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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장사’라 불려도 좋다 … 젊은 건축가들의 튀는 발상

[한은화의 A-story] ‘올해의 젊은건축가상’ 수상작으로 본 트렌드
경계없는 작업실에서 설계한 서울 삼성동 오피스는 계단과 발코니를 건물 전면에 놓아 좁은 내부 공간의 경계를 넓혔다. [사진 김선아 작가]

경계없는 작업실에서 설계한 서울 삼성동 오피스는 계단과 발코니를 건물 전면에 놓아 좁은 내부 공간의 경계를 넓혔다. [사진 김선아 작가]

“업자예요?”
 
다소 날 선 질문에 장내가 조용해졌다. 지난 6월 서울 돈의문 박물관마을 서울도시건축센터에서 열린 ‘2018 젊은건축가상’ 공개 심사장. 한국 건축의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 건축가를 뽑는 자리에서 나온 질문이다. 소위 ‘집장사’라 불리던 부동산 개발업자의 영역은 오랫동안 건축계에서 터부시 됐던 터다. 그런데 질문을 받은 젊은 건축가, 문주호씨(경계없는 작업실 건축사사무소 공동대표)의 대답이 능청스러웠다. “네 저희 업잡니다.” 디자인으로 부동산의 수익성을 올릴 수 있다며 스스럼없이 말해오던 팀다운 답변이었다.
 
‘경계없는 작업실’은 올해 젊은건축가상을 수상했다. “부동산 개발 논리에 대응해 상황과 조건을 논리적으로 분석, 완성도 높은 해결 방안과 결과물을 보여줬다”는 게 심사평이다. 심사위원으로서 앞의 질문을 했던 최문규 연세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기성 건축가들은 전통이 무엇인지, 우리 본질이 무엇인지 같은 거대 담론을 펼쳤다면, 요즘 젊은 건축가들은 미시적이고 가볍다”며 “건축계가 다양해지고 있다는 측면에서 반가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건축이 바뀌고 있다. 우리 생활에 더 가깝고, 쉬운 건축을 향해서다. 젊은 건축가를 주축으로 일고 있는 변화이자 이들의 생존법이기도 하다. “건물을 잘 디자인하면 돈을 더 벌 수 있다”고 직설 화법으로 소통하거나, 기성세대 건축가들이 관심 갖지 않던 도시 공간의 작은 부분을 디자인하는 일에도 뛰어든다. 올해 젊은건축가상 수상팀을 통해 그 현장을 살펴봤다.
 
 
“건축계의 유니클로가 되고 싶다”
 
설계 자동화 프로그램 ‘랜드북’에서 지번을 입력하면 이런 결과물을 볼 수 있다. [사진 경계없는 작업실]

설계 자동화 프로그램 ‘랜드북’에서 지번을 입력하면 이런 결과물을 볼 수 있다. [사진 경계없는 작업실]

경계없는 작업실은 03학번 건축가 그룹이다. 공동 대표인 문주호·임지환·조성현씨는 대학 졸업 후 각각 다른 설계 사무실에 다니다 2013년 뜻을 모아 창업했다. 이들의 프로젝트 소개 방법은 재기발랄하다. 엽서만 한 카드 한 장에 담아 건넨다. 앞면에는 이들이 실제로 설계해 지어진 건물이, 뒷면에는 설계 자동화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그린 건물이 담겼다. 이 설계 자동화 프로그램은 “빅데이터 기반 주택 개발 솔루션을 제공하겠다”며 경계없는 작업실이 직접 개발했다. ‘랜드북(www.landbook.net)’이라는 이름으로 론칭했는데 누구나 무료로 쓸 수 있다.
 
랜드북에 들어가서 지번을 입력하면 땅과 관련된 온갖 정보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땅의 용도, 법규를 바탕으로 이렇게 지으면 된다는 건축 설계 전망, 인근 150m 내 신축 개발 현황 등이 일목요연하게 나온다. 하이라이트는 집을 지어 임대했을 때 수익률을 별 평점으로 매긴 부분이다. ‘디자인과 수익의 균형을 맞추는 건축가 그룹’이라는 자신들의 콘셉트를 위트있게 표현했다.
 
예를 들어 경계없는 작업실이 최근 준공한 서울 후암동 다가구 건물은 랜드북의 법규 분석에 따르면 별 3개짜리다. ‘건축법에 따른 제한이 보통 수준이고, 꼼꼼한 설계를 통해 추가 면적을 확보할 수 있다’는 설명도 곁들여진다. 지번만 입력하면 얻을 수 있는 정보다.
 
이를 바탕으로 경계없는 작업실의 아이디어가 더해진다. 주변 건축물의 층별 단위 면적당 임대료를 계산해 비워낼 공간을 디자인한다. 계산 결과 2층의 임대료가 가장 적었다. 그래서 후암동 다가구 건물은 2층의 한가운데를 뚫었다. 그 덕에 동네 사람들은 시선과 발길이 닿는 숨구멍 같은 공간을 확보하게 됐고, 건축주는 임대료 수익을 더 알차게 올릴 수 있었다.
 
지난해 완공한 삼성동 오피스 빌딩은 89.4㎡ 규모의 땅에 6층 건물을 지어 올렸다. 층 당 전용면적이 29.7㎡ 밖에 안 되는 빌딩의 가느다란 모양새가 ‘오벨리스크’를 연상시킨다. 경계없는 작업실에서 토지 매입부터 개발 계획, 건설사업 관리(CM)까지 맡은 프로젝트다. 세 명의 공동 대표가 각각의 장기를 살렸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최근 젊은 건축가들이 집단 체제로 사무실을 운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방면으로 활동하며 협력해 생존하기 위한 장치다.
 
“2013년 창업했을 때 협소주택 같은 소규모 필지의 개발이 시작되면서 기회가 왔습니다. 지금까지 돈 많은 자본가가 건축주였다면 여유 자금이 많지 않은, 좀 더 다양한 건축주의 시대가 온 거죠. 비용과 관련된 현실적인 지점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그래서 수익성을 디자인에 더 적극적으로 반영해 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건축이 힘을 잃지 않고 완성되려면 함께 고민해야 했습니다.”
 
더 나은 도시 환경을 위해 건축이 더 쉬워졌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그래서 설계 자동화 프로그램을 계속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조성현 대표는 “기술을 통해 전문가들만 쉽게 접근하던 건축 관련 정보를 누구나 접할 수 있게 한다면, 소외된 다수를 위한 더 나은 건축이 가능해질 것”이라며 “마치 패션계의 SPA 브랜드처럼 ‘건축계의 유니클로’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수직 정원 생기니 으슥한 골목길 훤해져
 
남정민 서울과기대교수가 설계한 반포동 다가구 건물 ‘작은공원’. 1층 외벽에 ‘리빙브릭’을 썼다. [사진 신경섭 작가]

남정민 서울과기대교수가 설계한 반포동 다가구 건물 ‘작은공원’. 1층 외벽에 ‘리빙브릭’을 썼다. [사진 신경섭 작가]

마찬가지로 올해의 젊은건축가상을 수상한 남정민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는 이른바 ‘리빙 브릭(Living Brick)’에 꽂혀 있다. 쉽게 말해 화분으로 쓸 수 있는 벽돌이다. 기존 네모 벽돌에 흙을 담아 식물을 키울 수 있는 불룩한 주머니가 더해진 모양새다. 이 벽돌을 쌓아 집을 짓는다면, 담쟁이 식물을 굳이 키우지 않더라도 벽을 정원처럼 꾸밀 수 있을 터다. 남 교수는 “해방촌 동네의 도시건축 기획 관련 자문을 하며 골목길을 계속 걸은 적이 있는데, 골목 틈새마다 놓인 화분이 인상적이었다”며 “정원이 없더라도 식물을 키우고 싶어하는 것이 도시민의 보편적인 욕망인데 건축의 영역에서 이런 일상을 끌어안고 살피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개발한 것이 ‘리빙 브릭’이다. 건축물을 설계할 때부터 별도의 공간을 내주지 않더라도 식물을 심을 수 있는 수직 정원을 디자인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삭막한 콘크리트 벽을 대신하기에 도시 경관을 더 푸르게 만드는 데도 효과적이다.
 
남 교수가 개발한 ‘리빙 브릭’. 식물을 키울 수 있는 벽돌이다. [사진 노기훈 작가]

남 교수가 개발한 ‘리빙 브릭’. 식물을 키울 수 있는 벽돌이다. [사진 노기훈 작가]

지난해 서울 반포동에 완공한 4층 규모(대지 면적 135.9㎡)의 다가구 주택의 경우 1층 벽면에 이 벽돌을 썼다. 덕분에 다소 으슥했던 골목길에 수직 정원이 생겨 훤해졌다. 남 교수는 건물 뒤쪽 주차 공간에 있는 외부 계단의 너비를 조정해 계단 정원을 만들기도 했다. 그는 “건물 규모가 작아 법적 조경이 필요 없지만 이 작은 자연의 공간들이 거주민에게, 동네 주민에게 휴식처가 되게 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그는 공장에서 제작한 콘크리트(Precast Concrete) 패널에 불룩한 화분 주머니를 달은 ‘리빙 포켓’도 개발했다. 타일처럼 얇은 PC 패널에 유리섬유를 넣어 강도를 더해 완성했다. 남 교수는 이 패널을 우면동 유치원 건물의 마감재로 썼다. 그 덕에 아이들은 눈높이의 벽면에서 꽃이 피고, 식물이 자라나는 풍경을 볼 수 있게 됐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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