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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정책 오발탄으론 불황의 쓰나미를 막을 수 없다

이상렬 경제 에디터

이상렬 경제 에디터

두어 달 전 한 시중 은행 수장을 만났다. 경제가 어떠냐고 물었더니 다 알면서 묻는다는 투로 “현장 상황이 아주 안 좋다”고 대답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올바른 경제정책 기조로 가고 있다”고 선을 그었던 그 무렵이다.
 
그 이후 경기는 계속 나빠졌다. 지표가 말해준다. 취업자 증감은 가까스로 마이너스를 면했지만, 기대만큼 늘어나지 않았다(9월 4만5000명). 일자리 총동원 체제를 가동했는데도 그렇다. 대기업들과 금융회사들은 억지로 채용을 늘렸다. 한 금융회사 고위 관계자가 “우리 실정으론 (발표한 규모의) 절반이면 충분한데…”라고 털어놨을 정도다. 설비투자는 오그라들었다(3분기 -4.7%). 한국은행은 올해 우리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두 번이나 내려 2.7%로 전망했지만, 그 마저 낙관적이지 않다.
 
정부가 수습책을 내놓긴 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고용노동부 장관을 경질하고, 애꿎은 통계청장까지 날렸다. 하지만 경제 정책의 지휘봉을 잡은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자리를 지키고 있고, 경제 난국을 초래한 정책 기조도 달라지지 않았다.
 
일자리 대책도 만들었다. 지난 24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만든 ‘혁신성장과 일자리 창출 지원방안’이 대표적이다. 거기엔 5만9000개의 단기 일자리 제공이 포함됐다. 국립대 빈 강의실의 소등 업무, 전통시장 환경미화, 농한기 농촌 생활환경 정비 등의 일자리가 제시됐다. ‘일자리 보릿고개’를 넘기 위한 고심의 결과물이라고 정부는 설명한다. 매년 겨울엔 다른 때보다 취업자 수가 80만 명 가량 줄어들기 때문에 정부가 나섰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통계상 취업자 수가 마이너스로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정부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 배정된 예산이 다 집행된 몇 달 뒤엔 어떻게 할 것인가. 정부는 벌써부터 일부 사업을 연장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지만, 청년들에게 언제까지 이런 일을 맡기면서 일자리를 줬다고 자부하고 있을 것인가. 수많은 청년 실업자들과 취업준비생들의 분노는 여기서 출발한다. 차라리 그 돈을 직접 나눠주고, 해외 취업 기회를 뚫으라고 장려하는 것이 낫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정부로선 돈은 돈대로 쓰고 욕은 욕대로 먹는 형국이다.
 
지난 24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김동연 경제부총리(왼쪽) 주재로 일자리 관련 경제관계장관회의가 열렸다. [최승식 기자]

지난 24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김동연 경제부총리(왼쪽) 주재로 일자리 관련 경제관계장관회의가 열렸다. [최승식 기자]

경기 악화 요인으로 치자면 내년엔 더 센 놈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당장 두 달 뒤인 내년부터는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10.9% 오른다. 2017년과 비교하면 2년 새 29%가 인상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중소기업들과 자영업자 중에 이 정도의 최저임금 인상을 흡수할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근로시간 단축도 본격 시행된다. 주 52시간제 적용 유예기간이 올 연말로 끝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한 기업의 추가 부담액이 12조원이 넘을 것이란 추산(한국경제연구원)도 있다. 한마디로 임금 비용 급증 쇼크가 한국 경제를 덮치게 된다. 우리의 주요 수출 대상국인 미국과 중국의 충돌로 인한 해외시장 위축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정부는 24일 대책에서 유턴기업 지원책도 내놓았다. 해외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대기업들에 중소기업 수준의 보조금과 세제감면 혜택을 주겠다는 내용이다. 정부는 이런 혜택이 과연 악명높은 규제, 경직된 노동시장, 높은 인건비 등을 피해 떠나간 기업들을 돌아오게 할 것이라고 보는 것일까. 이러니 한국의 기업 여건을 성찰하지 않고 내놓은 면피성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최근 “경제 상황이 위기로 치닫고 있다”고 말하는 이들과 “정부에 위기감이 없다”고 말하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 설계 주역인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내년엔 더 강한 외풍이, 더 지독한 가뭄이 올 것으로 보이는데, 어쩌려고 이러고 있나”고 꼬집었다.
 
사실 주가 폭락이나 경기지표 악화보다 국민들을 더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정부의 위기의식 부재일지 모른다. 한국 경제는 그간 온갖 위기를 겪었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등 이제는 10년 위기설이 현실화하고 있다.
 
외환위기 때는 그나마 정부 재정이 탄탄해서 버틸 수 있었다. 150조 원이 넘는 공적자금 수혈로 금융기관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미국발 금융위기는 우리 내부의 문제가 아니었지만 한국 경제를 심하게 뒤흔들었다. 그래도 그때는 공격적인 금리 인하로 시장 경색을 풀어갈 수 있었다. 무엇보다 실물이 튼튼했다.
 
지금 한국 경제에 밀려오고 있는 위기는 지난 두 번의 위기와 사뭇 성격이 다르다. 주력산업의 경쟁력이 눈에 띄게 약화되고, 자영업자들이 급속도로 무너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겐 재정과 금융의 실탄이 예전처럼 넉넉하지 않다. 한국 경제는 과거 그랬듯이 이번에도 온갖 비관론을 잠재우고 위기를 극복해낼 것이다. 그러자면 정부부터 위기감으로 무장해야 한다.
 
이상렬 경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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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