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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중 강제노동을 둘러싼 독일-이탈리아 소송전 보니…ICJ는 독일 손 들어줘

30일 일제강점기인 1940년대 일본에 강제징용된 피해자들에게 일본제철 후신인 신일본제철이 손해 배상해야 한다고 대법원 판결이 났다. 이날 오후 서울 용산구 용산역에 위치한 강제징용 노동자상 주변 표지석이 낙서로 훼손돼 있다. [뉴스1]

30일 일제강점기인 1940년대 일본에 강제징용된 피해자들에게 일본제철 후신인 신일본제철이 손해 배상해야 한다고 대법원 판결이 났다. 이날 오후 서울 용산구 용산역에 위치한 강제징용 노동자상 주변 표지석이 낙서로 훼손돼 있다. [뉴스1]

대법원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주면패소한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 2차 대전 이전 일본제철)은 피해자 4명에 위자료 1억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해야 한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대법원 판결에 앞서 국제사법재판소(ICJ)에 한국을 제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라 실제 배상이 이뤄질지는 불투명하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도 지난 19일 정례 브리핑에서 “한일 간 재산청구권 문제는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것이 일본의 일관된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1941~42년 독일군에 끌려간 포로들이 강제 노동을 하고 있다. [사진 미국홀로코스트기억박물관]

1941~42년 독일군에 끌려간 포로들이 강제 노동을 하고 있다. [사진 미국홀로코스트기억박물관]

 일본이 ICJ를 검토하게 된 배경에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독일과 주변 피해국가 간 소송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야마모토 세이타(山本晴太) 일본 변호사가 지난 8월 한 국내 토론회에서 발표한 『위안부 소송에서 주권면제』 논문에 따르면 독일이 전쟁 피해 배상을 위해 설립한 ‘기억‧책임‧미래’라는 재단을 발족하면서 관련 소송이 잇따랐다.
 
 재단에서 주는 기금 수혜자로 전쟁포로 등이 배제되면서 이에 불만을 품은 개인이 자국에서 독일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이 잦아졌다는 의미다. 프랑스‧벨기에‧브라질 등에서 관련 소송이 나왔지만 각국 주권은 평등하므로 한 국가는 다른 국가의 법원에서 피고로 소송을 제기당할 수 없다는 ‘주권면제원칙(Sovereign Immunity Doctrine)’에 따라 대부분 기각됐다. ‧
일제 강제징용 피해 생존자인 이춘식 할아버지가 강제징용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 판결을 위한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열린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하던 중 박수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일제 강제징용 피해 생존자인 이춘식 할아버지가 강제징용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 판결을 위한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열린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하던 중 박수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그리스‧이탈리아 최고법원에서 자국 국민에 승소 판결을 내리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이탈리아 대법원은 2004년 전쟁 중에 강제노동을 당한 자국민 루이키 페리니가 독일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페리니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로 끌려가 아파트 건설일을 해야 했다.
 
 독일 정부는 이에 불복해 ICJ에 제소했다. ICJ는 2012년 2월 “이탈리아 법원은 독일의 자주권을 침해했다”며 독일의 손을 들어줬다. 전후 평화조약으로 문제가 이미 해결됐다는 의미다. ICJ 판사 15명 중 12명이 주권면제원칙에 따라 판결에 찬성했다.
 
 다만 일본이 이번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을 ICJ에 제소하려면 한국 정부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인 조시현 전 건국대 법대 교수는 “국가 관계에서 한 나라의 판결이 다른 나라에 강제될 수 없다”며 “일본이 아무리 재판하고 싶어도 한국 정부가 동의하지 않으면 진행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지난 2016년 일본에 남아있으나 곧 사라질 대표적인 재일 한국인 집단 정착촌 ‘우토로 마을’을 주제로 한 기획전이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주최로 부산 남구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서 개막돼 시민들이 전시 사진을 살펴보고 있다.[중앙포토]

지난 2016년 일본에 남아있으나 곧 사라질 대표적인 재일 한국인 집단 정착촌 ‘우토로 마을’을 주제로 한 기획전이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주최로 부산 남구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서 개막돼 시민들이 전시 사진을 살펴보고 있다.[중앙포토]

 
전문가들은 소송보다는 공익 재단을 활용해야 한일 과거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정부는 지난 2014년부터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2005년 8월 노무현 전 대통령 당시 정부가 ‘강제징용 보상이 청구권 협정의 무상자금 3억 달러 산정에 포함됐다’는 내용을 발표하면서 강제징용 진상규명 위원회가 활동했고, 위원회 활동을 근거로 2011년 재단 출범 법률이 만들어졌다.  
 
 현재까지 이 재단에 강제징용 위로금 지급을 신청한 건수는 모두 11만2000건이다. 정부는 이중에서 7만2000건에 대해 위로금 지급 결정을 했다. 유족에게는 2000만원, 부상자는 300만~2000만원 범위에서 등급별로 받을 수 있다. 정부 예산으로만 현재까지 6200억이 지급됐다. 생존해 있는 피해자에게 연간 80만원이 의료비로 지급된다. 2008년 2만5000명이었던 생존자는 올해 3000명으로 줄었다. 
 
 65년 청구권 협정으로 수혜를 받은 포스코가 100억원을 재단 운영금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현재까지 60억원을 지급했고 오는 11월 추가 40억원을 채울 예정이다. 재단은 또 다른 수혜 기업인 한국전력공사‧한국도로공사‧코레일‧한국수자원공사에도 기금을 내도록 요청하고 있다. 일본변호인단체와 함께 전범기업과 접촉할 계획도 갖고 있다.  
 
 이재철 재단 운영관리국장은 “피해자와 유가족이 위로금 액수가 적정한지 의견 차이가 크다”며 “수긍하지 못하는 피해자가 개별 소송을 진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대법원에 계류된 강제동원 손해배상 소송은 모두 15건이다. 서울중앙지법·광주지법, 서울고법 등 1·2심 진행 중인 강제동원 손해배상 소송은 12건이다. 소송 원고는 약 950명.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던 박인환 전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강제징용 피해자가 대략 25만 명으로 추산된다”며 “사법부도 행정력으로 감당할 수도 없고 수십조원에 달하는 배상액도 개별 기업이 책임지기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양국이 타협할 수 있는 접점을 찾아 재단을 통해 피해자의 아픔을 치유하는 게 올바른 방향”이라고 말했다. 

 
김민상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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