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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을 떠나고 싶다는 이들에게 권함

기자
김성희 사진 김성희
[더,오래] 김성희의 천일서화(8)
이 나라를 ‘헬조선’이라 부르는 걸 심심찮게 듣는다. 워낙 드세서 조만간 국어사전에라도 오르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취업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리만치 어렵고, 능력보다 연줄이 위력을 발휘하고, 부의 불평등은 도무지 줄어들 기미가 없고, 정·재계의 부패며 부조리는 툭하면 언론을 장식하고, 이 모든 것이 가까운 장래에 나아진다는 전망은 희미하고…. ‘헬조선’이라 자조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한데 무슨 비뚤어진 심보인지 몰라도 ‘헬조선’이란 말을 들으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의문이 있다. ‘헬조선? 좋다. 그렇다면 파라다이스 미국인가, 무릉도원 스위스인가 이상향 뉴질랜드인가?’ 하는 것이다.
 
책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 마이클 부스 지음.

책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 마이클 부스 지음.

 
‘헬조선’을 떠나고 싶다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을 만났다. 영국 출신 여행전문 저널리스트인 마이클 부스가 쓴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글항아리)이다.
 
이 책은 덴마크 출신 아내를 두고 덴마크에서 오랫동안 산 부스가 직접 덴마크,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 다섯 나라를 다니며 다양한 이들을 만나고 직접 ‘실험’도 해보며 쓴 문화탐방기이다. 스쳐 지나간 이의 겉핥기 여행기가 아니라 체험에 발품을 더하고 직접 해본 ‘실험’을 바탕으로 했기에 생생하다.
 
북유럽 하면 우리는 얼른 살기 좋은 복지국가를 떠올린다. 소득 수준은 높지만 빈부 격차는 적다. 의사나 배관공이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학생들은 경쟁에 시달리지 않으면서도 학업 성취도가 뛰어나다. 복지제도가 충실해 먹고 살 걱정이 없다. 이런 등등이 이들 북유럽 국가에 대한 이미지다. 
 
하지만 이 흥미로운 여행기를 읽고 나면 그런 막연한 동경은 많이 사라질 것이다. 적어도 ‘사람 사는 세상은 다 거기가 거기구먼’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여러 가지 부러운 매력, 본받을 사실에도 불구하고.
 
지은이는 머리말에서부터 딴죽을 건다. “세상 어딘가에 평범한 재능과 소득을 가진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면 바이킹으로 태어나고 싶을 것”이라면서도 “소위 북유럽의 기적에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이 뜨거우면서 어째서 사람들은 북유럽으로 살러 오지는 않는 걸까?”라고 물으니 말이다.
 
덴마크 코펜하겐 검정공원. 덴마크는 각종 행복도 조사에서 번번이 세계 1위에 오른다. 최승식 기자

덴마크 코펜하겐 검정공원. 덴마크는 각종 행복도 조사에서 번번이 세계 1위에 오른다. 최승식 기자

 
자, 5개국을 나라별로 살핀 글들을 보자. 덴마크는 각종 행복도 조사에서 번번이 세계 1위에 오른다. 여러 가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이를 인정해도, 자동차 가격과 밥값이 세계에서 가장 비싸고, 이는 1%가 약간 넘는 ‘교회 유지세’를 포함한 직간접세부담이 소득의 58~72%라면 우리 중 비명을 지르지 않을 이가 얼마나 될까. 이건 일주일 중 목요일까지 정부를 위해 일한다는 의미다. 
 
물론 지은이가 만난 어느 덴마크 대학교수는 “우리가 특별히 욕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정부가 돈을 현명하게 쓰리라 믿기 때문”이라 답하지만 덴마크인의 80%가 탈세를 저지르거나 그럴 의도가 있다는 조사가 있고 보면 ‘세금 천국’이라 여기는 이들도 적지 않음을 추측할 수 있다.
 
북해 산 원유로 부를 누리는 노르웨이에서는 노동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며 100만 명 이상이 정부보조금으로 살아간다. 스타트 오일은 젊은 예술가와 음악가들에게 상당한 보조금을 지급하기도 한다. 부러운가. 하지만 회사를 비판하지 않겠다는 계약서를 써야 한다는 함정은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라면 이런 조치는 당장 여론의 몰매를 맞을 일 아닌가.
 
핀란드는 휴대전화 회사 노키아 말고도 교육제도가 유명하다. 전 세계 학업성취도 조사에서 수년째 선두를 달리면서 이른바 ‘핀란드식 교육법’은 우리나라에서 유행을 넘어 바이블 수준에 이른 감이 있다. 
 
하지만 세계보건기구(WHO)의 학교생활 만족도 조사 결과 핀란드 아이들이 모든 연구 대상국 아이 중에서 학교생활을 가장 재미없어 했다는 사실은 묻혔다. 2007년과 2008년 핀란드 학교에서 총격 사건이 일어나 10여 명의 학생이 희생되었던 사실도 눈여겨봐야 한다.
 
공정하게 말해 책은 북유럽 5개국에 호의적이다. 흥미롭고 유익한 사실로 가득 차 있다. ‘미친 듯이 웃긴’이란 부제만큼은 아니지만 슬그머니 웃음을 자아내는 문체도 매력적이다. 그보다는 ‘사람 사는 세상은 어디나 비슷하다’는 인상이 더 강했다. 냉소와 멸시만 보낼 게 아니라 함께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길을 찾자고 하면 꼰대 소리를 들으려나.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jaeja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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