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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만 시총 293조 증발 “투자 심리 살릴 골든타임 놓쳤다”

“한국 증시의 조정 폭이 다른 나라에 비해 클 이유가 없다. 앞으로의 조정 폭도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믿어야 한다.”
 
이번 주 첫 주식시장이 열리기 30분 전인 29일 오전 8시30분. 금융위원회는 김용범 부위원장 주재로 ‘금융시장 상황 점검회의’를 열었다. 금융감독원·한국거래소·금융투자협회 같은 유관 기관 임원과 기관투자가 대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을 불러 모았다.
 
김 부위원장의 발언은 낙관적이었다. 그는 “아직 한국 경제는 견고한 기초 여건을 가지고 있다. 재정수지도 다른 국가에 비해 매우 건전하고 국가 부도 위험을 나타내는 신용부도스와프(CDS)는 상당히 안정적이다”고 말했다. 증시 조정 폭이 크지 않은 것이란 판단도 여기에 기반하고 있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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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도 뼈가 있었다. 그는 “한국의 기초 여건과 무관하게 외국인 자금이 이탈하는 아쉬움도 있다”며 “이런 때일수록 분석 능력과 자금 여력이 있는 국내 기관투자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외국인 투자자의 ‘투매’ 행렬에 가세해 온 연기금 등 기관을 향한 경고성 발언이었다.
 
자신감과 엄포가 동시에 내포된 당국의 발표는 5000억원대의 증시안정 자금 조성 대책 발표와 맞물려 시장에 먹혀 들어가는 듯 보였다. 코스피 지수는 오전 한때 직전 거래일보다 20포인트 가까이 상승했다.  
 
기관투자가도 이날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을 통틀어 8260억원어치의 주식을 사들였다(순매수). 연기금도 이날 하루 559억원 순매수하며 코스피 2000선 방어에 나섰다.
 
하지만 약효는 오래가지 못했다. 하락 반전한 코스피 지수는 이날 2000선을 단번에 하회했다.  
 
중국 증시가 급락한 데다 외국인 투자자가 ‘묻지마 매도’에 나설 때마다 나 홀로 국내 증시를 지탱해 온 개인투자자도 변심한 채 투매에 나섰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정부에 대한 신뢰가 추락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동안 정부는 증시 급락과 관련해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한국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은 튼튼하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이날 대책이 사실상 처음이다. 손에 쥔 주식 가치가 추락하는 것을 맥없이 지켜봐야 했던 개인투자자는 결국 인내심을 잃고 등을 돌렸다. 지난주를 기점으로 개인이 순매도로 돌아선 이유다.
 
이날 정부 발표 내용도 알맹이가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뒤늦게 5000억원 이상 규모의 증시안정 자금을 조성하겠다고 밝혔지만 올해 초 이미 발표한 ‘코스닥 스케일업 펀드(2000억원)’ 확장판에 그칠 뿐이다.
 
그마저 한국 증시 자금 이탈 규모와 비교하면 ‘새발의 피’에도 미치지 못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1~29일 외국인은 코스피(-3조9507억원)와 코스닥(-6060억원) 시장에서 4조5567억원의 자금을 뺐다(순매도).  
 
이 기간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을 합쳐 감소한 시가총액은 293조원에 이른다. 10월 들어 증발한 시가총액이 코스닥 전체 시가총액(29일 기준 217조원)보다 많은 실정이다.
 
뒤늦게 정부가 대책을 내놓았지만 투자 심리를 되돌릴 수 있는 ‘골든타임’은 이미 지나버린 상황이다. 이제 전문가도 다음 지지선을 쉽게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한국 주식은 이제 11년 전 가격으로 돌아갔고, 지금은 감내해야 할 때”라며 “주가순자산비율(PBR·주당 순자산가치)을 감안할 때 코스피의 다음 지지선은 1900선으로 보이지만 이 역시 확실하게 장담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이경수 메리츠종금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한국 가계 자산의 70~80%가 부동산에 들어가 있고, 미국은 70~80%가 금융 자산”이라며 “미국은 노후 연금 대책으로 금융 자산에 투자하게 유도했는데, 한국 역시 (부동산 자금을) 금융 쪽으로 들어올 수 있게 통로를 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금융 자산에 대한 세제 혜택 추가를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실효성 있는 방안이 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현숙·정용환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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