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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사진관]’철의 여인’ 이도연, 다음 목표는 도쿄 패럴림픽 금

이도연은 하반신 장애 핸드 사이클 선수다. 핸드 사이클은 누워서 다리를 고정한 채 두 팔로만 페달을 돌리는 자전거다. 이 선수는 열아홉에 낙상사고를 당했다. 네 차례 큰 수술을 겪었고 거동이 불편해 서른 중반까지 집 안에만 머물렀다. 장애인은 할 수 있는 게 없는 줄 알고 살았다. 
핸드 사이클 이도연 선수를 지난 25일 전라북도 정읍시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이 장소에서 26일부터 29일까지 제38회 전국 장애인체전 핸드 사이클 경기가 열렸다. 장진영 기자

핸드 사이클 이도연 선수를 지난 25일 전라북도 정읍시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이 장소에서 26일부터 29일까지 제38회 전국 장애인체전 핸드 사이클 경기가 열렸다. 장진영 기자

 
어머니의 권유로 장애인 복지관에서 운동을 시작했다. 배드민턴과 탁구를 하면서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바로 육상 종목에 도전했다. 휠체어에 앉아 원반과 창 던지기를 했다. 전국 장애인체전에 출전해 메달도 거머쥐었다. 비장애인 시절 열심히 했던 운동의 즐거움이 살아났다. 재활수준의 운동이 아니라 그 이상의 성과를 내고 싶었다. 막연하게 국가대표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이 선수는 하반신 장애인용으로 개조된 차량을 직접 운전해 이곳까지 왔다. 이 선수가 트렁크에서 핸드 사이클을 꺼내고 있다. 장진영 기자

이 선수는 하반신 장애인용으로 개조된 차량을 직접 운전해 이곳까지 왔다. 이 선수가 트렁크에서 핸드 사이클을 꺼내고 있다. 장진영 기자

주행 연습 전 장비를 착용중인 이 선수. 장진영 기자

주행 연습 전 장비를 착용중인 이 선수. 장진영 기자

 
다음날 진행될 경기에 대비해 도로 주행중이다. 장진영 기자

다음날 진행될 경기에 대비해 도로 주행중이다. 장진영 기자

그러던 어느 날 핸드 사이클이 타고 싶었다. 경험해본 적은 없지만, 왠지 잘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어려운 살림에도 어머니가 1500만원의 고액 자전거를 선뜻 사주셨다. 딸이 세상 밖으로 나가는 통로라 생각하셨으리라. 일주일 탔는데 너무 힘들었다. 어머니는 “힘들면 바로 그만둬도 된다. 자전거값 생각해서 네 몸이 상하는 거 보고 싶지 않다. 내겐 네가 더 소중하다”라고 말씀하셨다.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끓어올라 절대 그만두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때부터 이 선수는 지독한 연습벌레가 됐다.  
연습 중인 이 선수. 장진영 기자

연습 중인 이 선수. 장진영 기자

이 선수는 이번 대회에서 개인독주 20km 이내, 개인도로 60km 이내, 혼성 도로 릴레이 10km 부문에 출전했다. 장진영 기자

이 선수는 이번 대회에서 개인독주 20km 이내, 개인도로 60km 이내, 혼성 도로 릴레이 10km 부문에 출전했다. 장진영 기자

 
2013년 7월 핸드 사이클 국가대표팀을 이끄는 전대홍 감독에게 무작정 연락해 연습에 끼워 달라고 했다. 매일 익산에서 연습장소인 순창을 오가며 국가대표팀과 같이 연습했다. 이듬해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았다.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남·여를 통틀어 5위를 기록했다.  
 
핸드 사이클은 높이가 낮아 도로 주행에 위험이 따른다. 운전자들의 식별을 위해 높은 깃발을 달고 주행한다. 장진영 기자

핸드 사이클은 높이가 낮아 도로 주행에 위험이 따른다. 운전자들의 식별을 위해 높은 깃발을 달고 주행한다. 장진영 기자

핸드 사이클에 몸을 고정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핸드 사이클에 몸을 고정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발은 앞 바퀴 양 옆에 고정하고 주행한다. 장진영 기자

발은 앞 바퀴 양 옆에 고정하고 주행한다. 장진영 기자

2015년 4월 이탈리아 세계선수권 대회에 출전했다. 첫 국제대회였다. 페달 돌리는 건 자신 있었지만 코너링이 미숙했다.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반환점을 돌았다. 코너링 실수 때문에 눈물이 흘렀다. 완주하자 감독님이 다가와서 1등이라고 알려줬다. 첫 국제대회에서 딴 금메달이었다. 다음날 50km 독주에서 마지막 한 바퀴를 남기고 벽에 부딪혔다. 페달 한쪽이 날아가고 손목에 금이 갔다.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한쪽 팔로만 페달을 돌려 완주했다. 관중들의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이 선수가 주행연습중에 반환점을 돌고 있다. 장진영 기자

이 선수가 주행연습중에 반환점을 돌고 있다. 장진영 기자

 
이후 미국·벨기에 등 여러 국제대회에 출전했다. 출전은 수상으로 이어졌다. 이 선수 본인도 총 몇 개의 메달을 땄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달리는 것이 선수가 할 도리”라 말했다.  
 
주행 중 수신호를 보내고 있다. 장진영 기자

주행 중 수신호를 보내고 있다. 장진영 기자

 
2016년 9월 리우데자네이루 패럴림픽에 출전했다. 이 선수는 H4 등급인데 보다 경증인 H5(핸드 사이클은 장애 정도에 따라 등급이 나뉜다. H1부터 H5까지 총 5개로 숫자가 작을수록 중증에 해당한다) 그룹과 통합으로 경기가 진행됐다. 상태가 더 나은 선수들과 경쟁 해야 했기에 불리했다. 마지막 1km를 남기고 4위로 달리고 있었다. “패럴림픽에서 3등과 4등은 엄청난 차이가 있어요. 죽을 힘을 다해 한 명을 제쳤어요. 골인 100m 전에 유턴해야 했는데 코너링에 승부수를 걸었죠. 뒷 선수와 바퀴 하나 차이로 들어왔어요” 이 선수는 리우 패럴림픽에서 은메달을 땄다.  
지난 26일 열린 개인독주 20km 이내 부문에서 출발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이 선수 뒤는 전대홍 감독. 장진영 기자

지난 26일 열린 개인독주 20km 이내 부문에서 출발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이 선수 뒤는 전대홍 감독. 장진영 기자

경기 시작전 숨을 고르고 있다. 장진영 기자

경기 시작전 숨을 고르고 있다. 장진영 기자

 
 
리우 패럴림픽을 마치고 전환점이 찾아왔다. 핸드 사이클과 노르딕 스키 종목을 같이 하는 신의현 선수의 권유로 노르딕 스키에 입문했다. ‘자전거 잘 타다 온 사람’이라는 말이 무임승차한 것처럼 느껴져 배우는 자세로 열심히 연습했다. 2017 평창 겨울 패럴림픽에서 이 선수는 노르딕 출전 선수 중에 나이가 가장 많았다. 다른 선수들은 실업팀 소속인 데 비해 홀로 개인 자격으로 출전했다. 메달을 따지는 못했지만, 노르딕 스키 7개 부문을 완주했다. “같은 장애인들에게  할 수 있다는 증거가 되고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동계 종목에 도전한거구요. 늦은 나이에 운동을 시작해 먼 길을 돌아왔지만 내가 경험한 것들을 최대한 나눠주고 싶어요. 물리적으로는 힘들어도 정신적으로 도움이 되고 싶어요”
익산공설운동장은 육상 선수로 활동하던 시절 많은 경기를 치뤘던 곳이다. 개막식에 있을 성황봉송 리허설을 기다리고 있다. 장진영 기자

익산공설운동장은 육상 선수로 활동하던 시절 많은 경기를 치뤘던 곳이다. 개막식에 있을 성황봉송 리허설을 기다리고 있다. 장진영 기자

이 선수는 목발을 짚고 설 수는 있지만 보행이 불안해 주로 휠체어를 이용한다. 장진영 기자

이 선수는 목발을 짚고 설 수는 있지만 보행이 불안해 주로 휠체어를 이용한다. 장진영 기자

 
평창 패럴림픽을 마치고 바로 2018 인도네시아 아시안 패러 게임을 준비했다. 그러나 대회에 핸드 사이클 종목이 없어 출전 자체가 불투명했다. 권기현 전 핸드 사이클 연맹 회장의 노력으로 후에 종목이 확정됐다. 무더위와 싸우며 2관왕에 올랐다. 인도네시아 귀국 직후 열린 전국 장애인체전에서는 도로, 독주, 혼성 릴레이에서 3개의 금메달을 땄다.  
 
지난 25일 진행된 전국 장애인체전 개막식에서 정현율 익산 시장과 성화봉송을 하고 있다. [사진 대한장애인체육회]

지난 25일 진행된 전국 장애인체전 개막식에서 정현율 익산 시장과 성화봉송을 하고 있다. [사진 대한장애인체육회]

 
‘출전=금메달’이 당연한 공식은 아니다. 소속 실업팀이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매일 익산과 순창을 오가며 도로주행 연습을 한다. 도로에 나갈 수 없는 날에는 마당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페달을 돌린다. “체계적인 훈련은 꿈도 못 꿔요. 매일 운동해야 하는데 경제적으로도 힘들구요. 핸드 사이클 실업팀이 생겨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지난달 25일부터 29일까지 열린 전국 장애인체전에 출전한 핸드 사이클 선수 중 실업팀 소속 선수는 단 한 명도 없다.  
 
이도연 선수는 2020 도쿄 패럴림픽에서 꼭 금메달을 따고 싶다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이도연 선수는 2020 도쿄 패럴림픽에서 꼭 금메달을 따고 싶다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올해 마흔 여섯살의 이 선수는 2020 도쿄 패럴림픽 금메달리스트를 꿈꾸고 있다. “이전까지는 무조건 최선을 다하자가 목표였어요. 그런데 도쿄에서는 꼭 금메달을 목에 걸고 싶어요. 마지막 출전이라 생각해요. 다음은 없으니까요”. '철의 여인'은 이도연 선수의 별명이다. 
 
사진·글·동영상 장진영 기자 artj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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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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