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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마술 냄비

윤광준의 新생활명품 <90> 실룩실룩(Sillook Sillook) 
TV 채널의 대부분을 먹방 프로그램이 차지하고 있는 느낌이다. 분주하게 리모컨을 돌려봐도 예외 없이 음식관련 내용이 나온다. 매일 반복되는 먹방 공세가 지겹다. 그러면서도 본다. 먹음직스런 음식이 소개되면 시선을 고정한다. 갑자기 남해의 바닷가 마을로 떠나고 싶은 충동까지 생긴다. 셰프의 솜씨 자랑에 나왔던 조리 도구도 유심히 봤다. 스파게티 면 삶는 전용 포트가 있는 거다. 세로로 길쭉한 원통형으로 면을 위에서 집어넣으면 통째로 들어간다. 평소 쓰던 무쇠 냄비에 뻣뻣한 면을 애써 구겨 넣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았다.  
 
먹는 일보다 중요한 건 없다는 방송의 충동질은 집요했다. 안 보려 했지만 결국 보고야 마는 먹방이다. 진 쪽이 굴복하게 마련이다. 사람들은 음식점을 찾아가고, 직접 따라 해보며, 열심히 SNS로 퍼 나르기 시작한다. 방송을 장악한 먹방은 스마트폰에까지 들어찼다.  
 
이건 정말 싫다. 앞서가는 폐친들의 놀라운 통찰과 관심사를 엿보기도 바쁜데 낡은 반복까지 받아들이긴 힘들다. 여긴 좀 더 촘촘한 선택의 세계다. 음식 사진으로 도배한 폐친들은 일부러 다 잘라버리기로 했다. 같은 음식을 다루더라도 시간을 묻힌 깊이와 안목의 촘촘함을 가늠하는 이들만 남겨뒀다. 좋은 것만 누리기에도 인생은 짧다는 내 지론의 실천이다.  
 
음식을 맛있게 잘 만드는 재주는 남자의 생존 능력
요즘은 남자들이 주방에 드나들고 음식 만드는 일을 즐긴다. TV의 영향력이겠거니와 세계적 추세와도 일치한다. 남녀의 역할은 고정되선 안 된다. 잘 하는 부분을 더 잘 하도록 밀어주는 게 조화라 믿고 있다.  
 
이유야 어떻든 음식을 맛있게 잘 만들 줄 안다는 건 대단한 능력이다. 혼자서도 살 수 있게 해 주니까. 제 손으로 음식 해 먹을 줄 아는 남자는 어디에서든 적응한다. 홀로 된 내 아버지는 산 속에서 몇 년을 버텨냈다. 그것도 너무나 즐겁고 행복하게 산다. 개 두 마리와 온갖 기화요초에 둘러싸여서 말이다. 아버지가 내게 들려줬다. “야! 마누라 잔소리 안 들으니 살 것 같아 … 이게 다 밥할 줄 아는 재주 때문이지.”    
 
이런 아버지의 영향을 아들인 내가 물려받지 않을 리 없다. 음식 만드는 일이 재밌다. 재료를 섞어 모양과 맛을 만들어가는 일은 글 쓰고 사진 찍는 일과 똑 같다. 문제는 잘 하기 어렵다는 거다. 음식 또한 감각에 반복이란 시간의 경험으로 연마시켜야 완결이다. 재료를 썰어 형태를 내는 덴 조형감각이 동원되고, 간을 맞추고 조미의 정도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균형감각이 필요하다. 운동감각도 있어야 된다. 때를 맞춰 재빨리 냄비와 후라이판을 들고 내리는 순발력과 속도가 여기서 나온다. 과정 전체의 흐름을 파악해 일의 맥을 잡는 것도 중요하다. 재료가 어지럽게 널려있고 각종 그릇이 즐비하다면 뭔가 잘못된 거다. 음식을 만들다보면 살아온 과정의 축소판을 보는 것 같을 때가 있다.  
 
새로운 물건이 주는 재미를 찾아서
내게 하나 더 능력이 있다. 그건 새로운 주방도구를 적극 끌어들이는 일이다. 새로운 방식과 소재의 제품이 나오면 지나치지 않는다. 게다가 생긴 게 예쁘면 덜컥 산다. 당장 쓰지 않는 것이라도 괜찮다. 언젠가 쓰게 될 것이니까.  
 
새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덴 이유가 있다. 기술이란 진보하게 마련이란 믿음이 커서다. 그러나 그 믿음은 과정을 거쳐야 내 것이 된다. 남들보다 먼저 써 보고 빨리 결정하는 편이다. 겪어봐야 알게 된다는 점에서 물건은 사람과 똑같다. 새 것에 대한 의구심이 큰 사람은 낡은 것만 좋아한다. 취향을 뭐라 할 수 없지만 새로움이 주는 재미의 반은 포기해야 한다.  
 
사실 난 물건에 관한 한 양다리를 걸치고 산다. 새로운 호기심과 기대만큼 이미 검증된 과거의 안정감도 중요해서다. 사람은 마음대로 갈아치우지 못한다. 만만한 물건이라면 무슨 짓을 해도 부담이 없다.  
 
이쪽저쪽을 넘나들며 종잡을 수 없는 태도를 질타하는 이들이 생겼다. 항상 어느 쪽이냐고 묻고 편을 갈라야 안심되는 이들이다. 아무 쪽도 아니란 내 말을 불편해 했다. 그들이 내 취향을 물었다. “예쁘고 좋은 건 다 좋아해요. 취향이란 선호의 결과가 아니라 골라낼 줄 아는 힘이니까.”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을 지으며 사람들은 고개를 끄떡였다. ‘그러니까 아예 취향이 없다는 거군요.’ ‘아! 예 … .’  
 
일식집 코스 요리의 첫 번째는 달걀찜이다. 기포 하나도 없이 부드러운 수란의 맛은 각별하다. 음식의 관심이 커지면서 어떻게 만드는 지 궁금해졌다. 비법은 인터넷에 다 나온다. 도전해 보기로 했다. 결과는 엉망이었다. 주방장의 전문성이 대단해 보였다. 여기에 그칠 내가 아니다. 부드럽고 맛있는 수란을 꼭 만들어보기로 작정했다. 전자레인지로 조리하고 같은 레시피로 만드는 데 결과가 달랐다면 용기(容器)의 문제일지 모른다. 수란이 잘 만들어지는 용기를 찾아봤다.  
 
전자레인지용 예쁜 국산 냄비로 계란찜 성공  
세상일은 우연의 연속이다. 갤러리와 레스토랑을 함께 운영하는 이를 만났다. 세상의 좋다는 건 다 보고 아는 안목을 지녔다. “요즘 쓸 만한 물건이 뭐에요?” 거두절미하고 내 하고 싶은 질문을 던지자 그녀는 단번에 대답해줬다. “실룩실룩이요.”
 
처음엔 농담을 하는 줄 알았다. 그녀는 웃으며 매장에서 물건을 하나 보여줬다. 실리콘 재질로 만든 작은 냄비였다. “얘가 실룩실룩이에요. 전자레인지 전용의 냄비인데, 여기에다 음식을 만들면 맛있어요. 게다가 디자인도 좋고 메이드 인 코리아에요 … .”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말이라면 무조건 믿는다. 실룩실룩 냄비를 그 자리에서 샀다. 나의 관심은 달걀찜에 최적화된 조리용기란 점이었다.  
 
작은 냄비는 지금까지 보던 것과 전혀 달랐다.  금속 대신 누르면 찌그러지는 실리콘 재질이다. 형태는 냄비인데 낯선 물성의 재료가 낯설었다. 상식과도 부딪혔다. 플라스틱 비슷한 재료가 열을 견딜 수 있을까. 고온에서 배어나온다는 환경호르몬 문제는 이상이 없을까. 새것의 불안함은 바로 이런 거다. 이전에 없던 물건에게 보내게 되는 온갖 의구심이다.  
 
메이커도 이런 점을 의식한 듯 온갖 데이터를 동원했다. 고품질의 실리콘 원료를 국내에서 공급받았고 미국 FDA의 인증을 받았다고 밝혔다. 인체에 무해함을 강조하기 위해 자사 제품을 아기가 물고 빠는 장면을 광고로 보여줬다. 250도의 고온에도 견디고 환경호르몬 검출도 되지 않았다는 결과를 내세웠다. 이런 주장은 가격대가 뒷받침한다. 국산 제품으론 이례적일 만큼  조그만 그릇이 꽤 비싸다. 요즘 수입되는 유럽의 유명 주방기구들이 거의 중국에서 제조된다는 걸 알면 납득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나의 관심은 오로지 달걀찜이다. 평소 하던 대로 달걀을 풀고 물을 부어 농도를 맞추었다. 전자레인지에 용기를 넣고 정확한 시간을 맞추어 체크했다. 처음부터 기대했던 건 아니다. 용기를 바꾸었다고 무슨 변화가 있으랴 했다.   완성된 달걀찜은 그런대로 맛있었다. 두 번 세 번 반복했다. 나만의 데이터가 필요하지 않던가. 횟수를 거듭할수록 미세한 변화들이 나타났다. 수란의 기포가 줄어들기 시작했으며 맛이 더 부드러워졌다. 달걀의 노란색도 색이 고왔다. 참 신기한 일이다. 새로운 재질의 그릇일 뿐인데.  
 
실룩실룩은 영문으로 이렇게 표기한다. Sillook Sillook. 이 회사 대표를 만나면 왜 이런 이름을 붙였는지 꼭 물어보고 싶다.
 
글 쓰는 사진가. 일상의 소소함에서 재미와 가치를 찾고, 좋은 것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즐거운 삶의 바탕이란 지론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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