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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대통령이 강조해도 뽑히지 않는 ‘붉은 깃발’

손해용 경제정책팀장

손해용 경제정책팀장

정부의 ‘혁신성장과 일자리 창출 지원 방안’ 발표 하루 전인 지난달 23일 열린 당정 협의회에서는 격론이 오갔다. 쟁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대규모 민간 투자 프로젝트를 어디까지 허용할지, 신사업 추진을 가로막는 각종 규제를 어느 정도 풀어줄지를 두고서다. 기획재정부는 현재 경제·고용이 어려운 만큼 투자를 확대하고 규제를 확 풀자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여당의 반대가 심했다. 현대차 신사옥 건립 같은 민간 투자는 특정 대기업을 지원한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고, 강남 집값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 원격 의료, 카풀 도입 같은 규제 혁신은 조직력이 강한 의료·택시업계 등의 반발을 산다는 이유로 여당은 난색을 보였다.
 
당초 브리핑이 2시간가량 미뤄질 정도로 막판까지 진통을 거듭했지만 결국 여당의 입김이 더 셌다. ‘연내 구체적인 계획을 발표하겠다’는 선에서 봉합한 지원 방안은 결국 혁신성장·일자리를 지원하기에는 역부족인 반쪽짜리 지원책으로 전락했다.
 
적어도 민간 투자에 반대하는 여당의 논리에는 수긍이 간다. 갑작스러운 대규모 건설 투자는 부동산 시장 안정화를 추진하는 정부 정책에 역행한다. 겨우 잠잠해진 부동산 시장이 다시 들썩이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 하지만 규제 개혁 반대 논리는 궁색하다.  
 
해외에선 이미 자리 잡은 원격의료·카풀·숙박공유·빅데이터 산업 등이 국내에선 규제 때문에 막혀 있다. 모두 소비자의 효용을 높이고, 일자리 창출 등 경제 효과가 입증된 신산업이다. 무엇보다 문재인 대통령이 “붉은 깃발을 치워야 한다”는 수사적 표현까지 써 갈 정도로 규제 개혁 의지가 강했다.
 
결국 기존 기득권의 고통 분담을 호소해 양보와 타협을 끌어내는 정책 카드는 포기하고, 일부 강성 국회의원과 시민단체·이익집단의 반대에 여당이 굴복한 모양새가 됐다.
 
붙박이 규제가 사라질 때마다 산업은 성장한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우체국 독점 사업이었던 택배업이 대표적이다. 규제가 풀려 민간업체가 시장에 진출하자 가격은 싸지고 배송시간은 단축됐다. 한국을 온라인·홈쇼핑 강국으로 만든 배경이기도 하다.
 
최근 ‘산업 성장 막는 붉은 깃발 규제’를 취재하며 만난 박종환 김기사컴퍼니 대표는 “규제 개혁은 이제 생존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2015년 내비 서비스 ‘김기사’를 카카오에 626억원에 매각하며 스타트업 ‘엑시트’(투자금 회수) 신화를 쓴 인물이다. 그의 주장은 이렇다.
 
“규제 개혁 없이 한국 경제가 잘되면 필요 없겠지만 한국이 처한 냉정한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고통을 감수하고 규제를 줄이라고 외치는 것이다.” 옳은 말이다.
 
손해용 경제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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