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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발해사 왜곡하려는 중국

28일 이후 한.일 양국의 주요 언론에는 중국이 일본에 발해 '석비'인 '홍려정비(鴻井碑)'의 반환을 요구했다는 내용이 보도됐다. 이 비석은 중국의 랴오닝(遼寧)성 뤼순(旅順)시에 있었으나 러일전쟁으로 이곳을 점령한 일본군이 1908년 전리품으로 들고 가 일왕에게 바쳤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홍려정비'가 무엇이기에 중국의 민관이 열성적으로 반환에 매달리고 있을까. 그것은 바로 비문의 내용 때문이다. 비문에는 "칙지절선로말갈사(勅持節宣勞靺鞨使) 홍려경최흔정량구영위(鴻卿崔井兩口永爲) 기험개원이년오월십팔일(記驗開元二年五月十八日)"이라고 기록돼 있다. 당시의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설명하면 '칙지절선로말갈사 홍려경'이라는 직함을 가진 당나라의 관리 최흔이 713년 발해국에 사신으로 갔다가, 그 이듬해인 개원 2년(714년) 귀국하던 중 오늘날 뤼순의 황금산 기슭에 두 개의 우물을 파고,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 비석을 세웠다는 것이다.

현재 중국 측이 모두 29자에 불과한 이 비석의 반환을 강하게 요구하는 이유 중 하나는 중국 정부 차원에서 2002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동북공정'상의 발해사 왜곡에 적극 활용하려는 것으로 짐작된다. 중국은 발해를 국가가 아닌 '당나라 시기 하나의 지방정권'이라 규정하고, 이러한 논리를 펴는 데 홍려정비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첫째, 중국 학계는 최흔의 직함에 있는 '말갈'이 발해의 국호라고 한다. 그러나 '말갈'은 최흔이 방문한 발해의 수도(오늘날 지린성 둔화시)가 말갈족이 많이 거주하던 지역이라는 의미이지, 발해의 국호는 아니었다. 발해인이 처음부터 국호를 스스로 '진국'(震國 혹은 振國으로 표기)이라고 했다는 것은 중국 측의 기록인 '신당서'와 '구당서'의 발해전뿐 아니라 '책부원귀'에도 언급돼 있다.

둘째, 최흔의 직함에 있는 '말갈'은 발해의 주체민족이 말갈족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중국 학계는 해석하기도 한다. 발해에 관한 중요한 기록이 있는 '구당서' 발해전의 편명이 '발해말갈'이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발해의 주민에 말갈인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발해 사료 중 건국자인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이고, 건국 과정에 다수의 고구려 유민이 참여했다는 기록도 엄연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학계가 고구려 유민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고 발해의 건국자나 주민이 말갈인이라고만 하는 것은 중국 측의 편향된 역사 해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셋째, 홍려정비에서 최흔이 등장함으로써 그가 발해에 가서 대조영을 '발해군왕'으로 책봉했다는 기록이 사실이라는 것이 입증됐으며, 그 결과 발해가 당나라의 지방정권이라고 중국 학계는 주장한다. 그러나 발해가 당의 책봉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독자적인 연호, 전왕에 대한 시호, 황제 칭호 등을 사용했다는 것은 당나라도 익히 알고 있었다. 무왕 때에는 당 황제의 잘못을 질책하고, 심지어 당의 본토를 공격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사실은 당나라의 지방정권이라는 중국 측의 주장과 달리 발해가 자주적이며 독립적인 국가였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중국이 홍려정비의 반환을 통해 노리는 속셈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중국 지린(吉林)성 사회과학원에서 발행하는 잡지인 '동북사지(東北史地)'는 동북공정의 핵심 인물인 마다정(馬大正)이 참여하고 있는데, 최신호에 실린 발해 논문명이 바로 "발해 국호 최초의 칭호인 '말갈' 고찰"이다. 중국 당국이 발해 유적을 정비, 2007년을 전후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할 것이라는 점도 중국의 동북공정이 중지 혹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며 방심할 수 없는 이유이다. 우리의 관점에서 북방 지역의 역사.문화적 실체를 체계적으로 규명하는 노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임상선 고구려연구재단 발해사연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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