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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혁의 역사와 오늘] 정조의 창덕궁 옥류천 산책

 

1781년 9월 3일. 정조는 전·현직 직제학인 정민시, 서호수, 심염조와 호조참판 강세황과 함께 창덕궁 후원의 옥류천 계곡으로 들어갔다. 정조는 직접 앞장서서 걸으며 옥류천의 이곳저곳에 대해 설명했다. 가을철 흐트러지게 피어있는 꽃 속에서 왕과 함께 옥류천 계곡을 걷는 신하들의 눈빛은 감격으로 가득 찰 수밖에 없었다.

정조가 창덕궁 내원으로 신하들을 이끌고 온 것은 얼마 전 완성된 자신의 ‘어진(御眞)’을 함께 관람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정조는 즉위 후 처음으로 1781년 8월 26일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게 했다. 조선 시대 국왕들은 10년에 한 번씩 초상화를 그리는 것이 원칙이었다. 요즘 말로 하면 업데이트를 위해서 였을 것이다. 정조가 처음 초상화를 남긴 것은 동궁 시절인 1771년이었는데, 스무 살의 나이에 처음 초상화를 그린 후 10년이 지났을 때 정조는 국왕이 돼 있었다. 정조는 1781년 9월 1일 이 초상화를 규장각에 봉안하게 했고, 이틀 뒤인 9월 3일 신하들과 함께 이것을 보기 위해 창덕궁 후원에 있는 규장각을 찾아갔던 것이다.

앞서 정조는 갑자기 초상화를 그린 어진화사 강세황에게 자신과 함께 놀자고 했다. 국왕이 신하들에게 놀자고 한 것은 매우 특별한 일이었기에 강세황은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자 정조는 빙그레 웃으며 자신을 따라 나오라고 했고, 규장각에 있던 모든 신하들도 역시 나오라고 했다. 이때 정민시 등이 규장각에 있었는데, 정조의 명으로 함께 따라 나서게 된 것이다. 정조는 신하들과 함께 규장각에서 어진을 관람한 뒤 창덕궁 부용지를 지나 다시 옥류천 계곡으로 방향을 틀었다. 창덕궁 내에 가장 신비로운 공간인 옥류천은 국왕이 종친과 경재(卿宰·재상) 등과도 연회를 베풀지 않는 국왕만의 공간이었다. 이 곳은 궁궐의 궐내각사 공간인 외조(外朝), 인정전과 선정전 등 국왕의 정치공간인 치조(治朝), 그리고 희정당과 대조전 등 내조(內朝)의 공간에서 능선을 넘어 벗어난 연조(燕朝) 공간이었다. 결국 옥류천은 국왕만의 신성한 공간으로, 궁궐의 다른 그 어떤 공간 하고도 위상이 다른 곳이다. 국왕의 전유물인 이 공간을 정조는 신하들에게 개방하고 이들과 함께 산책하기 시작한 것이다. 조선 역사상 전례 없는 내원 옥류천 일대의 개방은 파격 그 자체였기에 신하들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정조와 함께 옥류천 계곡을 산책한 강세황은 “어찌 우리 임금께서 몸소 이 미천한 신하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뛰어난 경치를 하나하나 일러주시고 온화한 얼굴과 따뜻한 음성으로 한 식구처럼 하신 것과 같겠는가! 내가 어떠한 사람이 건데 이와 같이 성스럽고 밝은 세상에서 다시없을 은혜를 받았단 말인가. 멍하니 하늘 상제의 세계에 오른 꿈에서 깨어났나 의심했다”며 호가유금원기(扈駕遊禁苑記)에 기록했다. 정조는 또 규장각 앞의 부용지(芙蓉池)로 가서 신하들과 함께 낚시를 하고, 그들과 술 한 잔을 마시며 조선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처럼 조선 역사상 처음 있었던 창덕궁 옥류천의 군신동행(君臣同行)은 고도의 정치적 행위이기도 했다. 정조는 궁중 내 금단(禁斷)의 공간인 옥류천을 활용해 즉위 초반부터 자신의 정치구상을 실현하는데 기여하고자 했다. 정치적으로 당파가 다른 신하들과 함께 산책을 하면서 정치적 견해가 다른 이들을 하나로 모으고자 한 것이다. 소중한 자신의 공간을 신하들에게 선뜻 내어줌으로써 신하들은 정조의 의도를 십분 이해하게 됐으며, 그가 제시하는 개혁정책을 받아들이고 실시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노력으로 인해 정조는 오늘날까지 개혁의 아이콘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산책로를 정비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에 들어와서 청와대 개방 공간이 더욱 넓어졌는데, 막상 시민들이 다니는 길이 좋지 못해 비가 오면 물이 고여 제대로 다닐 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통령의 지시로 청와대 개방 공간의 관람로를 정비하게 된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이전 정부에 비해 권위주의를 많이 내려놓은 것은 사실이나 아직도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많다. 앞으로 청와대를 비롯한 금단의 구역을 더 넓게 개방하고, 국민들이 편하게 다닐 수 있게 차분히 정비해주기 바란다. 그런 것이 바로 ‘계지술사(繼志述事·선왕의 뜻을 계승해 정사를 펼침)’의 정신을 실천하는 것이다.

김준혁 한신대학교 정조교양대학 교수

 

<중부일보(http://www.joongboo.com)>

※위 기사는 중부일보 제휴기사로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중부일보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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