 함께한 엄앵란씨 소회 밝혀
“늘그막에 좀 재밌게 살려 했는데 …”
평생을 영화동지로 지냈던 남편
“수고했다 고맙다 미안하다” 유언

사회 각계 인사 조문 행렬 이어져
최불암 “반짝이는 별이 사라졌다”

4일 고 신성일의 빈소에서 만난 아내이자 배우 엄앵란(82)씨는 두 사람의 관계를 이렇게 말했다. 그는 부부이자 동료 배우로서 신성일의 모습을 묻는 기자들에게 “가정 남자가 아니라 사회 남자”라고 했다. “대문 밖의 남자이지 집안의 남자가 아니야. 뭐든 일에 미쳐가지고 집안은 나한테 다 맡기고 자기는 영화만 하러 다녔어요. 그러니 이런 역할도 소화하고 저런 역할도 소화하고 어려운 시절 히트작 같은 것도 내서 수입 올려 제작자들 살렸지. 그 외에는 신경을 안 썼어요. 집에 늦게 들어와 자고 일찍 나가고. 스케줄이 바쁘니까. 그것밖에 없어. 늘그막에 좀 재밌게 살려고 그랬더니. 이렇게…”.
 
마지막까지 내년 찍을 새 영화를 준비했던 데 대해서는 “영화 물이 뼛속까지 들어가서 아플 때, 까무러쳐 넘어가는 순간에도 이렇게 영화를 사랑하는구나, 이런 사람이 있어 오늘날 화려하고 좋은 한국영화가 나오는 게 아닌가 싶어 정말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만추’. [중앙포토]

‘만추’.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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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전 병원에서 마지막으로 만났다는 그는 딸에게 들은 말을 전했다. “딸 아이가 ‘어머니한테 말씀하실 거 없냐’니까 참 수고하고 고맙다고, 미안하다 그러라고 얘기를 했대요. 역시 그 남자는 사회적인 남자예요. 사람이 존경할만해서 55년을 살았지 흐물흐물하고 능수버들 같은 남자였으면 못 살았어요. ” 남편에게 하고 싶은 말로는 “그저 저승에서 못살게 구는 여자 말고 순두부 같은 여자 만나서 재미있게 손잡고 구름 타고 하늘 타고 밖에 슬슬 놀러 다니라고. 그렇게 얘기하고 싶다”고 했다.
 
두 사람은 별거하면서도 서로를 챙기는 관계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고인이 폐암 3기 진단을 받았을 때 아내 엄앵란씨가 병원비를 내며 “마지막까지 멋지게 살아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별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다 있더라고요. 그때마다 내가 신성일씨와 나는, 우리는 동지야, 남자도 여자도 아니야, 영화하는 동지! 이러니까 끝까지 가야돼. 전진 또 전진. 그렇게 눌러버렸죠.”
 
‘별들의 고향’. 고인이 자신의 3대 영화로 꼽은 작품이다. [중앙포토]

‘별들의 고향’. 고인이 자신의 3대 영화로 꼽은 작품이다. [중앙포토]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빈소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보내온 조화를 비롯해 각계의 조의와 조문이 줄을 이었다.  오석근 한국영화진흥위원장은 “내년이 한국영화 100주년이 되는데 신성일 선생님이 안 계신다는 게 상상이 안 된다”며 “선생님의 의미를 돌아보는 노력을 영화인들과 함께하려 한다”고 말했다. 배우 이순재씨는 “마지막 본 지 오래됐는데 그때는 건강한 로맨스 그레이의 모습이었다”며 “한국영화 획기적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너무 일찍 갔다”고 애도했다. 배우 최불암씨는 “반짝이는 별이 사라졌다”고 추모했다. 그는 “70년대말 스쳐가는 역할을 했을 뿐 작품을 같이 한 적은 없다”며 “신성일 선배님은 저희는 감히 엄두를 못 낸 멜로 주인공이자 굉장히 로맨틱한 존재”라고 했다.
 
엄앵란씨가 4일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남편 신성일씨의 영정 곁에 서 있다. [뉴시스]

엄앵란씨가 4일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남편 신성일씨의 영정 곁에 서 있다. [뉴시스]

‘초우’ 등 20여편의 영화를 함께한 정진우 감독은 “가장 흥행성 있는 스타였고, 가장 잘생긴 남자 청춘배우이고, 가장 불량스러웠던, 불량스럽게 눈 부릅뜨면 사나운 깡패처럼 보이는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 명배우였다”고 돌이켰다. 언론인 출신의 영화평론가 김두호씨는 “쉽게 쓰지 못하던 ‘톱스타’라는 말 자체가 신성일부터 비롯됐다”며 “그에게는 늘 톱스타라는 말이 따라붙었다”고 전했다.
 
선배 배우이자 신영균예술문화재단의 신영균 명예회장은 “배우 활동하며 감독하는 영화에 주연을 맡아달라고 해서 출연한 일도 있다”며 “시상식에 들것에 실려서라도 꼭 참석하겠다고 했는데 안타깝다”고 했다. 고인은 오는 9일 열리는 제8회 아름다운예술인상 시상식에 공로예술인 수상자로 선정돼 있다.
 
이날 빈소에는 배우 김수미·독고영재·문성근·문희·박상원·박정숙·선우용녀·이동준·윤일봉·조인성 등 다양한 세대가 조문했다. 시나리오 작가인 지상학 한국영화인총연합회 회장·이해룡 한국영화인원로회 이사장·김국현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정지영 영화감독·방송인 이상벽씨 등도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장례는 영화인장으로 치러진다. 발인은 6일이다.
 
영화인 신성일이 걸어온 길
1937년 대구 출생. 본명 강신영
1959년 신필름 전속 배우 계약 체결
1960년 ‘로맨스 빠빠’(신상옥 감독)로 데뷔
1962년 ‘아낌없이 주련다’(유현목 감독)로 스타 반열
1964년 ‘맨발의 청춘’(김기덕 감독)으로
23만 관객 동원. 배우 엄앵란과 결혼
1967년 ‘동심초’‘청춘극장’ 등 주연작 51편 출연
1971년 ‘연애교실’로 영화감독 입문
1974년 ‘별들의 고향’(이장호 감독) 46만 관객 동원
1989년 영화제작사 성일시네마트 설립
2000년 강신성일로 개명. 제16대 국회의원 당선
2013년 ‘야관문: 욕망의 꽃’(임경수 감독) 출연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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