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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비서실장' 홍국영은 어떻게 몰락했나

[유성운의 역사정치]㉚ 
  “만약 경(홍국영)이 없었다면 오늘의 내가 있었겠는가” (정조)
  “7년간 국가 일을 돌보며 조정의 명령이 대부분 제 손에서 나왔습니다” (홍국영)
  “홍국영과 갈라서는 자는 역적이다.” (좌의정 김종수)
 
정조 초반의 정국은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위치에 있었던 홍국영을 제외하면 설명이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조정의 모든 정치가 그의 머리에서 나왔고 그의 입과 손을 거쳐 집행됐습니다. 그랬던 그가 모든 권력을 내려놓고 정계에서 은퇴했을 때 나이는 불과 32세였습니다.
 
정조 시대를 다룬 영화 '역린'의 한 장면.

정조 시대를 다룬 영화 '역린'의 한 장면.

이순신이 무과에 합격해 훈련원 봉사(訓鍊院奉事)라는 미관말직으로 조정에 출사했을 때 32세였다는 것을 떠올려보면 홍국영이 얼마나 초고속 출세를 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불과 30대 초반의 나이로 조선의 정계를 좌지우지했던 그는 과연 어떤 인물이었으며, 왜 한창나이에 권력의 정점에서 내려와야 했을까요.
 
"외모가 준수하고 눈치가 빠르며 민첩했다"
“외모가 준수했고, 눈치가 빠르고 민첩하기도 하니 동궁(정조)께서 한 번 보고 크게 좋아하셔서 가까이 두고 아끼셨다.” (『한중록』)
잘 생긴 외모에 영리했던 그는 시나 노래도 잘하고 언변도 좋은 '팔방미인' 스타일이었다고 합니다. 유년 시절부터 학문보다는 시정잡배들과 어울려 술 마시고 장기를 두는 것을 즐겼습니다. 특히 시조를 잘했는데 "나비야 나비야 청산 가자"는 도성에서도 알아주는 실력이었다고 합니다. 
 
혜경궁 홍씨가 저술한 『한중록』[중앙포토]

혜경궁 홍씨가 저술한 『한중록』[중앙포토]

이런 이유로 사극에서는 종종 밑바닥 '잡초'처럼 그려지곤 하지만 실제로는 인맥 '금수저'였습니다. 
그는 선조의 사위였던 홍주원의 6대손으로 풍산홍씨 일족인 혜경궁 홍씨의 집안과도 긴밀한 사이였습니다. 사도세자의 장인이자 정조의 외조부로서 정계 를 장악한 홍봉한은 10촌 할아버지였고, 정조와도 12촌 간이었습니다.
여기에 정순왕후의 오빠로 당대 세력가였던 김귀주는 8촌 사이였으니, 영조ㆍ정조, 혜경궁 홍씨, 경주김씨 가문 등이 모두 혈연으로 연결되어 있었죠. 『한중록』에 따르면 영조는 홍국영을 '내 손자'라고 부르며 아꼈다는 기록이 나올 정도입니다.
 
최장수 비서실장으로 권력을 장악
1772년(영조 48년) 25세에 문과 11위로 합격한 그는 2년 뒤인 1774년 9월 26일(※날짜를 기억해주세요) 세자의 교육을 책임지는 시강원(侍講院) 설서(說書)로 임명되면서 이후 든든한 정치적 후원자가 될 정조와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정조는 즉위한 뒤 홍국영을 승정원(承政院) 최고위직인 도승지에 임명했습니다. 지금의 대통령 비서실장에 해당하는 자리입니다.

 
정조 시대를 다룬 영화 '역린'에서 홍국영(박성웅)

정조 시대를 다룬 영화 '역린'에서 홍국영(박성웅)

승정원은 정3품 기관으로서 국왕이 내리는 모든 명령과 지시를 전달하고 국왕에게 보고되는 정사의 처리나 국왕의 자문을 맡는 '문고리 권력'입니다. 행정의 처리뿐 아니라 인사, 국방, 교육 등 국정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관여할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정조 재임 기간 도승지에 임명된 사람은 총 85명으로, 8520일간 일했습니다. 1인당 평균 근무일을 따져보면 99일인데, 최장기 도승지 근무자가 바로 홍국영(1204일)입니다. 정조가 그를 얼마나 신뢰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죠.
정조 재위 기간 도승지 재임 기간 상위 5인 비교. 심재권 『조선 정조시대 국왕비서조직인 승정원의 인사운영, 업무 및 근무실태 분석』에서 인용

정조 재위 기간 도승지 재임 기간 상위 5인 비교. 심재권 『조선 정조시대 국왕비서조직인 승정원의 인사운영, 업무 및 근무실태 분석』에서 인용

 
정조의 '선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5군영 중 하나인 금위대(禁衛大)의 대장에 임명했으며, 국왕의 호위기관인 숙위소(宿衛所)를 창설해 홍국영에게 맡겼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3군사령관과 대통령 경호처장에 비서실장까지 맡은 셈이라고 할까요. 그의 권세란 실로 어마어마했습니다.
 정조 재위 기간 승지을 많이 배출한 상위 5개 가문 비교. 심재권 『조선 정조시대 국왕비서조직인 승정원의 인사운영, 업무 및 근무실태 분석 』에서 인용

정조 재위 기간 승지을 많이 배출한 상위 5개 가문 비교. 심재권 『조선 정조시대 국왕비서조직인 승정원의 인사운영, 업무 및 근무실태 분석 』에서 인용

 
정조는 왜 홍국영을 총애했을까
정조가 홍국영을 총애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그는 최고 권력자의 마음을 잡을 줄 알았습니다. 
혜경궁 홍씨는 『한중록』에 “요 작은 놈(홍국영)이 간사한 꾀를 내어 동궁(정조)께 곧게 충고하는 체하나 실은 다 듣기 좋은 말이라. 한 번 국영이 들어오자 외부 사정에 대해 여쭙지 않는 일이 없고 전하지 않는 말이 없으니 동궁께서 신기하고 귀하게 여기셨으니…”라고 기록했는데, 그가 얼마나 정조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죠. 
동궁 시절부터 정조에게 민심의 동향을 전했던 그는 정세 판단도 탁월했고, 언변과 수완도 좋아 여타 '책상물림'들과 다르다는 인상을 확실히 심었습니다. 
 
드라마 '비밀의 문'에서 혜경궁 홍씨(박은빈)

드라마 '비밀의 문'에서 혜경궁 홍씨(박은빈)

둘째, 권력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막강한 권력을 잡은 그는 사정 정국을 조성해 정조의 '복수'에 나섰습니다. 칼은 영조 시대에 권력을 누리며 사도세자와 정조를 괴롭혔던 정후겸·김귀주에게 가장 먼저 향했습니다. 사도세자에게 불경하고 정조의 즉위를 방해했다는 죄목을 붙여 흑산도로 유배하는 등 정치 일선에서 축출했습니다. 
 
정조의 외가인 혜경궁 홍씨 집안도 예외가 없었습니다. 사도세자의 죽음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행보를 한 데다 세손을 손안에 쥐려고 했던 홍봉한-홍인한 형제를 앞장서 공격해 정계에서 끌어내렸습니다. 외척의 정치 간여를 배제하고 싶지만 스스로 나서기 어려운 정조의 부담을 덜어준 것이죠.
 
 정조 시대를 다룬 영화 '역린'에서 홍국영(박성웅)

정조 시대를 다룬 영화 '역린'에서 홍국영(박성웅)

셋째 왕위 계승과정에서 세운 공로입니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왕위 계승을 방해하는 움직임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홍국영은 정민시·김종수(노론), 서명선(소론) 등과 세손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훗날 정조는 이들과 '동덕회(同德會)'라는 사모임을 따로 만들어 매년 모임을 가질 정도로 이들을 예우했습니다. 
 
정조 시대를 다룬 영화 '역린'에서 홍국영(박성웅)

정조 시대를 다룬 영화 '역린'에서 홍국영(박성웅)

특히 홍국영에 대해선 “전후좌우가 모두 역적의 무리를 편드는 사람들뿐이었지만 오직 홍국영만큼은 몸과 마음을 바쳐 국본(國本)의 안위를 받들었다”고 평가했을 정도로 특별히 대했습니다. 
 
[유성운의 역사정치]
“산림 세력을 우대하고 왕실과의 혼사를 놓치지 않는다”
청년 시절부터 “천하의 모든 일이 내 손안에 있게 되는 날이 올 것”이라며 야심을 드러냈던 홍국영은 정무 감각이 탁월했습니다.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저으라'는 말처럼 그는 권력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습니다.
 
“산림 세력을 우대하고 왕실과의 혼사를 놓치지 않는다”는 인조 이래 서인(노론)계가 장기간 권력을 향유한 비결이자 원칙이었습니다. 노론계 집안 출신인 홍국영도 이를 충실히 이행했습니다. 도승지에 오른 그는 노론의 영수인 송시열의 후손 송덕상을 대우하며 산림 세력을 자신의 지지기반으로 만들었습니다. 재야 세력인 산림은 노론에 인재풀을 공급하는 한편 여론에 끼치는 영향력이 컸기 때문에 산림의 지지를 확보한다는 것은 정치력에 있어 중요한 자산이 됐습니다. 
여기에 더해 홍국영은 정조에게 소생이 없다는 점을 들어 자신의 누이동생을 후궁으로 들여 왕실과 인척 관계를 맺었습니다.
 
노론의 영수 송시열. 홍국영은 송시열 집안을 각별히 대우해 산림의 지지를 얻었다 [중앙포토]

노론의 영수 송시열. 홍국영은 송시열 집안을 각별히 대우해 산림의 지지를 얻었다 [중앙포토]

홍봉한 세력 축출로 힘의 공백이 생긴 노론계를 장악하기 위한 작업에도 착수했습니다. 즉위한 지 얼마 안 되는 정조를 설득해 신임의리(辛壬義理)를 재차 천명하게 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신임의리는 노론 측이 사도세자의 죽음에 관여한 것은 당파적 이익 때문이 아니라 조종의 안정을 위한 충성 때문이었다는 일종의 정치 프레임입니다. 노론은 영조가 신임의리를 지켜줬기 때문에 집권세력으로 권력을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세자의 아들이 왕위에 올라 전전긍긍했던 노론 입장에서 신임의리를 재확인시켜준 것은 선물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만큼 홍국영은 기세등등했고, 노론의 실력자였던 좌의정 김종수가 “홍국영과 갈라서는 자는 역적”이라고 말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습니다.
부왕인 영조와의 갈등 끝에 비극적으로 숨진 사도세자 얘기를 다룬 영화 ‘사도’의 한 장면. [중앙포토]

부왕인 영조와의 갈등 끝에 비극적으로 숨진 사도세자 얘기를 다룬 영화 ‘사도’의 한 장면. [중앙포토]

 
"흑발의 봉조하도 있게 됐다" 
1779년 9월 26일 정조는 홍국영에게 입조를 명했습니다. 이날은 두 사람이 세자와 시강원 설서로 처음 인연을 맺은 날이었습니다. 이때 두 사람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다만 면담을 마친 홍국영은 곧 "신이 한 번 대궐 문을 나가서 다시 세상에 뜻을 둔다면 하늘의 반드시 벌을 줄 것입니다" 라며 사직 상소를 올렸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조정 인사들이 그의 눈치를 살필 정도로 권력의 정점에 있던 상황에서 갑작스럽고 충격적인 정계 은퇴였습니다.
 
여기서 정조의 대답이 흥미롭습니다. 정조는 "이전과 이후 천 년에 이와 같은 군주와 신하의 만남이 언제 있었고 또다시 있을 수 있겠는가"라며 홍국영을 한껏 치켜세우는 한편 "옛날부터 흑발(黑髮) 재상은 있었지만, 드디어 흑발의 봉조하(奉朝賀)도 있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홍국영 입장에선 정치적 사형선고나 다름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봉조하는 은퇴한 정계 원로에게 주는 직함입니다. 국왕이 '흑발의 봉조하'라고 말한 것은 32세에 불과한 홍국영의 정계 은퇴를 되돌릴 수 없는 것으로 공언한 셈입니다. 실제로 정조는 홍국영을 내친 뒤 숙위소를 철거하며 홍국영 '지우기'에 착수했습니다.
 
 정조 시대를 다룬 영화 '역린'에서 정조(현빈)

정조 시대를 다룬 영화 '역린'에서 정조(현빈)

권력의 냄새를 누구보다 잘 맡는 것이 정치인들이죠. 최고 권력자의 마음을 확인한 노론계 인사들이 홍국영에게 재빨리 등을 돌렸습니다. 홍국영이 정계에서 물러나자 이듬해 2월 홍국영을 만나 위로한 김종수는 궁에 돌아와서는 그의 처벌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렸습니다. 
이어 서명선· 정민시 등 정조 즉위를 함께 도왔던 ‘동덕회’ 동지들도 홍국영에게 더 엄한 벌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평소 그가 궁궐 나인들과 음란한 행위를 했고, 고관대작들에게도 오만하게 대했다는 등 비난도 쏟아졌습니다. 권력의 끈을 놓치고 나니 홍국영의 주위엔 사방팔방 온통 적으로 가득했습니다. 
 
정조 시대를 다룬 영화 '역린'에서 홍국영(박성웅)

정조 시대를 다룬 영화 '역린'에서 홍국영(박성웅)

반면 이때까지도 최고 권력자의 마음을 정확히 읽지 못했던 이른바 '친홍 세력'으로 불리던 홍낙순·송덕상 등은 홍국영을 복귀시켜야 한다고 주청했다가 관작을 삭탈 당하거나 처형당하는 등 불운을 맛봐야 했습니다. 
이듬해 정조는 홍국영에게 ‘다시는 도성에 들어올 수 없다’는 명령을 내리며 이 문제를 종결지었습니다. 사직 상소를 올리고도 서울에 머무르며 정치적 재기의 꿈을 놓지 않았던 홍국영은 이후 강원도를 떠돌며 폭음과 통곡으로 날을 보내다가 33세에 생을 마쳤습니다. 
 
정조는 왜 홍국영을 몰락시켰나
그렇다면 정조는 그토록 총애했던 홍국영을 왜 내쳤을까요.
홍국영이 노론 벽파의 세력가들을 제거한 데는 앞서 말한 것처럼 정조의 의중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다음부터가 문제였습니다. 부친의 비극적 최후를 생생하게 목격했던 정조는 특정 당파의 독주를 종식하려 했습니다. 그가 만들고자 하는 정치환경은 왕이라는 절대적이고 초월적 존재 아래서 각 당파가 경쟁·협력하는 단계였습니다.
 
정조 시대를 다룬 영화 '역린'에서 홍국영(박성웅)

정조 시대를 다룬 영화 '역린'에서 홍국영(박성웅)

반면 홍국영은 최대 세력인 노론을 접수해 자신의 통제 아래 두려고 했고 노론도 '여당'으로 남기 위해 이에 협력하는 분위기가 조성됐습니다. 김귀주나 홍봉한 대신 홍국영을 정점으로 하는 새로운 노론 권력의 탄생인 셈이죠. 게다가 홍국영은 나이도 젊었고, 재야 세력인 산림의 지지도 얻고 있었습니다. 
정조로서는 홍국영이 사정 정국을 조성한 목적이 국왕을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자신의 정치적 라이벌들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었는지 의심해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거죠. 어쩌면 미래 권력을 꿈꾸는 홍국영과 권력을 나눌 생각이 없었던 정조의 예정된 충돌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조 시대를 다룬 영화 '역린'에서 정조(현빈)

정조 시대를 다룬 영화 '역린'에서 정조(현빈)

누이동생을 후궁으로 들인 것도 결국 부메랑이 됐습니다. 정비인 효의왕후가 있는데도 누이에게 으뜸 원(元)자를 붙인 '원빈(元嬪)'으로 쓰게 해 왕실을 불편하게 한 그는 원빈이 사망(1779년)하자 독살의 가능성을 제가하며 효의왕후를 배후로 지목했습니다.
또한 정조의 동생 은언군의 맏아들 상계군(이담)을 원빈의 양자로 삼고, 완풍군(完豊君)이라고 작호를 만든 것도 문제가 됐습니다. 완(完)은 왕실인 전주이씨의 본관(전주·완산주)을, 풍(豊)은 풍산홍씨의 본관을 의미합니다. 왕실에서 외가 쪽 본관을 작호에 붙인 것은 유례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친홍 세력이 완풍군 왕세자 만들기에 나선 것도 정조를 질리게 만들었습니다. 
 
세종실록 125권에는 가뭄과 흉년으로 인해 원래 봄으로 예정됐던 과거 시험을 가을로 미루게 된 과정이 설명돼 있다. [문화재청]

세종실록 125권에는 가뭄과 흉년으로 인해 원래 봄으로 예정됐던 과거 시험을 가을로 미루게 된 과정이 설명돼 있다. [문화재청]

정조는 홍국영의 사망 소식을 듣고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홍국영이 이런 죄에 빠진 것은 사려가 올바르지 못한 탓이다. 처음엔 나라의 안정과 근심을 함께 하는 데 있어 그의 지위가 무겁지 않으면 위엄이 서지 않았기에 ‘권병(權柄·권력의 손잡이)’을 임시로 맡겼던 것이다. 그런데 스스로 조심하고 두려워하며 삼가는 방도를 생각하지 않고서 오로지 총애만을 믿고 '위복(威福·벌과 복을 주는 임금의 권력)’을 멋대로 사용하여 끝내는 극죄(極罪)를 저지르게 된 것이다." (『정조실록』 정조 5년 4월 5일) 
 
DMZ 방문한 임종석 비서실장   (철원=연합뉴스) 남북공동선언 이행추진위원장인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17일 오후 남북공동유해발굴을 위한 지뢰제거 작업이 진행 중인 강원도 철원군 육군 5사단 비무장지대 GP 고가초소를 방문해 현장점검을 하고 있다. 2018.10.17 [청와대사진기자단]   phot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DMZ 방문한 임종석 비서실장 (철원=연합뉴스) 남북공동선언 이행추진위원장인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17일 오후 남북공동유해발굴을 위한 지뢰제거 작업이 진행 중인 강원도 철원군 육군 5사단 비무장지대 GP 고가초소를 방문해 현장점검을 하고 있다. 2018.10.17 [청와대사진기자단] phot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문재인 대통령이 유럽 순방 중인 17일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통일부장관 등을 대동하고 DMZ 일대 유해발굴 현장을 찾자 정치권에서는 "비서실장의 처신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청와대는 한술 더 떠서 26일 공식 유튜브 계정에 임 실장의 방문 소감을 담은 촬영 영상까지 공개했습니다.
 
야권이 임 실장의 처신을 문제 삼은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9월 10일 평양 남북정상회담에 문희상 국회의장과 여야 5당 대표를 공식 초청한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했을 때나 4월 4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의 성의 있는 개헌 논의를 촉구한다. 국민투표법을 신속히 처리해줄 것을 요청드린다"고 압박했을 때도 불쾌함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17일 DDP 서울프레스센터에서 임종석 준비위원장이 2018 평양 남북정상회담 공식 일정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17일 DDP 서울프레스센터에서 임종석 준비위원장이 2018 평양 남북정상회담 공식 일정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박근혜 정부에서 '기춘대원군'으로 불린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해 그간 비서실장이 자신의 존재감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던 것을 비교해보면 임 실장의 행보가 '튄다'는 평가에는 여당에서도 동의하는 편입니다. 
그런가 하면 얼마 전엔 여권의 일부 대선주자급 정치인들이 겪는 어려움과 관련해 배후라는 음모론이 떠돌기도 했습니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임 실장을 둘러싼 비판과 소문은 '미래 권력'이라는 가능성 때문에 더욱 증폭된다는 점입니다. '미래 권력'의 가능성을 쥔 2인자의 처신만큼 어려운 것도 없다는 게 동서고금의 교훈인 것 같습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이 기사는 심재권 『조선 정조시대 국왕비서조직인 승정원의 인사운영, 업무 및 근무실태 분석』, 최성환 『혜경궁의 처지와 「한중록」의 다면적 사실성』, 이경구 『정조와 세도정치 이해를 위한 세 가지 고려』를 참고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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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운의 역사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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