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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적 구애, 비뚤어진 분노…상사뱀과 이별살인의 파국

기자
권도영 사진 권도영
[더,오래] 권도영의 구비구비 옛이야기(19)
최근 부산서 일가족 4명을 살해한 용의자 신모(32)씨의 모습. 이 남성은 숨진 손녀의 전 남자친구로 밝혀졌다. 이런 부류의 사건에 '이별 살인'이라는 이름표도 붙었다. [사진 부산경찰청]

최근 부산서 일가족 4명을 살해한 용의자 신모(32)씨의 모습. 이 남성은 숨진 손녀의 전 남자친구로 밝혀졌다. 이런 부류의 사건에 '이별 살인'이라는 이름표도 붙었다. [사진 부산경찰청]

 
최근 부산서 할머니부터 손녀까지 일가족 네 명이 살해된 사건이 있었다. 유력한 용의자인 30대 남성도 함께 숨진 채 발견됐는데, 확인 결과 이 남성은 숨진 손녀의 전 남자친구라고 한다. 이 남성은 50개 넘는 범행도구를 준비하는 등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했다고 한다.
 
이혼한 전처와 딸들을 따라다니며 괴롭히다 전처를 살해한 후 심신미약 상태였음을 주장하는 전남편의 사건도 있다. 이 남성은 심신미약으로 인정받으면 살인을 해도 6개월 정도 살고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일부러 우울증 치료를 받으며 기록을 남겨 놓기도 했다. 한 걸그룹의 멤버도 전 남자친구의 칼부림에 목숨을 잃었다. 칼에 찔린 상처가 60군데나 된다고 하는데, 헤어짐에 대한 대가가 죽음인 셈이다.
 
이런 부류의 사건에 ‘이별 살인’이라는 이름표도 붙었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심하게 해코지를 하는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분석이 나왔다. 남성에게 상대적으로 더 강하게 박혀 있는 가부장적인 인식과 성적 본능에 따라서 여성의 자율권을 인정하지 않고 여전히 자신에게 속해 있는 존재로 여긴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투자 대비 효과를 따지기도 하고, 상대적으로 연애 초반에 강한 열정을 보인 남성일수록 더욱 헤어진 이후를 감당하지 못하는 면도 있다고 한다.
 
사회적 지위를 안정적으로 갖춘 남성은 만나는 여성이 자신을 떠나가더라도 새로운 여성을 만나거나 연애를 대체할 만한 취미생활을 가질 수 있는 여유가 있다. 반면 그런 배경을 갖지 못한 남성은 헤어짐 이후 열등감이 더욱 깊어지면서 그것이 상대에 대한 극단적 분노로 바뀔 수 있다.
 
상대방과 경제적 사회적 격차가 존재할 경우 더욱 공격적인 분노가 발생하게 된다. 걸그룹 멤버를 살해한 남성의 경우가 바로 이런 사례다. 중고차매매업소 종업원인 이 남성은 이별 통보를 받자 자신이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 이런 일을 당한다고 생각해 살해를 결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뒤틀린 욕망의 화신 상사뱀
이쯤에서 상사뱀을 또다시 소환하지 않을 수가 없다. 참 종류도 많은 게 상사 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욕망이 뒤틀려 본인도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는 분노의 화신이 상사뱀이다. 지금 소개하는 이야기에서는 여성이 남성에게 욕망을 품었다가 상사 뱀이 되지만, 남성과 여성의 위치를 바꾸어 놓는다고 해도 이야기가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일전에 소개한 청평사 전설도 공주를 사모한 목수가 상사 뱀이 돼 공주에게 들러붙은 경우였다. 결국 상사뱀만 벌을 받고 끝났는데, 지금 소개할 이야기에서는 자신을 무시한 상대 이성의 온 집안을 멸망시키며 극도의 분노를 보인다. 위에 소개한 사건들은 결국 이러한 서사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상사병에 걸려 앓던 월이는 자신에게 손도 대지 않는 조월천을 보고 저 사람이 양반이어서 내 몸에는 손도 대기 싫어 저러나 싶어 슬퍼하다 상사뱀이 되어버렸다. [이미지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컬처링 www.culturing.kr]

상사병에 걸려 앓던 월이는 자신에게 손도 대지 않는 조월천을 보고 저 사람이 양반이어서 내 몸에는 손도 대기 싫어 저러나 싶어 슬퍼하다 상사뱀이 되어버렸다. [이미지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컬처링 www.culturing.kr]

 
예전에 조월천이라는 선비가 있었다. 이 선비가 글공부하러 서당에 다니던 길목에 그 고을 이방의 집이 있었다. 이방의 딸 월이는 매일 같은 시간에 집 앞을 오가던 조월천을 담장 너머로 보고는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월이는 편지를 써 돌멩이에 묶어 조월천이 지나가는 앞에 떨어뜨렸다. 그러고는 숨죽여 담장 안에서 지켜보고 있는데, 조월천은 그 편지를 집어 읽고 나서는 그 자리에서 찢어버리고 가던 길을 갔다.
 
그 모습을 본 월이는 그만 상사병이 나서 앓아누웠고, 딸의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지경에 이른 것을 보다 못한 이방이 조월천에게 월이를 한 번만 만나 달라고 사정했다. 그러나 조월천은 이를 무시했다.
 
어느 날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는 바람에 비를 피하려 이방 집에 들어가게 됐다. 이방이 진수성찬을 마련하고 대접을 잘 한 뒤 아픈 월이를 한 번 어루만져주기라도 해 달라고 또다시 사정했다. 조월천이 억지로 발을 떼어 월이의 방에 들어가긴 했지만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얼른 그 자리를 뜨고 싶은 마음뿐이었기에 온몸에 땀이 흥건한 채 숨을 헐떡이는 월이를 보고 손에 수건을 감은 채 월이의 얼굴을 대충 한 번 쓱 건드리고는 방에서 나와 버렸다. 월이는 저 사람이 양반이어서 내 몸에는 손도 대기 싫어 저러 싶어 슬퍼하다 그만 상사뱀이 돼 버렸다.
 
다음날 조월천이 글 배우러 갔는데, 스승의 눈에 조월천의 뒤를 따라오는 뱀이 보였다. 스승이 호통을 크게 치니 뱀은 물러났지만, 그 이후에도 계속해 뱀이 따라오는 것을 보고 뱀을 잡아 붓 대롱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걸 조월천에게 주면서 절대 뚜껑을 열지 말고 잘 간수하라고 일렀다. 그런데 조월천의 동생이 호기심에 뚜껑을 열었더니 상사뱀이 튀어나와 조월천의 형제들을 모두 감아 죽이고 조월천도 죽였다. 그 일로 조월천의 집안은 멸족을 당했다.
 
월이는 자신이 조월천보다 신분이 낮아 무시를 당했다고 여겼고, 여기에 분노해 상사뱀이 됐다. 아울러 공격성을 극단적으로 발휘해 자신에게 직접 상처를 준 조월천뿐만 아니라 그 가족들까지 모두 멸망에 이르게 했다.
 
‘첫날밤에 소박맞은 신부’라는 제목으로 전승되는 이야기에서는 첫날밤에 신랑이 도망가 버리자 홀로 남은 신부가 원삼 족두리 입은 모습 그대로 굳어 버린 채 밤마다 귀곡성을 울려 온 고을이 망할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무시당함에 대한 분노는 그렇게 엄청난 에너지를 가지고 공격성으로 발휘되기에 더 무서운 것이다.
 
상사뱀 이야기와 ‘이별 살인’의 닮은 점
일방적인 애정과 무시와 분노의 감정이 오간 결과 서사는 대부분 파국에 이른다. '조월천과 상사뱀'의 서사와 이별 살인의 닮은 점으로 볼 수 있다. [중앙포토]

일방적인 애정과 무시와 분노의 감정이 오간 결과 서사는 대부분 파국에 이른다. '조월천과 상사뱀'의 서사와 이별 살인의 닮은 점으로 볼 수 있다. [중앙포토]

 
그렇다고 사람을 함부로 무시하지 말자, 이런 계도적인 언사를 늘어놓으려는 것은 아니다. 물론 조월천은 경솔했다. 분노를 잘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 이런 주장만으로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월이는 자기감정에 휘말려 주체적인 삶을 살지 못했다. 다만 두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이 끌어온 결과가 조월천 집안의 멸문지화(滅門之禍)라는 점을 기억하자. 이야기의 겉에 표현돼 있지 않지만 이야기의 인과로 따져 보았을 때 월이의 집안 역시 온전할 리 없다.
 
즉 일방적인 애정과 무시와 분노의 감정이 오간 결과 서사는 파국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인간과 인간의 삶을 이해하고자 하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 ‘조월천과 상사뱀’의 서사는 앞서 언급했던 이별 살인과 같은 사태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한다. 서사를 접하는 독자의 입장에서, 어느 한쪽 편에 대해서만 감정을 터뜨려내는 것은 또한 분열과 파국을 이끌 뿐이다.
 
권도영 건국대학교 서사와문학치료연구소 초빙교수 irhet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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