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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위한 공간이 왜 여성휴게실?…남자는 육아 못하나요

서울시청역 지하에 있는 여성휴게실의 간판. 이태윤 기자

서울시청역 지하에 있는 여성휴게실의 간판. 이태윤 기자

“육아를 위한 공간이 왜 여성휴게실인가요?”
 
지난 10월 서울 석계동에 사는 윤구현(33)씨는 돌이 조금 지난 아들과 함께 서울시청 광장으로 나들이를 나왔다. 행복한 아들과의 시간은 갑자기 터진 아이의 울음으로 끝이 났다. 한 번 터진 울음은 멈추지 않았다. ‘배가 고픈가’‘기저귀를 갈아야 하나’ 윤 씨 머릿속에는 갖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지하철마다 육아를 위한 공간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 그는 아이를 안고 시청역으로 달렸다.
 
겨우 육아를 위한 공간을 찾았지만, 간판이 윤 씨를 좌절케 했다. 간판에는 ‘여성휴게실’이라고 적혀있었다. 문 앞에는 “이곳은 여성 여러분의 유아 수유 및 휴식을 위한 공간입니다”라는 안내 문구도 붙어있었다. 윤 씨는“수유는 모유 수유만 있는 것도 아니고 여자만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며 “육아가 여성의 일이라는 편견을 공공기관에서 확산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시청역 지하에 있는 여성휴게실 문 앞에 "이곳은 여성 여러분의 공간"이라는 안내가 적혀있다. 이태윤 기자

서울시청역 지하에 있는 여성휴게실 문 앞에 "이곳은 여성 여러분의 공간"이라는 안내가 적혀있다. 이태윤 기자

아이와 함께 외출할 경우 갑자기 아이가 울거나 기저귀를 갈아야 하는 ‘긴급’ 상황은 예상치 못하게 터진다. 이때 부모들에게 육아를 위한 공간은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만큼 반가운 곳이다. 하지만 이 공간이 “육아는 곧 여자의 일”이라는 편견을 확산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청역 지하에 있는 또 다른 수유실. 세움간판에 "아기랑 엄마랑"이라는 문구와 함께 여성이 아이를 안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태윤 기자

서울시청역 지하에 있는 또 다른 수유실. 세움간판에 "아기랑 엄마랑"이라는 문구와 함께 여성이 아이를 안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태윤 기자

서울 자양동에 사는 이일현(33)씨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다. 아이와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던 이 씨는 배고프다며 짜증을 내는 아들을 위해 수유실을 찾았다. 하지만 수유실 앞에 세움 간판이 그를 막았다. 거기에는 엄마가 아이를 안고 있는 그림이 있었다. “아기랑 엄마랑 수유실”이라는 글씨도 크게 적혀 있었다. 
 
맨 아래 작은 글씨로 “육아 남성 출입가능”이라는 안내도 있었지만 이미 거절당한 기분이 들었다. 이 씨는“굳이 아이랑 ‘엄마랑’이라고 적어 놓은 이유가 궁금하다”며 “서울시에서 온 마을 돌봄을 강조하고 있는데 그 마을에는 아빠가 없나 보다”라고 말했다.
 
KTX 내부에 있는 수유실 표시판 [온라인 캡처]

KTX 내부에 있는 수유실 표시판 [온라인 캡처]

성 역할 고정관념이 담긴 표시판은 이뿐만이 아니다. KTX 열차 내 수유실 표시판을 보면 치마를 입은 사람이 기저귀를 갈고 있다. 인천 검암동에 사는 안종환(34) 씨는“KTX를 이용하다가 표시판을 보고 의아함이 들었다. 치마를 입지 않아도 기저귀는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 통계에 따르면 지하철 92곳, 공공청사 563곳에 수유실이 마련돼 있다. 하지만 몇 곳에서 성차별적 간판이나 표시판을 쓰는지 등 현황 파악은 없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에서는 이 공간들을 ‘수유실’로 관리하고 있고 여성휴게실인지 수유실인지 육아 휴게실인지 등 명칭은 따로 통계 관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성역할 편견 퍼뜨리는 명칭 개선해야 
 
전문가들은 조속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황명진 고려대 사회복지학 교수는 “국내 백화점에는 남자를 아예 허용하지 않는 수유실도 있다”며 “육아를 위한 공간에 ‘여성전용’이라는 이름을 붙인다면 여성이 육아를 전담하는 규범이 유지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표시판도 아빠와 엄마가 동시에 있는 그림으로 바꿔 육아는 부부 모두의 일이라는 점을 사회적 차원에서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단순히 간판, 그림만 바꾸는 게 아니라 수유실 위주로 구성된 육아 공간을 넓히고 개선하기 위한 정책이나 재원마련도 동반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태윤 기자 lee.tae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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