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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 후반에 찾아온 치매, 또 다른 나를 만나다

책 속으로 
내가 알던 그 사람

내가 알던 그 사람

내가 알던 그 사람
웬디 미첼·아나 와튼 지음
공경희 옮김, 소소의책
 
책 마지막의 ‘옮기고 나서’(역자 후기)를 읽은 뒤 책장을 덮었다. 노트북을 켜고 인터넷 검색창에 ‘치매’라고 입력했다. 그 두 글자 속에 담긴 것들이 짓누르는 압력을 실제로 느낄 수 있을 사람이 주변에 얼마나 될까. 고백하자면 나는 잘 몰랐다. 몇몇 지인으로부터 가족 친지 중에 치매 환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 전까지는 내 일이, 내 가족 일이 아니었기에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쳤다.
 
화면에 검색 결과가 쭉 떴다. 그중에서 ‘중앙치매센터’를 클릭해 들어갔다. ‘치매 오늘은’이라는 제목의 팝업창이 떴다. 72만4857명. 지난해 기준 국내 치매 환자 수다. 책을 읽기 전이었다면 의미를 헤아리기 힘든, 그냥 숫자에 불과했을 텐데. 책을 읽는 내내 시선을 치매 환자인 저자 웬디 미첼(62)에게 맞췄다. 치매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의 두 딸 새러·젬마 그리고 이웃의 삶에까지 깊은 흔적을 남긴다. 환자는 72만명이지만, 그 흔적은 720만명, 어쩌면 그 이상에까지 남는다는 얘기다.
 
웬디는 남편과 이혼한 뒤 두 딸을 홀로 키워온 싱글맘이다. 이혼 뒤 청소일 등으로 생계를 이어갔고, 30대 중반부터 여러 병원과 NHS(영국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근무했다. 58세였던 2014년 그는 조깅 도중 넘어지는 사고를 당한다. 그것도 세 차례나. 그는 치매가 찾아온 초기 증세를 “머리의 반에 목화솜이 든 느낌이 수 개월씩 지속되었다”(16쪽)고 소개했다.
 
알츠하이머병 환자가 그려낸 인생. 보통 사람들 그림과 같이 삶의 희로애락이 그대로 담겨 있다. [사진 주디스 칼린]

알츠하이머병 환자가 그려낸 인생. 보통 사람들 그림과 같이 삶의 희로애락이 그대로 담겨 있다. [사진 주디스 칼린]

처음엔 뇌졸중 진단으로 생각했으나, 각종 정밀검사를 통해 초기 치매(알츠하이머병) 판정을 받는다. 낯설고 당황스러운 상황이 생기고 두려움이 엄습한다. 누군들 그렇지 않겠나. 그런데 그는 포기하거나 좌절하는 대신 치매와 맞서 싸우기로 결심한다. 그 일환으로 그는 치매(환자)에 대한 선입관과 오해를 바꾸기 위한 각종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치료 약 임상시험을 자원하고, 대중 강연과 블로깅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선다.
 
물론 그런 부류의 무용담만을 늘어놓는 책은 아니다. 병세는 하루하루가 다르게 나빠진다. 두 딸이 있지만, 함께 살지 않는 그는 혼자서 일상을 해결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낸다. 조금 전 일조차 돌아서면 기억나지 않는 상황이 잦아진다. 그는 포스트잇에 순간순간 했던 일을, 또 해야 할 일을 적어 곳곳에 붙여놓는다. 또 해야 할 일은 사소한 것조차 잊어도 다시 알 수 있도록 아이패드 알람 앱을 설정해 자신에게 통보한다. 이처럼 그는 좌절할 위기마다 해결 방안을 마련한다.
 
책에는 웬디가 치매에도 장점이 있다며 이를 소개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는 “봤던 영화를 보고 또 봐도 새롭다는 점, TV에서 경연 프로그램 반복해서 봐도 우승자를 모르는 점 등”(121쪽)을 치매의 장점으로 꼽았다. 애잔한 마음이 들면서도 엷은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그를 보면서 세상이 얼마나 치매(환자)에 대해 왜곡된 시선으로 오해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이와 관련해 그는 “(치매에) ‘시달린다’ 대신 (치매를) ‘안고 산다’로 바꿀 수 있다”면서 “늘 ‘치매에 시달리는 사람들’이라고 지칭하는 미디어 역시 도움이 안 된다”(185쪽)고 지적한다.
 
책은 웬디와 기자 출신의 논픽션 작가인 아나 와튼이 함께 썼다. 아나의 아버지도 치매 환자였다고 한다. 두 사람의 합작품이지만, 한 사람의 목소리로 읽는데 어색함이 없다.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웬디의 1인칭 시점으로 서술하고 있다. 다만 중간중간 지금의 웬디가 과거의 웬디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대목이 반복해서 나온다.  
 
이 책의 제목인 『내(지금의 웬디)가 알던 그 사람(과거의 웬디)』은, 치매로 인해 다른 사람처럼 변했지만, 사실은 한 사람이란 걸 역설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또 하나, 공경희 씨의 미끄러운 번역 덕분에 조금은 이질적일 수 있는 이국 배경의 이야기를 내 이웃의 이야기로 읽을 수 있었다.
 
장혜수 기자 hsc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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