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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는 것들은 왜 필요한가

석영중의 맵핑 도스토옙스키 <39> 드레스덴: ‘쓸모’의 문제
 
독일 드레스덴 츠빙거 궁 미술관에 소장된 라파엘로의 ‘시스틴의 마돈나’. 도스토옙스키는 드레스덴에 거주할 당시 종종 미술관을 찾아와 특히 이 그림을 넋을 잃고 바라보곤 했다.

독일 드레스덴 츠빙거 궁 미술관에 소장된 라파엘로의 ‘시스틴의 마돈나’. 도스토옙스키는 드레스덴에 거주할 당시 종종 미술관을 찾아와 특히 이 그림을 넋을 잃고 바라보곤 했다.

이 경이로운 그림 앞에 남편은 완전히 매료되어 멍한 표정으로 몇 시간씩이나 계속 서 있었다.  

 
안나 부인이 회고록에서 언급하는 ‘이 경이로운 그림’은 산치오 라파엘로(Sanzio Raffaello·1483~1520)의 ‘시스틴의 마돈나’(1512~1514)다. 도스토옙스키는 라파엘로를 최고의 예술가로 손꼽았는데, 그의 작품 중에서도 특히 ‘시스틴의 마돈나’를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그림으로 평가했다. 드레스덴에 거주할 당시 도스토옙스키는 부인과 함께 츠빙거 궁의 미술관에 들러 수시로 이 그림을 감상했다.  
 
‘시스틴의 마돈나’는 러시아 낭만주의의 오랜 전통 속에서 아름다움의 정수로 간주되었다. 시인 주콥스키가 “이것은 그림이 아니라 비전이다”라고 말한 이후 무수한 작가와 예술가들이 그의 뒤를 따랐다. 해외 여행길에 오른 러시아 지식인들은 으레 드레스덴에 들러 라파엘로의 그림에 경배하는 것을 일종의 ‘순례 코스’로 여겼다. 러시아 사회주의의 대부 게르첸도, 그의 동료 오가료프도, 마돈나를 미의 이상으로 생각했다. 오가료프는 그 앞에서 흐느껴 울기까지 했다.  
 
“예술이 어디에 쓸모가 있는가”라는 논쟁
민간협력기구인 ‘러시아-독일 대화’ 교류사업의 일환으로 드레스덴 의회 센터 앞에 세워진 도스토옙스키 동상. 인민예술가 루카비슈니코프가 제작했다. 2006년 10월 10일 동상 제막식에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참석했다.

민간협력기구인 ‘러시아-독일 대화’ 교류사업의 일환으로 드레스덴 의회 센터 앞에 세워진 도스토옙스키 동상. 인민예술가 루카비슈니코프가 제작했다. 2006년 10월 10일 동상 제막식에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참석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이후부터는 ‘마돈나’에 대해 다른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아나키스트 바쿠닌은 ‘마돈나’를 재담의 소재 정도로 생각했다. 일설에 의하면, 그는 드레스덴 무장봉기 때 혁명군 바리케이드 앞에 마돈나 그림을 걸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일인들은 너무나 교양 수준이 높아 마돈나에 대고 ‘총질’(!)은 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체르니쉡스키는 “요즘 같은 시대”에 아직도 일각에서 몸에 좋은 먹을거리보다 ‘마돈나’를 더 좋아한다는 것은 넌센스라고 했다. 공리주의자 피사레프는 라파엘로가 사치를 조장한다는 다소 아리송한 논리를 펴면서, 자기는 러시아의 라파엘로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러시아의 구두장이가 되겠노라고 선언했다.  
 
이 모든 ‘마돈나’ 논쟁에 마침표를 찍은 사람은 톨스토이다. 만년의 톨스토이는 거의 모든 예술이 거짓되고 공허한 소일거리에 불과하므로 “예술이라 불리는 것은 모두 매장해버리자”는 과격한 주장을 했다. 라파엘로도 그 중의 하나였다.  
 
이쯤 되면 문제는 라파엘로도 아니고, ‘마돈나’도 아니다. 마돈나 그림의 어떤 점이 그토록 위대하냐를 따지는 것은 다른 차원의 얘기다. 예술이 어디에 쓸모가 있느냐가 문제의 핵심인 것이다. 도스토옙스키가 드레스덴에서 쓴 『악령』은 ‘마돈나’를 중심으로 예술의 ‘쓸모’에 관해 진지하게 질문을 던진다. 단순화시켜 말하자면, 등장인물들은 ‘마돈나’를 축으로 양분된다. 대부분의 인물이 마돈나 무용론을 주장하는 가운데 저자의 대변인인 늙은 자유주의자 스테판만이 마돈나를 옹호한다.  
 
스테판이 문학 축제에서 마돈나에 대해 강연을 할 예정이라고 하자 현지사 부인은 비아냥거린다. “드레스덴의 마돈나 말입니까…전 그 그림 앞에서 두 시간을 줄곧 서 있다가 환멸만 느끼며 떠났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대단히 놀라기까지 했습니다.”  
 
지주 부인은 한 술 더 떠서 ‘마돈나’가 ‘한물 간’ 그림이라며 조롱한다. “케케묵은 노인네들 말고는 누구 하나 그런 것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요.” 그녀는 당대 유행하던 공리주의 예술론을 들먹인다. 실생활에 직접 사용될 수 없는 예술은 폐품이라는 주장이다. “마돈나는 아무 짝에도 못쓰니까요. 이 항아리가 유용하다면 그건 그 속에 물을 부을 수 있기 때문이고 이 연필이 유용하다면 그건 연필로 모든 것을 쓸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 여인의 얼굴은 자연의 다른 어떤 얼굴보다도 훨씬 못 생겼어요. 사과를 그려보고 그 자리에 당장 진짜 사과를 나란히 갖다 놔 보세요. 당신은 어떤 걸 선택하겠어요?”
 
스테판은 그들 생각에 “항아리나 연필만한 가치도 없는”, 그러나 자기 생각에 “황후 중의 황후, 인류의 이상”인 ‘시스틴의 마돈나’에 대해서 강연을 감행한다. 강연은 “셰익스피어냐 아니면 장화냐, 혹은 라파엘로냐 아니면 석유냐?”라는 수사적 의문문으로 시작된다.  
 
그는 열광적으로 셰익스피어와 라파엘로를 찬양하며 강연을 이어나간다. 영국 극작가와 이탈리아 화가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보다도 더 고귀하고 더 높은 인류문화의 결실이라며 목 놓아 울부짖는다. “그들은 이미 전 인류의 진정한 열매, 어쩌면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획득된 미의 형식, 그것이 없다면 저는 살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는 자기 말에 도취되어 급기야는 눈물까지 펑펑 쏟는다. “독일인이 없어도, 러시아인이 없어도, 과학이 없어도, 빵이 없어도” 인류는 살 수 있지만 “아름다움이 없다면 살 수 없습니다.”  
 
과장과 영탄으로 점철된 그의 두서없는 강연은 청중의 분노로 중단된다. 곰팡내 나는 “흰소리”로 “사교계를 모욕한” 그를 청중은 폭풍노도 같은 야유와 조롱으로 쫓아낸다. 그는 한마디로 “박살이 났고” 도망치듯 무대 뒤로 사라진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하리라”
러시아 TV 시리즈 ‘악령’(2014) 중 스테판이 문학 축제에서 장광설을 펼치는 장면

러시아 TV 시리즈 ‘악령’(2014) 중 스테판이 문학 축제에서 장광설을 펼치는 장면

‘마돈나’ 논쟁은 소설 속에서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나지만 저자가 제기한 예술의 ‘쓸모’에 관한 질문은 긴 여운을 남긴다. 아니, 예술뿐 만이 아니다. 효용과 효율과 이른바 ‘가성비’를 시시콜콜 따지는 시대에는 많은 것들이 “도대체 왜 필요한가?”라는 질문 앞에서 쩔쩔매게 된다.  
 
도스토옙스키는 칼럼과 에세이에서 이 문제에 대한 답을 모색했다. 그는 대부분의 경우 스테판처럼 선언적이거나 ‘교과서적’인 주장을 했다. “인간은 먹을거리나 음료수 못지않게 예술을 필요로 한다. 아름다움, 그리고 그것이 구현하는 창조성에 대한 욕구는 인간 본성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
그러나 “도대체 왜?”에 대해서는 “그냥”이라는 말로 두루뭉술하게 얼버무렸다. “인간은 아름다움이 무엇에 쓰는 것인가라고 묻지 않으면서 그냥 그 앞에 고개를 숙인다.”  
 
그렇다고 도스토옙스키가 ‘예술을 위한 예술’을 지지한 것은 아니다. 그는 오로지 미학적 감수성에만 호소하는 문학이나 그림이나 음악은 상찬한 적이 없다. 그도 어떤 면에서는 실용주의자였다. ‘용도’를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얘기다. 예술의 용도에 관한 그의 생각은 『백치』에서 하나의 문장으로 요약된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무려 세상을 구원한다니, 이보다 더 큰 쓸모가 어디 있겠는가!  
 
그동안 수많은 연구자들과 독자들이 이 거창한 문장을 즐겨 인용했다. 오용과 남용도 많이 했다. 대충 그리스도교적인 맥락에서 해석들을 했지만, 사실상 그 문장이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딱 부러지게 설명한 사람은 많지 않다.  
 
『백치』와 『악령』이 쓰여지고 100년이 흐른 뒤인 197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솔제니친은 도스토옙스키의 말을 되새기며 연설의 실타래를 풀어갔다. “물론 아름다움은 고상하고 숭고한 것이다, 하지만 미가 언제, 누구를 구원했단 말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에서 노벨상 수상작가는 대문호의 의중에 가장 가깝게 다가간다. 정치 연설과 사회강령, 그리고 철학 체계는 때로 진리가 아닌 것 위에 구축될 수 있다. 진리가 아닌 것들은 예술로 전환되는 시험을 견뎌내지 못하고 산산조각이 난다. “그러나 진리를 퍼내어 생생하고 압축된 형태로 우리에게 제시하는 작품들은 우리를 휘어잡아 강렬하게 끌어당긴다. 아무도, 절대로, 설령 수세기가 지난다 하더라도 그것들을 반박하지 못한다.”  
 
예술은 직설적인 사상과 직설적인 도덕이 제 구실을 못할 때 진과 선의 역할까지 대신 한다. “진과 선의 지나치게 분명하고 지나치게 올곧은 가지들이 부러지고 잘려나가 자라지 못하게 된다면, 저 변덕스럽고 예측불가능하고 예기치 못한 미의 가지들이 살아남아 ‘바로 그 곳’까지 쑥쑥 자라나 세 그루 나무 모두의 작업을 완성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하리라’는 도스토옙스키의 말은 그냥 튀어나온 말이 아니라 예언이 될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문학과 예술은 정말로 오늘의 세상을 도와줄 수 있지 않겠는가.”  
 
“문학의 쓸모는 당장에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20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솔제니친의 1970년 노벨문학상 수상 장면

20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솔제니친의 1970년 노벨문학상 수상 장면

‘엘베 강변의 피렌체’라 불리는 드레스덴은 19세기 유럽 문화의 요람이었다. 예술과 상업이 함께 번성하는 아름답고 우아하고 풍요로운 도시였다. 도스토옙스키가 유럽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던 곳이자 루빈슈타인을 비롯한 러시아 문화 예술계 인사들이 끊임없이 족적을 남긴 곳이기도 하다. 1945년 2월 폭격으로 시꺼멓게 그을린 벽돌과 화강암과 대리석이 아직도 보존되어 있어 기묘한 장엄함과 숙연함을 더해준다. 러시아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고 길거리에서도 러시아어가 종종 들린다.  
 
마리팀 호텔과 의회 센터 사이에 비스듬히 앉은 청동의 작가는 낙엽으로 뒤덮인 산책로와 도도히 흘러가는 엘베 강과 강 저편의 거므스름한 궁전들을 바라보고 있다. 드레스덴의 도스토옙스키 동상은 민간협력기구인 ‘러시아-독일 대화’에서 제작한 것으로 제막식은 2006년 10월 10일에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거행되었다. 제막식 축사에서 푸틴 대통령은 대문호를 기리기 위해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하리라”를 인용했다.  
 
도스토옙스키는 문학의 쓸모는 당장에 알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했다. “무언가가 언제 어떻게 쓸모가 있을지 우리가 어떻게 일일이 재단하겠는가.” 다행스럽게도 그가 쓴 소설들의 ‘쓸모’가 입증되는데 아주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은 것 같다.  
 
고려대 노문과 교수.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자유, 도스토예프스키에게 배운다』등을 썼다.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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