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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의 태왕' 신성일, 별들의 고향으로 돌아가다

배우 신성일이 지난달 4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에서 열린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에 참석해 레드카펫을 밟고 있다. [뉴스1]

배우 신성일이 지난달 4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에서 열린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에 참석해 레드카펫을 밟고 있다. [뉴스1]

‘국민배우’ 신성일이 4일 오전 2시30분 폐암으로 타계했다. 81세.

신성일 측 관계자는 “한국영화배우협회 명예이사장이신 영화배우 신성일께서 4일 오전 2시 반 별세하셨다”고 밝혔다.

고인은 지난해 6월 폐암 3기 판정을 받은 후 전남에 위치한 한 의료기관에서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받아왔으나 이날 끝내 숨을 거뒀다.

본명은 강신영이었으나 고(故) 신상옥 감독이 지어준 예명 ‘신성일’을 주로 사용했으며, 이후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앞두고 ‘강신성일’로 개명했다.

고인은 1960∼1970년대 최고 인기를 누린 배우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고인은 투병 중에도 각종 방송 프로그램과 지난달 열린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하며 활동을 쉬지 않았다. 이는 고인의 생전 마지막 공식 활동이기도 하다. 그는 부산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해 이장호 감독, 배우 손숙과 함께 밝은 표정으로 레드 카펫을 밟았다.

신성일은 1937년 대구시에서 태어났다. 경북 중ㆍ고교, 건국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60년 ‘로맨스 빠빠’로 데뷔한 뒤 60~70년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간판 남자배우로 영화사에 남을 많은 기록을 세웠다. 주연한 영화가 506편, 그의 상대역으로 출연한 여배우가 118명에 달한다. 그가 스타덤에 오른 64년 작 ‘맨발의 청춘’은 당시로서는 대기록인 23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때 대구 동구에서 금배지를 달았다. 

유족으로 부인 엄앵란 씨와 장남 석현ㆍ장녀 경아ㆍ차녀 수화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4호실에 마련됐다.

신성일은 중앙일보에 지난 2011년 4월 25일부터 11월 4일까지 ‘남기고 싶은 이야기 제128화-청춘은 맨발이다’를 연재했다.

한영혜 기자 han.youngh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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