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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한의 퍼스펙티브] ‘우울한 대한민국’ 건강한 마음 없는 건강은 없다

살 만한 세상
‘고독부 부장관’(Minister for Loneliness). 이런 직책이 있을까 생각하겠지만 실제로 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지난 1월 디지털·문화·미디어·스포츠 담당 부장관 트레이시 크라우치를 고독부 부장관에 겸직 임명하였다. 영국 정부는 2011년 ‘정신건강 없는 건강은 없다(No health without mental health)’라는 국가 전략을 제시한 데 이어 지난 10일에는 자살예방 부장관직을 신설할 정도로 정신건강에 적극적이다. 국내에서는 Minister를 장관으로 잘못 번역하기도 했으나 영국 내각 직급상 장관(Secretary) 다음의 부장관이다. 직급의 무게에서 정신건강에 대한 영국 정부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특히 영국 정부는 지난 9~10일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와 공동으로 세계정신건강각료회담(Global Ministerial Mental Health Summit)을 개최했다. 세계보건기구(WHO) 후원으로 열린 이 행사에는 윌리엄 왕세손,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빈과 함께 영국·캐나다·노르웨이 등 50여 개국 대표와 OECD·세계은행·미국심리학회 등 전문가가 참여하여 세계와 개별 국가 차원의 정신건강 정책을 논의하였다.
 
고독은 21세기의 전염병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메이 총리는 영국 인구의 14%인 900만 명 이상이 고독감을 느낀다는 콕스위원회 보고서에 근거하여 고독이 현대 사회의 슬픈 현실임을 선언하고 고독 전담부처를 신설하였다고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은 전했다. 고독은 영국뿐 아니라 세계적 문제다. 비벡 머씨 전 미국 의무감(Surgeon General)은 하버드비즈니스리뷰를 통해 고독을 “증가하고 있는 전염병”이라고 말했다.
 
1980년대부터 고독사(孤獨死, 고립사로도 불린다)가 사회 문제가 된 일본에선 한해 3만 명 이상의 고독사가 발생한다. 우리나라도 고독사가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정확한 통계는 없으나 무연고 사망자만 연 1000명 이상이다. 1인 가구가 급증하고 노인 빈곤화가 급격한 상황을 고려할 때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극단적 형태인 고독사 외에도 외로움은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혼밥·혼술 같은 표현은 이제 익숙하다. 과거 지나친 집단주의적 억압의 반작용으로 혼자 즐기는 자발적 자유로서의 1인 생활은 문제가 없겠지만, 팍팍한 환경과 단절된 관계 속에서 본인 의지와 다르게 외로움으로 떠밀린 비자발적 고립이라면 문제다.
 
외로움 연구의 권위자인 시카고대 사회심리학자 존 카치오포 교수는 저서 『인간은 왜 외로움을 느끼는가』를 통해 외로움이 사회적 자본과 관계뿐 아니라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한다. 외로운 사람이 고혈압·심장마비 등 건강 문제를 가질 확률이 더 높다. 그로 인한 사회적 손실이 막대하다. 외로움이 주는 독립과 성찰의 긍정적 본질을 훨씬 넘어 인간과 사회에 고통을 주는 수준에 이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울증에 따른 사회적 손실, GDP의 4%
 
우리 시대의 심각한 문제인 우울증을 살펴보자. 이번 회의에서 런던정경대(LSE) 경제학자 리처드 레이어드는 당뇨·천식·협심증보다 우울증으로 인한 업무 관련 어려움이 50% 이상 더 많다고 발표했다. 사회적 손실 규모는 영국 국내총생산(GDP)의 4%에 이른다.
 
그는 사람은 낮은 임금·실직·신체질환보다 정서적 문제로 인해 더 많은 고통을 받고 있다며, 이러한 경향이 고소득 국가에서 더 강하다고 지적하였다. 레이어드 교수는 성인기 삶의 만족도를 가장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변수가 아동기의 정서적 건강이라고 주장했다. 세계은행 보고서도 같은 맥락에서 우울증이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강조하고 인적자원 측면에서도 치료되지 않은 부모의 우울함이 다음 세대를 위한 양육 투자를 방해한다고 진단하였다.
 
“평등한 정신건강 달성해야”
 
제1회 세계정신건강각료회의에서 이틀간의 집중적인 논의를 통해 각국 대표는 모든 사람이 건강과 복지를 누릴 권리를 가진다는 세계인권선언에 기초하여 평등한 정신건강 달성에 관해 선언하였다. 인간은 최고 수준의 신체 및 정신 건강을 향유할 권리가 있음을 재확인하고, 타인과 함께 일하고 성장하고 관계를 맺고 생활에 적응해 살아가는 인간의 삶에 정신 건강이 중요한 역할을 함을 강조하였다. 아울러 정신 장애를 가진 사람이 사회에서 소외되는 현실을 지적하며 권리가 향상되어야 함을 지적하였다.
 
핵심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정신 건강과 신체 건강은 분리할 수 없으며, 둘을 연결하고 동등하게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 둘째, 현재 많은 국가가 보건 예산의 2% 미만을 정신 건강에 배정해 UN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 달성에 한계가 있으므로 각국은 충분히 투자해야 한다.
 
셋째, 조기 발견과 개입·치료가 정신 건강을 증진한다. 넷째, 과학적 연구와 혁신을 모든 나라가 협력하여 지원해야 한다. 다섯째, 정신 장애에 대한 낙인·편견·차별을 없애기 위해 캠페인 같은 실천적 정책을 사용해야 한다. 그 외 삶의 모든 측면과 인생 과정 전반에 걸쳐 포괄적으로 예방·치료·재활 서비스를 제공하고, 취약 계층이 동등한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제안하였다.
 
특히 아동·청소년이 적절한 돌봄을 받고, 국가 전략에 정신 건강 증진이 포함된 돌보는 사회(caring society)가 되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를 위해 저소득 국가는 보건 예산 중 최소 5%, 고소득 국가는 최소 10%를 정신 보건에 할당할 것을 요청했다. 또 정신 장애에 대한 낙인과 차별을 해결하고 포용하는 공정한 사회가 되어야 하며, 체계적 연구를 통해 근거 기반의 개입을 발전시킬 것을 각국 보건장관에게 권고하였다.
 
우울 사회, 대한민국
 
이런 접근이 우리 사회에 어떻게 적용될지 살펴보자. 2016년 보건복지부 정신질환 실태 역학조사에 따르면 주요 우울장애(우울증)의 평생 유병률, 즉 평생 한 번 이상 우울증에 걸린 경험이 있는 비율은 5.0%로 나타났다(남성 3.0%, 여성 6.9%). 이 수치는 서구의 유병률(남성 5~12%, 여성 10~25%)에 비해 현격히 낮다. 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응답을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정서적 어려움을 표현하면 나약하게 보이고 사회적인 차별을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해 낮게 응답을 가능성도 있다. 아울러 정신 건강에 대한 정보와 인식이 낮은 때문일 수도 있다.
 
현재는 진단명으로 사용되지 않으나 가면우울증처럼 우울 증상이 겉으로 표현되지 않고 신체 증상이나 알코올 중독, 폭력 등 다른 방법으로 분출되기 때문에 우울증에 대한 자각이 없는 것일 수도 있다. 고전적 프로이트 이론으로 본다면 우울증은 자기 자신에게로 공격성이 향한 결과로 발생한다. 제대로 표현되지 못한 심리적인 어려움이 외부로 향하는 것이 우리 사회 분노의 정체인지도 모른다.
 
치료나 도움 요청을 적게 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큰 문제다. 미국의 경우 연간 정신 건강 서비스 이용률이 50%에 육박한 데 비해 우리나라는 일생 중 정신 건강 도움을 요청한 비율이 9.6%에 불과한 것이 실태 조사 결과이다. 미국과 같은 기준으로 연간 이용률을 비교한다면 이보다 훨씬 낮을 것이다. 특히 정신 질환을 경험한 사람 중 20% 정도만이 정신의학적 치료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OECD 국가 중 우리나라의 항우울제 사용이 현격히 낮다. 이런 낮은 치료율은 정신 장애에 대한 낮은 인식 때문이다. 신체 질병에 대한 치료와 달리 정신 질환에 대한 낙인과 편견이 치료의 문턱을 높이고 있다.
 
또 다른 원인은 정신 건강을 위한 사회적 투자의 부족에 있다. 2014년 WHO 자료에 따르면 국민 1인당 정신 건강 관련 정부 지출을 비교할 때 우리나라는 44.8달러로 미국의 272.8달러, 영국 227.8달러, 일본 153.7달러에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권준수 이사장(서울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이제는 국가가 국민의 삶의 질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삶의 질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정신 건강에 투자해야 할 때”라며 “사회적 약자인 정신장애인을 사회 일원으로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역량이 있으며 포용사회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인 우리가 이제 성장 위주의 패러다임에서 국민 행복을 위한 질적 패러다임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진단과 해법은 이번 각료회의의 정신 건강 선언과 권고와 맥을 같이 한다.
 
치료하는 사회보다 치료적인 사회
 
이번 회의를 통해 필자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말은 영국 국가보건의료서비스(NHS)의 정신건강 수장 팀 켄달의 “치료를 제공하는 사회가 아니라 치료적인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것은 치유하고 포용하며 건강한 사회일 것이다.
 
WHO가 건강에 대해 단지 질병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신체적·정신적·사회적으로 완전한 안녕 상태”라고 정의했음에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신체 건강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닐까. 정신 건강을 위한 예방과 치료·재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고 현재 진행 중인 정신 건강 종합 대책에 세계 권고 수준의 국가적 지원이 있어야 할 것이다. 건강한 정신이 없이 건강할 수 없다.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학 교수·사회참여센터장 리셋 코리아 보건복지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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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