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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이 변호한 ‘군함도’ 소송도 남았다…아직 남은 강제징용 소송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30일 오후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일본기업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 판결을 선고한다.
 
피해자들이 2005년 국내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지 13년 만에 내려지는 대법원의 최종 결론은 현재 법원에 계류 중인 총 15건의 일본 전범기업 배상 판결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15건 중 대법원에 계류 중인 소송은 ‘신일본제철’ 소송을 포함해 3건이다. 나머지 두 건의 피고는 모두 전범기업의 대표격인 미쓰비시 중공업이다. 
문 대통령이 변호한 ‘군함도’ 소송
2차 세계대전 당시의 군함도 모습. [중앙포토]

2차 세계대전 당시의 군함도 모습. [중앙포토]

 
태평양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4년 여름, 사이판을 손에 넣은 미국은 일본을 몰아부쳤다. 전황이 악화되자 일본 각의는 ‘반도인 노무자의 이입에 관한 건’을 결의했고, 비행기 부품 및 제철 용광로 제조, 선박 수리 등 특수기능 보유자로 제한돼 있던 징용 대상을 한국인 전체로 확대했다.
 
이때 서울(당시 경성부)과 경기도에 살던 스무살 안팎의 청년 박창환씨 등은 징용영장을 받아들었다.
 
이들이 배치된 곳은 히로시마에 있는 미쓰비시 기계 제작소와 조선소. 열심히 일하면 한밑천 잡아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고된 노동과 부족한 식사량, 철조망이 설치된 숙소와 삼엄한 감시 속에 이들이 받는 월급은 20~35엔에 불과했다.
 
징용 생활 1년을 맞을 무렵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공장에서 작업 중이던 이들은 부상을 입은 채 간신히 귀국길에 올랐다. 그러나 고국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경제적 어려움만이 아니라 피폭으로 인한 후유증은 갈수록 심각해졌다.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했다.
 
지난해 부산 동구 일본총영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에서 열린 강제징용노동자상 건립 추진 기자회견에 참석한 강제징용 피해자. [중앙포토]

지난해 부산 동구 일본총영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에서 열린 강제징용노동자상 건립 추진 기자회견에 참석한 강제징용 피해자. [중앙포토]

 
박씨 등 5명은 1995년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강제징용과 불법행위 등으로 인한 손해를 배상해달라며 일본 히로시마 지방재판소에 소송을 냈다. 하지만 현지 법원은 1999년 3월 청구를 기각했고, 히로시마 고등재판소(2005년)와 일본 최고재판소(2007년)가 이 판결을 확정했다.
 
일본 1심에서 패소한 직후인 2000년 피해자들은 국내법원인 부산지법에 소송을 제기했다. 일제 강제 동원 피해자들이 한국 법원에서 일본 기업을 상대로 한 첫 제소였다.
 
당시 이들의 소송을 진행했던 변호사가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문 대통령은 원고 측 대리인 중 한 명으로 직접 소장 제출과 서면 준비, 증거 자료 제출 등을 도맡았고, 2006년 11월까지 재판에 직접 관여했다.
 
1심과 2심에선 모두 원고의 청구가 기각됐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을 깨고 부산고등법원으로 사건을 돌려보냈고, 부산고법은 2013년 7월 미쓰비시가 강제 징용 피해자들에게 1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미쓰비시는 이에 불복하고 상고했다. 현재 소송은 대법원에 5년째 계류 중이다.
 
영화 군함도 포스터. 오른쪽은 일본 나가사키현 나가사키시 소재 하시마의 낡은 건물 [연합뉴스]

영화 군함도 포스터. 오른쪽은 일본 나가사키현 나가사키시 소재 하시마의 낡은 건물 [연합뉴스]

 
이 소송은 지난해 일제 강점기, 군함도(하시마, 군함 모양을 닮아 군함도라 불림)에 강제 징용된 후 목숨을 걸고 탈출을 시도하는 조선인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군함도’ 개봉으로 다시 주목을 받았다. ‘군함도’는 미쓰비시 중공업의 소유였다.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
 
지난달 일제 강제노역 사건 중 하나인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사건의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이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됐다. 이 사건 역시 ‘양승태 법원행정처’가 청와대와의 뒷거래 속에 강제로 재판을 지연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징용소송 중 하나다.
 
소송을 제기한 양금덕(87) 할머니 등 원고 4명은 아시아 태평양 전쟁 말기인 1944년 5월 일본인 교장의 회유로 미쓰비시 중공업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로 동원돼 중노동을 했다. 임금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전쟁반대평화실현국민행동 등 시민단체가 지난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주 국제관함식 참석 일본 군함의 전범기(욱일기) 사용 중지 및 일본제국 침략전쟁, '위안부' 피해, 강제징용 피해 등에 대해 사과할 것을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시스]

전쟁반대평화실현국민행동 등 시민단체가 지난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주 국제관함식 참석 일본 군함의 전범기(욱일기) 사용 중지 및 일본제국 침략전쟁, '위안부' 피해, 강제징용 피해 등에 대해 사과할 것을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시스]

 
피해자들 역시 1999년 3월 1일 일본 법원에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지만 2008년 11월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패소 판결이 확정됐다.
 
이후 2012년 국내 법원에 다시 소송을 냈고 1심 재판부는 양 할머니 등 피해 당사자인 원고 4명에게 1억5000만원씩, 사망한 부인과 여동생을 대신해 소송을 낸 유족 1명에게는 8000만원 등 모두 6억8000만원의 위자료를 미쓰비시에 배상하도록 했다.
 
2015년 2심 재판부도 “일본 정부의 침략전쟁 수행을 위한 강제동원 정책에 편승해 돈을 벌 수 있다는 거짓말로 13~14세 소녀들을 군수공장에 배치, 열악한 환경 속에 위험한 업무를 하게 한 것은 반인도적 불법행위”라며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다만 배상액을 일부 조정해 양 할머니 등 3명에게 각각 1억2000만원, 이동련 할머니에게 1억원, 사망한 부인과 여동생을 대신해 소송을 낸 유족 1명에게는 1억208만3333원의 위자료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2심 선고 직후 미쓰비시 측은 대법원에 상고했다. 이 소송의 경우 아직 판결 선고 기일이 결정되지 않았지만 조만간 대법원 선고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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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소송에 대한 미쓰비시 측의 입장은 같다. 구 미쓰비시 중공업과 현 미쓰비시 중공업은 다를뿐만 아니라 일본에서 앞서 진행됐던 같은 취지의 소송에서 원고패소 확정 판결이 나왔다는 것이다. 또 1965년 체결된 한·일협정에 따라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한데다 불법행위가 발생한 시점으로부터 10년이 지나 민사 청구권이 소멸한 점, 피해자들이 한국 정부로부터 강제동원 희생자로 판정받아 위로금을 받으면서 권리를 포기했다는 점 등도 이유로 제시하고 있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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